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감독·연출가로 50여 편 브로드웨이 작품 참여
60대에 연기 전향해 ‘소프라노스’·‘굿 와이프’ 등 활약
브로드웨이 무대 뒤에서 수십 년간 경력을 쌓은 뒤 60대에 연기자로 전향해 큰 사랑을 받은 제리 애들러가 별세했다고 AP가 보도했다. 향년 96세.
애들러는 23일 평화롭게 잠든 채 세상을 떠났다고 가족들은 밝혔다. 리버사이드 메모리얼 채플이 이를 확인했으며, 패러다임 탤런트 에이전시의 사라 슐만은 가족을 대신해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사인은 즉각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애들러는 드라마 소프라노스에서 토니 소프라노의 조언자 헤시 래브킨으로 전 시즌에 출연했으며, 굿 와이프에서는 로펌 파트너 하워드 라이먼을 연기했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 그는 무려 53편의 브로드웨이 작품에서 무대 감독, 프로듀서, 연출가로 활동했다.
그의 가족은 유대인 연극과 이디시 극단에 뿌리를 둔 대표적인 예술 가문이었다. 부친 필립 애들러는 그룹 시어터와 브로드웨이 제작의 총괄 매니저였으며, 사촌 스텔라 애들러는 전설적인 연기 지도자로 이름을 남겼다. 애들러는 2015년 시어터매니아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족보 덕을 본 인물”이라며 “시러큐스 대학 재학 중, 부친이 젠틀맨 프리퍼 블론즈의 총괄 매니저였는데, 무대 감독 보조 자리가 비자 학교를 건너뛰고 그 자리에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오리지널 마이 페어 레이디를 비롯해 말레네 디트리히, 줄리 앤드루스, 리처드 버튼 등 수많은 스타와 작업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1980년대 브로드웨이가 침체기에 접어들자 무대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 TV 드라마 산타 바바라 제작에 참여했다. 그는 1992년 뉴욕타임스에 “평범한 경력의 황혼기를 맞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연기 전환의 계기는 우연이었다. 딸의 오랜 친구였던 캐스팅 디렉터 도나 아이작슨이 영화 더 퍼블릭 아이의 배역을 추천했고, 감독 하워드 프랭클린은 수십 명의 배우를 본 끝에 애들러의 대사를 듣고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이로써 그는 영화 맨해튼 머더 미스터리 등에서 얼굴을 알렸고, 데이비드 체이스가 집필한 노던 익스포저 출연을 계기로 훗날 소프라노스와의 인연도 이어졌다.
애들러는 원래 단역으로 등장할 예정이었던 헤시 역으로 고정 출연을 이어갔다. 그는 2015년 포워드와의 인터뷰에서 “체이스가 파일럿 촬영 당시 카메오를 부탁했다. 원래 한 번 출연으로 끝날 예정이었는데, 제작진이 캐릭터를 마음에 들어 해 매달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연기 활동은 레스큐 미, 매드 어바웃 유, 트랜스페어런트, 웨스트 윙, 브로드 시티까지 이어졌다. 무대에도 복귀해 2000년 일레인 메이의 톨러 댄 어 드워프, 2015년 래리 데이비드의 피시 인 더 다크에 출연했다. 그는 당시 “연기를 즐기기 때문에 한다. 은퇴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길이다. 누군가 더 이상 부르지 않으면 그게 은퇴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회고록 <말로 다 못할 웃음: 브로드웨이, TV, 영화 무대 뒤 이야(Too Funny for Words: Backstage Tales from Broadway, Television and the Movies)>를 출간했다. 그는 CT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언제든 새로운 역할을 맡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아내 조안 랙스먼과 함께 코네티컷에서 고향 뉴욕으로 돌아왔다. 유족으로는 네 딸이 있다.
애들러는 스스로를 “연기하기엔 너무 우스꽝스러운 얼굴”이라고 생각해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낯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수십 년간 무대 뒤에 머물렀던 자신이 대중에게 알아보이는 경험은 특별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1992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불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애들러는 23일 평화롭게 잠든 채 세상을 떠났다고 가족들은 밝혔다. 리버사이드 메모리얼 채플이 이를 확인했으며, 패러다임 탤런트 에이전시의 사라 슐만은 가족을 대신해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사인은 즉각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애들러는 드라마 소프라노스에서 토니 소프라노의 조언자 헤시 래브킨으로 전 시즌에 출연했으며, 굿 와이프에서는 로펌 파트너 하워드 라이먼을 연기했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 그는 무려 53편의 브로드웨이 작품에서 무대 감독, 프로듀서, 연출가로 활동했다.
그의 가족은 유대인 연극과 이디시 극단에 뿌리를 둔 대표적인 예술 가문이었다. 부친 필립 애들러는 그룹 시어터와 브로드웨이 제작의 총괄 매니저였으며, 사촌 스텔라 애들러는 전설적인 연기 지도자로 이름을 남겼다. 애들러는 2015년 시어터매니아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족보 덕을 본 인물”이라며 “시러큐스 대학 재학 중, 부친이 젠틀맨 프리퍼 블론즈의 총괄 매니저였는데, 무대 감독 보조 자리가 비자 학교를 건너뛰고 그 자리에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오리지널 마이 페어 레이디를 비롯해 말레네 디트리히, 줄리 앤드루스, 리처드 버튼 등 수많은 스타와 작업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1980년대 브로드웨이가 침체기에 접어들자 무대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 TV 드라마 산타 바바라 제작에 참여했다. 그는 1992년 뉴욕타임스에 “평범한 경력의 황혼기를 맞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연기 전환의 계기는 우연이었다. 딸의 오랜 친구였던 캐스팅 디렉터 도나 아이작슨이 영화 더 퍼블릭 아이의 배역을 추천했고, 감독 하워드 프랭클린은 수십 명의 배우를 본 끝에 애들러의 대사를 듣고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이로써 그는 영화 맨해튼 머더 미스터리 등에서 얼굴을 알렸고, 데이비드 체이스가 집필한 노던 익스포저 출연을 계기로 훗날 소프라노스와의 인연도 이어졌다.
애들러는 원래 단역으로 등장할 예정이었던 헤시 역으로 고정 출연을 이어갔다. 그는 2015년 포워드와의 인터뷰에서 “체이스가 파일럿 촬영 당시 카메오를 부탁했다. 원래 한 번 출연으로 끝날 예정이었는데, 제작진이 캐릭터를 마음에 들어 해 매달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연기 활동은 레스큐 미, 매드 어바웃 유, 트랜스페어런트, 웨스트 윙, 브로드 시티까지 이어졌다. 무대에도 복귀해 2000년 일레인 메이의 톨러 댄 어 드워프, 2015년 래리 데이비드의 피시 인 더 다크에 출연했다. 그는 당시 “연기를 즐기기 때문에 한다. 은퇴는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길이다. 누군가 더 이상 부르지 않으면 그게 은퇴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회고록 <말로 다 못할 웃음: 브로드웨이, TV, 영화 무대 뒤 이야(Too Funny for Words: Backstage Tales from Broadway, Television and the Movies)>를 출간했다. 그는 CT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언제든 새로운 역할을 맡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아내 조안 랙스먼과 함께 코네티컷에서 고향 뉴욕으로 돌아왔다. 유족으로는 네 딸이 있다.
애들러는 스스로를 “연기하기엔 너무 우스꽝스러운 얼굴”이라고 생각해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낯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수십 년간 무대 뒤에 머물렀던 자신이 대중에게 알아보이는 경험은 특별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1992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불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