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방문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대만해협 긴장 최고조

25년 만의 연방 하원의장 대만 방문
군사 대응 시사 중국 고강도 반발 전망

대만을 전격 방문한 낸시 펠로시 연방 하원의장. 사진 낸시 펠로시 SNS.
미국 권력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연방 하원의장이 중국의 강력 반발에도 결국 2일(현지시간) 대만 땅을 밟았다.

펠로시 의장은 1997년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 이후 25년 만에 대만을 찾은 최고위급 미국 인사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양상이다.

펠로시 의장을 포함해 연방 하원의원 대표단이 탑승한 항공기가 이날 밤 10시45분께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타이베이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숙박한 후 3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면담 및 오찬, 입법원(의회)과 인권박물관 방문, 중국 반체제 인사 면담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 오후 4~5시께 출국할 것으로 대만 언론들은 관측했다.

이날 펠로시 의장이 탑승한 수송기가 말레이시아에서 출발해 대만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그간 시사해온 ‘군사적 대응’이 실제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 공역에 진입할 무렵 중국 공군기가 대만 해협을 통과 중이라는 중국 매체 보도가 나왔다. 미 해군은 대만과 멀지 않은 필리핀해에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를 비롯한 전함 4척을 전개했다고 로이터가 해군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대만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대만 근처 군사 활동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으며 적의 위협에 대응해 적절히 군사력을 파견할 것”이라며 “우리는 국가 안보를 보장할 투지와 능력, 자신감이 있다”고 밝혔다.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대만 문제에서 신의를 저버리고 멸시하는 것은 미국의 국가신용을 더욱 파탄나게 할 뿐”이라며 미국을 “평화의 파괴자”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펠로시 의장을 겨냥해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해 공공연히 대만 문제에서 불장난을 하고 있다”며 “14억 중국 인민과 적이 되면 결코 좋은 결말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결연하고 강력한 조치를 취해 주권과 안보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며 “만약 미국이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그로 인한 모든 엄중한 후과는 미국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1일 언론 브리핑에서 “하원의장은 대만을 방문할 권리가 있다”며 “하원의장의 방문은 선례가 있으며 하원의장의 방문 가능성으로 현상이 변화되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날 취재진 질문에 “우리는 펠로시 의장이 방문을 결정할 경우 중국이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향후 어떠한 긴장 고조에도 관여하지 않기를 기대한다”고 중국을 압박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미중 갈등은 최악으로 치달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며 국가 핵심이익 수호를 강조해왔다. 앞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달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만 문제를 놓고 “불장난하면 불에 타 죽는다”는 표현을 사용해 경고한 바 있다.

특히 시 주석 입장에선 3연임을 확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을 당 대회(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앞두고 미국에 강력 경고했음에도 불거진 이번 일로 대만 문제에 대한 강인한 이미지가 훼손됐다고 판단해 강경한 조치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대만 주변을 포함한 중국의 군사 활동 증가를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라고 비난하며 대중국 견제에 동맹과 파트너를 규합해온 미국 정부로선 긴장을 조성하는 도발로 규정하고 대응에 나설 수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이 바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을 의식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미국에 대만은 군사안보적 차원뿐만 아니라 중국과 기술패권 경쟁 차원에서 가치가 더해진 곳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미국이 추구하는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서 핵심 플레이어 중 하나다.

이번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 한반도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앞으로 한국에 대한 미·중의 전략적 이해 관철 노력이 강도를 더할 경우 정부는 더욱 더 쉽지 않은 선택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미국은 한국과 일본, 대만을 참여시켜 반도체 공급망 동맹(칩4)을 만든다는 구상 아래 한국에 8월말까지 입장 통보를 요구했고, 중국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심화할 경우 북한의 핵실험 저지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는 더욱 산만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펠로시 의장의 중국 견제 행보는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91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2년 전 유혈진압된 톈안먼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간 이들에게’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고 추모 성명을 낭독했다가 공안에 붙들려 구금된 바 있다. 이후에도 중국 공산당이 시위대를 학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톈안먼 민주화 시위 33주년을 맞은 올해는 성명을 통해 공산당을 ‘억압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2002년에는 후진타오 당시 중국 부주석에게 구금된 중국·티베트 활동가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편지를 전달하려 했고, 이후 후진타오가 주석이 된 후에는 류샤오보 등 정치범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신을 직접 전달했다.

또 인권 탄압을 이유로 중국의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유치를 반대했고, 중국 신장 위구르족 인권탄압을 문제 삼아 올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 보이콧’도 주도했다. 한편, 이날 저녁 펠로시 의장의 숙소로 알려진 그랜드 하얏트 호텔 앞에서는 대만 야당인 ‘신당’ 주도로 “펠로시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을 전쟁터로 만들고 대만을 불구덩이로 몰아넣었다”며 펠로시의 방문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빈과일보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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