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이 오면 샌프란시스코의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서도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짐을 느낍니다. 107년 전, 한반도를 뒤흔들었던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단순한 저항의 외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낡은 굴레를 벗어던지고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를 향해 내디딘 거대한 첫걸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3.1 운동을 되새기며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3.1 운동이 결코 과거 조선 왕조의 복구(復辟)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기미독립선언서는 더 이상 ‘왕의 신하’로 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나라의 주인’인 시민이 되겠다는 준엄한 선언이었습니다. 억압받던 민중이 스스로 역사의 주체로 등장하여, ‘제국(帝國)’의 시대를 끝내고 ‘민국(民國)’의 시대를 열어젖힌 것입니다.
이러한 민주적 열망은 3.1 운동 직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명문화된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법과 투표, 그리고 시민의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나라.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이 민주공화국의 뿌리는 바로 107년 전 그 뜨거웠던 함성 속에 있었습니다.
최근 고국에서는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두고 1919년인가 혹은 1948년인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본질은 대한국인들이 스스로 일어서 나라의 주체가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선언한 이 시점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필라델피아에 모인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을 선언한 7월 4일임을 의심하지 않듯 대한민국의 시작은 바로 이 날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19년 3·1 운동과 임시정부의 수립은 우리 민족이 주권을 가진 ‘자주민’임을 선포하고 민주공화국의 ‘설계도’를 완성한 정신적 건국의 해입니다. 그리고 한성 임시정부 상해 임시정부를 거쳐1948년 정부 수립은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비바람을 막아줄 ‘실질적인 국가의 건물’을 완공하여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우뚝 선 역사적 결실입니다. 즉, 1919년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무의 뿌리가 내린 시점이라면, 1948년은 그 나무가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기 시작한 시점인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은 서구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프랑스 대혁명에 비견될 만한 자랑스러운 대사건입니다. 1789년 프랑스 시민들이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전제 군주제를 무너뜨렸듯이, 우리 선조들 또한 1919년 기미년의 함성을 통해 수천 년 이어온 전제 정치의 시대를 벗어났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유럽의 근대화를 이끌었듯이, 3·1 운동은 아시아에서 민중이 주체가 되어 ‘공화정’이라는 현대적 가치를 선포한 아시아판 ‘시민 대혁명’이었습니다.
머레이 라스바드(Murray Rothbard)는”국가의 해부(Anatomy of the State)”라는 책에서 국가의 기원을 칼 들고 마을로 쳐들어온 산적 집단으로부터 찾는 재미있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국가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기구’가 아니라, 생산적인 사회 세력의 부를 약탈하기 위해 폭력을 독점하는 기생적인 조직으로 정의합니다. 일반적으로 3.1운동은 일본이라는 ‘외국’에 맞선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라스바드의 관점에서는 3.1 운동은 단순히 국적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봉건 왕조이든 침략적 외세이든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무단으로 침해하는 모든 폭압적 기구에 대한 민중의 근본적인 거부였습니다.
3.1운동 당시에 낭독된 기미독립선언서는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독립적인 비판적 지성’의 산물입니다. 3.1운동은 국가의 지시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종교계, 학생, 상인,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집하여 형성한 거대한 사회적 열망의 표출이었습니다. 이는 중앙집권화된 국가 권력이 없어도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공동의 목표(자유)를 위해 연대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로 해석됩니다.
특히 우리 샌프란시스코 동포들에게 3.1 운동의 민주적 가치는 더욱 각별합니다.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곳 북가주 땅은 민주적 자치 운영의 살아 있는 실험실이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이대위 목사님을 비롯한 선조들은 대한인국민회를 통해 1인 1표의 투표제를 실시하고, 토론과 합의를 통해 공동체를 운영하는 선진적인 민주 시스템을 이미 실천하고 계셨습니다.
무형의 국가와 같았던 이곳의 자치 조직들은 3.1 운동 이후 탄생한 민주공화정부의 든든한 모델이자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한인 사회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설계도가 그려진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그 정신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가꾸어야 할 과정입니다. 선조들이 꿈꿨던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오늘날 우리 한인 사회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그들의 대표자라고 자처하는 분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며, 투명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또한, 우리의 차세대들에게 이 위대한 유산을 전해야 합니다. “너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단순히 지배에 저항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앞선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싸웠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샌프란시스코라는 역사적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 기성세대의 사명입니다.
107년 전 선언된 민주적 정부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작년에 이어 3·1절 행사가 각 지역 한인회별로 따로 거행된다는 소식에 더해 모 지역 한인회 회장 선거와 관련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라스바드가 지적한 대로 칼 든 산적이 마을로 내려와 왕 노릇을 하는 것을 막으려면 마을 사람 한 분 한 분이 자기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리게 해야 합니다. 보다 민주적이고 지역 한인 모든 분이 주인이 되는 한인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107년 전 선조들의 목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저 앞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뿐이다.”
김지수 변호사·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한인회 이사장
오늘날 우리가 3.1 운동을 되새기며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3.1 운동이 결코 과거 조선 왕조의 복구(復辟)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기미독립선언서는 더 이상 ‘왕의 신하’로 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나라의 주인’인 시민이 되겠다는 준엄한 선언이었습니다. 억압받던 민중이 스스로 역사의 주체로 등장하여, ‘제국(帝國)’의 시대를 끝내고 ‘민국(民國)’의 시대를 열어젖힌 것입니다.
이러한 민주적 열망은 3.1 운동 직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명문화된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법과 투표, 그리고 시민의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나라.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이 민주공화국의 뿌리는 바로 107년 전 그 뜨거웠던 함성 속에 있었습니다.
최근 고국에서는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두고 1919년인가 혹은 1948년인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본질은 대한국인들이 스스로 일어서 나라의 주체가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선언한 이 시점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필라델피아에 모인 건국의 아버지들이 독립을 선언한 7월 4일임을 의심하지 않듯 대한민국의 시작은 바로 이 날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19년 3·1 운동과 임시정부의 수립은 우리 민족이 주권을 가진 ‘자주민’임을 선포하고 민주공화국의 ‘설계도’를 완성한 정신적 건국의 해입니다. 그리고 한성 임시정부 상해 임시정부를 거쳐1948년 정부 수립은 그 설계도를 바탕으로 비바람을 막아줄 ‘실질적인 국가의 건물’을 완공하여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우뚝 선 역사적 결실입니다. 즉, 1919년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무의 뿌리가 내린 시점이라면, 1948년은 그 나무가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기 시작한 시점인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은 서구 민주주의의 근간이 된 프랑스 대혁명에 비견될 만한 자랑스러운 대사건입니다. 1789년 프랑스 시민들이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전제 군주제를 무너뜨렸듯이, 우리 선조들 또한 1919년 기미년의 함성을 통해 수천 년 이어온 전제 정치의 시대를 벗어났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유럽의 근대화를 이끌었듯이, 3·1 운동은 아시아에서 민중이 주체가 되어 ‘공화정’이라는 현대적 가치를 선포한 아시아판 ‘시민 대혁명’이었습니다.
머레이 라스바드(Murray Rothbard)는”국가의 해부(Anatomy of the State)”라는 책에서 국가의 기원을 칼 들고 마을로 쳐들어온 산적 집단으로부터 찾는 재미있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국가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기구’가 아니라, 생산적인 사회 세력의 부를 약탈하기 위해 폭력을 독점하는 기생적인 조직으로 정의합니다. 일반적으로 3.1운동은 일본이라는 ‘외국’에 맞선 민족주의적 독립운동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라스바드의 관점에서는 3.1 운동은 단순히 국적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봉건 왕조이든 침략적 외세이든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무단으로 침해하는 모든 폭압적 기구에 대한 민중의 근본적인 거부였습니다.
3.1운동 당시에 낭독된 기미독립선언서는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독립적인 비판적 지성’의 산물입니다. 3.1운동은 국가의 지시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종교계, 학생, 상인,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집하여 형성한 거대한 사회적 열망의 표출이었습니다. 이는 중앙집권화된 국가 권력이 없어도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공동의 목표(자유)를 위해 연대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로 해석됩니다.
특히 우리 샌프란시스코 동포들에게 3.1 운동의 민주적 가치는 더욱 각별합니다.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곳 북가주 땅은 민주적 자치 운영의 살아 있는 실험실이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이대위 목사님을 비롯한 선조들은 대한인국민회를 통해 1인 1표의 투표제를 실시하고, 토론과 합의를 통해 공동체를 운영하는 선진적인 민주 시스템을 이미 실천하고 계셨습니다.
무형의 국가와 같았던 이곳의 자치 조직들은 3.1 운동 이후 탄생한 민주공화정부의 든든한 모델이자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한인 사회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설계도가 그려진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그 정신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가꾸어야 할 과정입니다. 선조들이 꿈꿨던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오늘날 우리 한인 사회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그들의 대표자라고 자처하는 분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며, 투명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또한, 우리의 차세대들에게 이 위대한 유산을 전해야 합니다. “너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단순히 지배에 저항한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앞선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싸웠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이 샌프란시스코라는 역사적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 기성세대의 사명입니다.
107년 전 선언된 민주적 정부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곳 샌프란시스코에서 작년에 이어 3·1절 행사가 각 지역 한인회별로 따로 거행된다는 소식에 더해 모 지역 한인회 회장 선거와 관련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라스바드가 지적한 대로 칼 든 산적이 마을로 내려와 왕 노릇을 하는 것을 막으려면 마을 사람 한 분 한 분이 자기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리게 해야 합니다. 보다 민주적이고 지역 한인 모든 분이 주인이 되는 한인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107년 전 선조들의 목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저 앞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뿐이다.”
김지수 변호사·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한인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