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개한 강제징용 해법에 피해자측 ‘강력반발’…난항 이어질 듯

'의견수렴' 토론회 열었지만 피해자와 간극 극명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12일 오전(한국시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정부가 12일(한국시간) 공개 토론회에서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을 사실상 공식화했지만 피해자 측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이날 토론회는 정부가 폭넓은 의견수렴을 위해 만든 자리였으나, 결과적으로 정부와 피해자 측의 간극이 극명하게 노출돼 난항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토론회에서 제시한 해결안의 핵심은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제3자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의 재원으로 판결금을 대신 변제받는 것이다. 피해자(채권자)들이 가진 채권은 대법원 확정판결에 의해 발생한 ‘법정채권’이기 때문에 이런 제3자 변제 방식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최우균 법률사무소 자유 변호사는 “법으로 인정된 채권이기 때문에 사적자치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없고 당사자가 채권의 추심을 반대한다 해도 제3자가 변제할 수 있다는 게 유력한 학설”이라고 정부 주장을 해석했다.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발제에서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4년 이상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일단 법적인 관점에서 현실적인 방안을 찾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일본 기업이 판결을 이행해 직접 배상하길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차선책이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런 간접 보상을 정당화할 일본의 호응 조치 수위는 안갯속이라는 게 이날 토론회에서 다시 드러났다. 서 국장은 일본의 재원 기여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창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만 했다. 판결금 지급으로 비칠 수 있는 피고 기업의 직접적 재원 기여를 담보하기 매우 어렵고, 기부금을 받더라도 판결 이행으로 보이지 않도록 ‘묘안’을 찾아야 함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12일 오전(한국시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또 다른 발제자인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은 국내 청구권자금 수혜 기업의 기부를 거론했는데, 일본의 참여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우선 재원 조성에 참여하는 것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피해자 측은 “한국이 먼저 출연하고 일본의 호응을 기대하겠다는 것은 일본 책임을 면책해 주는 것”(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이라며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교도통신은 한국 측이 구상권을 포기한다면 일본 기업 기부를 용인하는 방안이 일본 정부 내에서 부상하고 있다고 이날 보도했는데, 핵심인 피고 기업의 기부가 포함된 안인지는 불분명하다. 일본의 사과 수위가 피해자와 여론의 기대를 충족할지도 문제다.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 관계자가 전후 50주년 담화 등에서 과거 표명한 ‘반성’과 ‘사죄’를 계승한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사죄는 곤란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 또한 “일본이 이미 표명한 과거에 대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성실히 유지·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양국 모두 일본이 과거 담화 등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사과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 임재성 변호사는 토론회 후 기자들과 만나 “피해자들이 원하는 사과는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사실 인정과 이에 대한 반성·사과”라며 “지금과 같은 방식의 외교부가 추진하는 사과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 수준을 떠나 일본이 나름대로 호응 조치를 검토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협상을 통한 진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의 배상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요지부동이던 일본이 조금이나마 움직인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서 국장은 “정부가 반드시 얻어내야 하는 조치를 게을리하지 않겠다”며 지속적인 대일 협상 의지도 거듭 강조했다.

한편 국내적으로는 피해자의 동의 없는 제3자 변제가 가능한지 등을 두고 법적 논란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병존적 채무 인수를 위해서는 재단이 일본 기업의 채무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본 기업이 ‘채무가 존재한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대법원 판결 자체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일본 입장과는 결이 다르다.

임 변호사는 “일본이 본인이 채무자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진의가 아닌 방식으로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면 이는 무효 사안”이라며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병존적 채무인수를 하고 재단이 공탁서를 법원에 넣으면 집행사건이 모두 각하되거나 취하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토론회에서는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과 그 외 다양한 피해자 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분출되기도 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인 한문수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는 토론회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그분들도 피해자이지만 훨씬 더 많은 유족이 그토록 주장해온 실질적 지원을 재단이 해준 적이 없는데 왜 특별히 대우해주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재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향후 이어질 수 있는 소송과 전체 피해자들을 모두 포괄할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야권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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