[강현진 칼럼]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면

강현진 전 새크라멘토 한국학교 이사장.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새어 나갈까 걱정되지 않는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형제나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고, 친구와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생략)”

나는 이 글을 시간이 날 때면 되새기면서 옛날 내가 자란 고향과 철없이 뛰놀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옛날 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친구가 생각나면 친구 집에 그냥 갔다. 온다는 말도 없이 대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가 “같이 밥 먹자”며 바지 가랭이를 붙잡아 앉히던 때가 있었다. 학교 갔다 오면 공연히 토라져 싸우다 헤어져 집에 왔다가, 다음날 “야, 학교 가자!” 하고 부르던 친구와 놀던 그 철없던 때가 그리워진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이도 많아졌는데도 지금까지 그리워지는 것은 아쉬움일까, 미련일까. 옛날 우리가 살던 고향에는 사람이 사는 냄새가 나고 순수한 감정과 아름다운 인정이 넘쳐나는 행복한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이해관계를 따지고 손익계산을 한 후 만나는 현실이 아닌가. 그리고 학벌, 지위, 재산 같은 외형적 모양을 보고 만나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무엇을 찾기 위한 탐험길에 올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연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이나 명예 같은 것이 중요하지만, 그 사람 주변에 얼마나 좋은 친구가 있는가를 보고 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친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주변에는 좋은 집에 살고 근사한 차를 몰고 다니지만, 그 사람 주변에는 차 한잔 마셔줄 사람도 없고 누가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쓸쓸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외형적 모양보다 내향적이고 진실된 사랑이 넘치는 친구가 필요하다.

나는 인생의 뒤안길에 접어들었지만 관포지교(管鮑之交)와 같은 깊은 우정을 맺고 살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어려운 일이 있거나 병들었을 때 서로 위로하고 걱정해줄 수 있는 정다운 이웃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늘 만나도 좋은 친구, 약간의 실수가 있어도 덮어줄 수 있는 친구, 답답할 때 허물없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내 주변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늘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는 조용한 카페에서 향긋한 커피를 함께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여자도 좋고 남자도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유안진 씨의 ‘지란지교’를 생각하면 철없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내가 살아온 인생역정이 떠오르며, 미구에 닥쳐올 세월을 두려워하며 오늘 하루도 또 넘기고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쉽고 후회스러운 것은 문학가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나는 젊은 날 문학가가 꿈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사는 것이 급해서 그런 꿈을 접어야 할 형편이었으니까. 그러나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쉬움과 그리움뿐이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길이 지혜롭지 못하고 슬프더라도 아무것도 부러워하지도 말고, 원망하지도 말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곧 행복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강현진(새크라멘토 한국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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