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 논문으로 논란을 일으킨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와 일본 우익의 접점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가 2일 입수한 우익 성향 연구단체 ‘일본 문명 연구 포럼‘ 임원진 명단에는 램지어 교수의 이름이 명기돼 있다.
이 연구단체의 임원 9명 중 일본인이 아닌 학자는 램지어 교수와 제이슨 모건 일본 레이타쿠대 교수, 케빈 도크 조지타운대 교수 등 3명이다. 모건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자신이 발표한 역사 왜곡 논문들의 책머리에 빼놓지 않고 감사를 표시한 인물이다.
‘미국·중국·한국도 반성하고 일본을 배우세요‘ 등 일본 극우파 취향의 단행본을 잇따라 발표했을 뿐 아니라,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 왜곡 논문에 참고한 하타 이쿠히코의 저서 ‘위안부와 전장의 성‘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일본학자인 도크 교수도 친일적인 언사로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는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옹호했을 뿐 아니라 한국의 야스쿠니 비판에 대해 “북한에 자신들도 같은 반일 민족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일본 극우파의 구미에 맞는 미국인 학자들을 대거 이사진으로 위촉한 이 연구단체는 2019년 출범했다. 출범 후 첫 행사는 모건 교수의 책 ‘리버럴에 지배당한 미국의 말로‘를 논의하는 세미나였다. 이 책에는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반일 활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후에도 이 단체는 ‘일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으로, 국가로서의 일본과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편 일제시대 법학자 가케 가츠히코에 대한 세미나를 여는 등 우익 이데올로기에 편향된 활동을 펼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단체가 주소를 둔 레이타쿠 대학은 일본 우익 학자들의 집결지로 알려져 있다. 위안부 납치 날조설을 퍼뜨리는 니시오카 쓰토무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 회장은 이 대학의 객원교수이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부회장이었던 다카하시 시로는 레이타쿠대학원 특임교수다.
이들은 오는 24일 일본 우익단체가 램지어 교수를 지지하기 위해 개최하는 심포지엄에 발표·토론자로 참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일본 우익의 인맥과 활동에서 레이타쿠대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레이타쿠 대학을 운영하는 ‘모럴로지 도덕 교육재단‘은 일본 극우세력의 결합체인 ‘일본회의‘에서도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회의의 새 역사교과서 보급 운동에 재정적 지원을 하는 등 일본 우익의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럴로지 재단은 2019년 7월 램지어 교수를 초청해 특별연구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전년도인 2018년에 일본 정부로부터 국가 훈장인 욱일중수장을 받은 램지어 교수와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모럴로지 재단이 직접 공을 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경제법 전공인 램지어 교수가 2019년부터 역사 현안에 대한 논문을 연이어 발표한 배경이 더욱 의심스러워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모럴로지 재단이 재정 지원을 하는 일본문명연구포럼의 이사로 취임하고, 재단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한 뒤부터 램지어가 전공도 아닌 역사 문제에 천착했다는 것이다. 위안부 납치를 비롯해 간토대지진의 조선인 학살과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을 부정하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일본 우익의 시각과 동일하다.
램지어가 어린 시절 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이 같은 우익 사관의 세례를 받은 것은 우익과의 접점이 만들어진 2019년 전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문명연구포럼은 연합뉴스가 램지어 교수의 임원 재직 사실을 취재한 직후인 5일 홈페이지에서 그가 포함된 임원 명단을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