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날’ 맞아 독일 두 곳에 소녀상…쾰른이어 카셀에도 세워져

나치기록박물관 앞 3개월 전시…시장 "다른 데 세워라" 한때 어깃장
전시기획자 "시장이 일본 뜻 들어줘…소녀상은 잊혀진 피해자 목소리"

쾰른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자료사진.
“이제 내 나이가 70이 다 됐소. 하고 싶은 말은 내가 꼭 하고야 말거요.”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쾰른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은 34년 전 위안부 피해자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시작했다. 사회를 본 여성운동가 프란치는 고 김학순·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을 대독한 뒤 “몇 주 전만 해도 소녀상을 이곳에 전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며 이번 전시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연대의 표시라고 말했다.

평화의 소녀상이 쾰른 시내 나치기록박물관 앞에 설치됐다. 6월1일까지 이곳 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제3세계’의 일환이다. 박물관 안에는 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지에서 자행된 여성 상대 전쟁범죄 기록물과 관련 작품들이 전시된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2000년 일왕과 일본 정부에 유죄 판결을 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피해자 고 황금주 할머니의 육성 증언 등을 소개한다.

소녀상 제막식에는 250여명이 참석해 소녀상 곁에 꽃다발을 놓고 사진을 찍으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렸다. 시민 주자네 프랑크는 “전쟁이든 평화 시기든 여성이 부당한 일을 겪는 일이 몹시 자주 일어난다”며 “소녀상이 다루는 주제는 그래서 역사적 갈등 문제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현실의 문제”라고 말했다.

2021년 독일 드레스덴 민속박물관에서 3개월간 처음 전시된 이 소녀상은 쾰른으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쾰른 연구자·언론인 모임인 국제연구협회는 2년 전부터 소녀상을 포함한 이번 전시를 준비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헨리에테 레커 쾰른 시장이 제동을 걸면서 소녀상 전시가 무산될 위기를 맞았다.

레커 시장은 박물관 앞 인도보다 접근하기 어려운 박물관 뒷마당을 대체 장소로 제시했다. 그는 전시 주최 측과 시민단체들이 항의 서한을 보내고 지역 정치권이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자 반대 입장을 철회했다.

일각에서는 세계 곳곳의 소녀상 갈등과 마찬가지로 일본 측이 전시를 무산시키기 위해 로비했다고 의심한다. 지역 신문에서 소녀상 기사를 읽고 찾아왔다는 40대 초등학교 교사는 “일본은 위안부의 존재를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 독일 측에서 (로비에) ‘아니오’라고 말했어야 옳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번 전시 큐레이터 카를 뢰셀도 “레커 시장이 의회의 결정을 받아야 한다는 관료주의적 이유를 들었지만 우리가 보기엔 일본 측 뜻에 맞춰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쾰른은 일본 교토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레커 시장은 작년에 일본 총영사를 만나 (쾰른이 속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는 누구도 소녀상을 세울 생각을 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며 “우리에게 일본 언론사 3곳에서 연락을 해왔다. 우리가 쾰른에서 하는 일을 일본이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제3세계를 30년 넘게 연구 중인 그는 “비문에 적혀 있듯 소녀상은 일본 전쟁범죄뿐 아니라 유럽과 (나치) 독일군, 오늘날 전쟁 성폭력에 관한 것”이라며 소녀상이 잊혀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사책에는 이 전시회가 보여주는 모든 것이 적혀 있지 않다. 역사의 절반이 사라진 상황을 전시를 통해 바꾸고 싶었다”고 했다.

쾰른에서 동쪽으로 약 170㎞ 거리에 있는 카셀에서도 또다른 소녀상이 새 터전을 잡았다. 2년간 창고에 보관돼 있던 소녀상이 이날 카셀대 인근 교회 노이에브뤼더키르헤에 설치됐다.

이 소녀상은 카셀대 학생들 노력으로 2022년 7월 대학 캠퍼스에 설치됐으나 대학 측이 이듬해 3월 철거했다. 당시에도 일본 총영사가 카셀대 총장에게 ‘반일 감정을 조장한다’며 소녀상 철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정당국의 철거명령에 소송 중인 베를린 소녀상 앞에서도 여성의 날을 맞아 집회가 열렸다. 아프가니스탄·시리아·이라크 출신 이주민 청소년들로 구성된 합창단 ‘레베초 걸스’가 소녀상 앞에서 성폭력과 전쟁범죄 없는 세상을 노래했다.

독일 내 소녀상 설치에 애써온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쾰른 시민들에게 “두 소녀상이 창고에 보관돼 있다가 오늘 빛을 보게 돼 기쁘다”며 “3개월이 아니라 영원히 머물렀으면 한다. 시민들이 이곳에 더 오래 두고 즐기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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