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민주주의 가치·AI 시대 비전 확립이 전환적 정부 성공의 관건”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한국프로그램 세미나
안병진 교수 “가치 중심의 리더십 필요” 강조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 역임 입체적 분석

‘전환적 정치 질서의 시작? 이재명 정부에 대한 초기 평가’를 주제로 한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한국프로그램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는 안병진 교수. 사진=스탠퍼드대 APARC.
올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명확한 민주주의 가치와 인간 중심의 비전을 확립해야 소통과 실용주의, 인공지능(AI) 시대 중심 전략을 통해 새로운 정치 질서를 모색하는 ‘전환적 정부’로 성공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 한국프로그램 방문연구원인 안병진 경희대 교수가 지난 4일 엔시나홀 필리핀룸에서 열린 ‘전환적 정치 질서의 시작? 이재명 정부에 대한 초기 평가’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밝힌 내용이다.

안 교수는 특히 이재명 정부에서 국가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바 있어 현 정권의 내부자로서 현재 한국 정치가 마주한 구조적 변화와 위험, 그리고 가능성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APARC는 안 교수가 가진 민주화운동 경력과 미국 정치 연구 이력이 그의 분석에 현실적 감각과 학술적 깊이를 동시에 더한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이날 세미나에서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을 성과 중심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고 전제하면서도, 이미 몇 가지 상징적 장면이 대중의 인식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적으로 가장 널리 회자된 장면은 대통령이 참모들과 김밥을 먹는 모습이다. 그는 이 장면을 “전 정부의 사치 논란과 대비되는 소박함과 현장형 리더십을 보여준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일상적 행동이야말로 한국 유권자에게 대통령의 스타일과 리더십을 강하게 각인시키는 정치적 언어라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주요 정상들과의 연쇄 회담이 주목받았다. 안 교수는 대규모 조선업 투자 유치 추진이나 핵추진 잠수함 논의처럼 논쟁적 이슈를 과감히 제기한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의문”이라고 진단하면서도, 한국의 산업·전략적 이해를 최대화하려는 대담하고 계산된 실용주의의 표현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리더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국내 환경에 대해 안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는 제도적 취약성과 시민적 동원력이 공존하는 ‘이중 민주주의(dual democracy)’라는 구조적 특징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당시 시민들이 밤새 국회로 모여 이를 저지한 사례를 언급하며 “제도는 불안정하지만,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울타리로 기능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팬덤 정치와 전투적 당파성이 확산되면서 자유주의적 규범이 침식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당 내부에도 자유주의적·비자유주의적 경향이 혼재하며, ‘상대 진영에 대한 응징’을 정치 목표로 삼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에 대해 그는 “뛰어난 전술가이자 현실주의자”라고 평가하면서도, 자유주의 가치와 헌정 민주주의 원칙을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할지는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지금까지는 보복 정치로 비칠 만한 조치를 상대적으로 회피해 왔다고 설명했다.

빠르게 재편되는 국제환경 속에서 한국이 맡게 될 전략적 역할도 주요 논점이었다. 한국은 미국의 AI·첨단 제조 분야에서 필수적 파트너로 부상했고, 식민지 경험과 발전 모델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연대를 쉽게 만든다. 또한 K-팝·K-드라마와 BTS·손흥민 등 문화자산이 한국의 영향력을 비약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안 교수는 이러한 요소가 결합되면서 한국이 미국, 중국, 일본, 글로벌 사우스를 연결하는 ‘다층적·유연한 브리지(multiflexible bridge)’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AI 기술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강한 낙관론은 위험을 동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AI 설계부터 제조까지 아우르는 전 생산체인을 확보한 것은 강점이지만, 플랫폼 독점, 감시 강화, 민주적 통제 약화와 같은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AI 시대의 국정 비전은 효율성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적 책임성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재명 정부가 진정한 의미의 전환적 정부로 기억될 수 있을지는 “실용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명확한 가치와 방향성 제시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AI 기반 산업 전환, 미·중 전략 경쟁, 국내 양극화 등 복합적 위기가 겹친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정책 테크닉을 넘어서는 가치 중심의 리더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최정현 기자 / choi@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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