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실리콘밸리 한인회, ‘열린 한인회’로 나아가야

김지수 변호사. 베이뉴스랩 포토뱅크.
최근 실리콘밸리 한인회 제23대 회장 선거를 둘러싼 잡음이 한인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정관에도 없는 연령 제한 규정을 선거관리 규정에 삽입해 효력 논란을 빚는가 하면, 불투명한 후보 등록 무효 결정 과정으로 커뮤니티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지역 한인회가 대다수 교민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현 상황에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미래지향적인 한인 사회를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합니다.

1945년, 현대 자유주의 철학의 거두 칼 포퍼(Karl Popper)는 나치즘과 공산주의 등 전체주의에 맞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발표했습니다. 포퍼가 강조한 열린 사회의 핵심은 “피를 흘리지 않고도 통치자를 교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습니다. 그는 완벽한 유토피아를 설계하는 것보다, 잘못된 통치나 정책을 평화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전통 철학이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에 집착했다면, 포퍼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전제로 “나쁜 통치자가 큰 해악을 끼치기 전에 어떻게 평화적으로 교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민주주의란 단순히 다수결의 원칙이 아니라, 비판과 투표를 통해 통치자를 갈아치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의미합니다. 이 원칙은 우리 교민 사회의 대표 단체인 한인회에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합니다.

현재 실리콘밸리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행보는 이러한 민주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사회는 최상위 규범인 정관에도 없는 ‘70세 이하 연령 제한’을 하위 규정인 선거관리 규정에 두어 특정 후보의 진입을 막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 규정은 지역 한인들의 중지를 모으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선거 직전까지 제대로 공개되지도 않았습니다.

현 회장 임기 중 정관 개정을 통해 관할 구역을 ‘생활권 기반’으로 넓혀 폐쇄성을 극복하려 했던 본래의 의도가 이러한 하위 규정들로 인해 퇴색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선거관리 규정 제15조(입후보자 자격)는 심각한 불합리함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한인회 선관위가 정관에도 없는 규정을 선거관리 규정으로 신설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해 특정 후보를 배제하는 모습은, ‘위인설법’이란 비난을 피하기 힘듭니다. 이는 또 과거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자가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헌법을 도구화했던 ‘닫힌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칼 포퍼가 말한 “피를 흘리지 않고 통치자를 교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정면으로 역행한 사건이 이승만 정권의 개헌들입니다. 전쟁 중이라는 혼란을 틈타 야당 의원들을 강제로 연금하고 기립 표결이라는 공포 분위기 속에서 통과시킨 이 개헌은, ‘열린 사회’의 핵심인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물리적 압력으로 봉쇄한 사례입니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하려다 정족수에서 한 표가 부족하자, 수학적 원리까지 왜곡하며 억지로 가결시킨 이 사건은 규칙을 만드는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상식’과 ‘논리’를 얼마나 쉽게 저버릴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현재 한인회 선관위가 하위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독단적 주체’의 모습과 궤를 같이합니다.

권력이 시스템보다 위에 서게 될 때 사회는 급격히 폐쇄적으로 변합니다. 박정희 정권이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을 고친 것은 포퍼가 경계한 ‘나쁜 통치자가 해악을 끼치기 전에 교체할 수 있는 장치’를 스스로 파괴한 행위였습니다. 1972년의 유신개헌은 한국판 ‘닫힌 사회’의 정점이었습니다. 대통령에게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고 토론과 비판을 ‘긴급조치’로 재갈 물린 유신 체제는, 사회를 거대한 ‘부족주의(Tribalism)’ 체제로 회귀시켰습니다. 오직 통치자에게 충성하는 집단만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인재들은 공동체에서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위의 역사적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법과 규정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에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한인회에서 벌어지는 연령 제한 논란이나 불투명한 후보 등록 무효 과정은 규모는 다를지언정 본질은 같습니다.

특정 계층(비영리단체 경력자 등)에게만 자격을 부여하는 ‘부족주의적’ 규정은 유신 시대의 폐쇄성과 닮아 있으며, 정관을 무시한 선거관리 규정의 집행은 ‘사사오입’식의 궤변과 다를 바 없습니다. 칼 포퍼가 강조했듯,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다음 세대에게 미래지향적인 사회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이러한 ‘닫힌 사회의 유령’들로부터 단호히 결별하고, 비판적 합리주의가 작동하는 ‘열린 체제’로 복귀해야 합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영어 능력에 관한 자격 요건도 능력의 본질이 아닌 증명서에 집착하는 심각한 문제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규정은 실무적인 영어 소통 능력 자체를 평가하기보다, 어느 교육기관에서 학위를 받았느냐는 형식적 요건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이는 특정 학위를 소유한 집단만을 ‘지도자 자격이 있는 층’으로 규정하는 전형적인 엘리트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시대적 상황 탓에 고등교육의 기회를 공평하게 누리지 못했으나 자력으로 실력을 쌓은 많은 1세대 이민자들 인재나, 현장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활동가들의 한인회 진출을 원천 봉쇄하는 ‘학력 문턱’으로 작용합니다.

미국 내 고등학교나 국제학교, 혹은 종합대학의 학위를 증명서로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특정한 경제적 배경을 가진 계층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민 초기 세대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정규 대학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동포들에게는 가혹한 조건입니다. 이는 한인회가 특정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진 이들만의 ‘그들만의 리그’가 될 위험을 내포하며,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한인회 본연의 목적에 어긋납니다.

종합대학의 영어 교양 과목을 수강했다고 해서 반드시 실무 소통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며, 반대로 학위가 없다고 해서 주류 사회와의 협상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이 규정은 ‘학위 = 지적 능력 = 리더십’이라는 단편적인 등식을 강요합니다. 이는 실질적인 검증(인터뷰, 공개 토론 등) 대신 ‘서류’라는 편의주의적 도구 뒤에 숨어, 다양한 배경을 가진 후보자들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차별적 행위입니다.

규정에는 ‘차세대와의 소통’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학위 중심의 검증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모순적입니다. 실리콘밸리는 학위보다 혁신과 실질적인 역량을 중시하는 문화적 상징성을 가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회가 전통적인 학벌 중심의 검증 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차세대들에게 “실력보다 스펙이 중요하다”는 구시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가치관을 심어줄 우려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해당 규정은 주류 사회와의 소통이라는 현실적 필요성을 넘어, 특정 교육 배경을 가진 소수에게만 리더십을 허용하려는 배타적인 엘리트주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인 공동체의 포용성을 저해하고, 다양한 삶의 궤적을 가진 동포들의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과 같습니다.

• 부족주의(Tribalism)의 전형: 제15조 제1항의 ‘비영리단체 경력 요구’는 한인회를 특정 단체 활동가들만의 전유물로 만듭니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다양한 전문직, 기업인, 차세대 인재들이 공동체에 기여할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닫힌 사회’의 자가당착입니다.
• 자의적 표적 검증: 제15조 제4항의 일정 기준 이상의 학력 요구는 다른 분야에서 역량을 쌓은 인재들을 배제하고, 기존 기득권층만 회장이 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적 오류를 낳습니다.
• 예외 조항의 불투명성: 연령 제한 등에 대한 예외 조항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선관위와 이사회가 이를 적용함에 있어 어떤 진지한 고민과 소통을 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공청회조차 거치지 않은 폐쇄적 자격 규정은 이사회와 선관위가 공정한 ‘심판’을 넘어 규칙을 마음대로 만드는 ‘독단적 주체’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칼 포퍼는 혁명적 시도보다 구체적인 결함을 하나씩 수정하는 ‘점진적 사회공학(Piecemeal Social Engineering)’을 강조했습니다. 한인회가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정관과 규정 사이의 모순을 끊임없이 보완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사회는 정관 개정 과정에서 하위 규정과의 충돌을 방치했습니다.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입니다. 시스템의 허점을 방치하다가 문제가 생기자 모든 책임을 선관위에 일임하고 뒷짐만 지는 태도는 행정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무책임한 처사입니다.

열린 사회의 동력은 비판적 토론입니다. 하지만 이번 후보 무효화 과정에서 나타난 모습은 이성적 비판 대신 욕설과 고성,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전쟁터였습니다. 상대방을 ‘대화의 파트너’가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열린 사회의 가장 큰 적입니다. 논리와 증거가 아닌 목소리 크기로 승부하는 것은 첨단 기술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에 어울리지 않는 낙후된 정치 문법입니다.

칼 포퍼는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 사회의 길뿐이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실리콘밸리 한인회가 진정한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변화를 촉구합니다.

• 개방적 선관위 구성: 후보 및 임원들과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 인사를 영입해 자의적 규정 해석을 막아야 합니다.
• 정관 및 규정의 전면 정비: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차별적인 독소 조항을 과감히 철폐해야 합니다.
• 비판적 합리주의 회복: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 있다”는 자세로 모든 의사결정을 공개 담론의 장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번 사태가 실리콘밸리 한인 사회가 ‘닫힌 부족 사회’의 안온함을 벗어나, 비판과 이성이 살아 숨 쉬는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고통스럽지만 값진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참고로 선거관리 규정 제15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15조(회장단 입후보자 자격)

1. 본 법인의 회장 입후보자는 본 법인의 임원 또는 이사로서 최소 1년 이상 또는 본 정관 (목적)에 규정된 본 법인의 설립 목적과 유사한 목적을 갖고 활동하며, 미국 연방세법 제501조(c)(3) 조항에 따라 면세 지위를 획득한 한인 비영리 단체에서 선거 등록일 기준 최근 5년 동안 임원 또는 이사로서 최소 2년 이상 활동한 자에 한한다.

2. 본 법인의 회장 입후보자는 본 법인 또는 타 비영리단체와의 재정적 거래 또는 지원 관계에 이해충돌이 없는 자로 한정한다. 입후보자는 소속 조직 또는 그 조직의 의사결정기구를 본 법인이나 타 비영리단체의 운영 및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시켜서는 안 되며, 과거 그러한 행위가 발견될 경우 후보 자격이 박탈된다. 단, 해당 상황이 있을 경우 공증받은 사유서를 제출해야 하며, 본 법인의 이사회와 선관위의 연석회의 재적위원 2/3의 동의로 후보 자격이 인정될 수 있다. 또한, 입후보자는 본 법인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다른 단체에서 이사 이상의 직위를 겸임해서는 안 된다.

3. 본 법인의 회장 입후보자는 법인의 동적 성장과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경험, 리더십 능력 및 활력을 갖추어야 하며, 특히 차세대와의 효과적인 소통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된다. 따라서 회장 입후보자는 만 25세 이상 70세 이하로 제한된다. 다만, 후보자의 자격, 경험 및 회장직 수행 능력이 본 규정의 취지를 충분히 충족한다고 판단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는, 선관위가 2/3 찬성으로 결정하고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연령 요건을 면제할 수 있다.
예외 사유에는 다음과 같은 경우가 포함될 수 있다:

• 후보자가 나이는 25세 미만이지만, 이미 5년 이상 비영리단체에서 리더십 경험을 갖추었거나, 커뮤니티 활동 성과가 탁월한 경우
• 후보자가 특정 분야(재정, 법률, 커뮤니티 네트워크 등)에서 특별한 전문성을 보유하여 법인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경우
• 후보자가 젊은 세대 또는 실리콘밸리 한인 커뮤니티 차세대를 대표하며, 조직의 미래 전략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4. 본 법인의 회장 입후보자는 법인의 관할 구역 내 한인 커뮤니티, 미 주류 사회 및 차세대 리더들과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소통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특히 회의 및 공식 문서 작성 등 주요 업무에서 본 법인의 본부가 위치한 구역의 공식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기관에서 영어로 수업이 진행된 학위 증명서 제출 (미국 내 고등학교 또는 전 세계에 있는 국제학교 포함);
• 종합대학의 필수 영어 교양 과목 수강 증명;
• 공식 회의 및 문서 작성에서의 영어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 또는 발언 기록 제출.

김지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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