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반복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망언’, 과연 ‘무대응’으로 해결할 수 있나

대한민국의 영토인 독도. 자료사진.
일본에서 극우 정치인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그 흐름 속에서 주변국을 향한 도발적 발언이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9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또다시 독도 영유권 망언을 내뱉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에서 극우 정치가 힘을 얻을 수 있었던 배경은 전후 일본의 정치 구조, 불완전한 과거 청산, 경제·외교 환경 변화가 겹쳐 만들어낸 결과다. 이 배경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한국이 왜 더 이상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 없는지, 왜 민간과 정부가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은 겉으로는 평화헌법과 비군사화를 내세우며 ‘전후 민주주의 국가’로 재출발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군국주의·제국주의 체제를 이끌었던 세력들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채, 이름만 바꾼 채 정치·관료·재계 중심부로 복귀했다. 전범 피의자였던 인물들이 시간이 지나 총리로 복귀하고, 전쟁을 미화하거나 책임을 희석하는 담론이 정치권·관료조직·우익단체 속에 뿌리내렸다. 대표적 인물이 아베 신조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다. 그는 A급 전범으로 분류됐지만 처벌은커녕 전후 곧바로 석방돼 정치에 복귀했다. 전범의 정치복귀로 아베 신조라는 새로운 극우 정치인이 배출됐다. 일본은 제도적으로는 평화국가지만, 정신적으로는 전범국가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내지 못한 ‘반쪽짜리 청산’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여기에 장기 집권한 자민당 체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55년 이후 일본 정치는 자민당 일당 지배 구조로 굳어졌고, 그 내부에는 온건 보수부터 노골적 극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공존했다. 이 중 우익·극우 계열은 방위정책, 역사교육, 외교·안보 분야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신들의 세계관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 정권 교체가 드물고 정당 경쟁이 약한 정치 구조는 소수 강경파가 파벌·관료·언론·경제계 네트워크를 통해 목소리를 부풀리기 좋은 환경이었다.

경제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는 일본 사회에 깊은 불안과 좌절감을 남겼다. 임금 정체, 청년 취업난, 비정규직 확대, 지방 소멸 위기 등 구조적 문제가 누적되면서 일부 정치세력은 그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전략을 택했다. “일본이 약해진 건 전후 평화주의 때문”, “한국과 중국에 지나치게 사과하고 양보해 왔다”는 극우적 프레임은 상실감이 큰 계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얻었다. 경제적 박탈감이 민족주의·역사 수정주의로 전환된 것이다.

외교·안보 환경 역시 극우 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중국의 급부상,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동북아의 영토·역사 갈등은 일본 내부에서 “이제 군사력도 정상국가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강화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아베 신조로 대표되는 극우 정치인들은 전후 미국 등 연합국의 점령 정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국가체제를 탈피하고 자학사관 극복을 외치며 전쟁·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을 축소하고, 군사력 확대와 평화헌법 무력화를 추진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넷 우익’(인터넷 우익)이 혐한 정서를 조직적으로 확산시키며 극우 담론의 대중적 기반을 넓혀왔다.

이러한 구조적 배경 속에서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독도 망언은 결코 개인의 단발성 발언이 아니다. 이는 ‘전쟁·식민지 지배 책임을 축소하고 침략의 역사를 희석하려는 흐름’의 일부이며, 국내 정치용 민족주의 동원 전략의 핵심 도구다. 그렇다면 이런 반복된 독도 영유권 주장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과연 “무시하면 된다”는 무대응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가.

한국 내부에서는 그동안 “독도 문제를 자꾸 거론하면 오히려 분쟁지역처럼 보일 수 있다”, “일본의 전략에 말려들 수 있다”는 이유로 소극적 대응을 주장하는 견해가 있었다. 독도가 국제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 우리가 실효 지배 중이라는 점이 그 논리의 기반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가장 심각한 변화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미래세대 교육 과정에 체계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정부와 극우 세력은 교과서·학습지도요령·교육자료 등을 통해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로 명시하고, 한국의 정당한 영유를 ‘불법 점거’라고 왜곡해 가르치고 있다. 이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10년, 20년 뒤 일본의 유권자·관료·정치인·언론인이 된다. 즉, 독도 망언은 더 이상 일부 정치인의 구호가 아니라 일본 사회의 ‘상식’으로 굳어지려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불완전한 과거 청산 위에서 극우가 성장한 일본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하면, 이 문제를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며 방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착각이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적으로 정치적 무기로 부활해 왔다. 독도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 내부에서 독도가 ‘당연히 일본 땅’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세대 전반에 걸쳐 고착되면, 향후 외교·안보 갈등에서 일본 정부는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할 명분과 지지를 확보하게 된다.

게다가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일본에 밀릴 약소국이 아니다. 한국은 1인당 GDP, 기술력, 문화 영향력 등에서 일본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앞서가는 분야가 많다. 반도체·배터리·IT 플랫폼·K콘텐츠는 이미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도 문제를 꺼내면 일본이 화낼까 봐”, “괜히 분쟁만 키울까 걱정된다”는 과거식 자기검열을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역사 왜곡과 영토 도발에 분명하고 일관된 대응을 하는 것이 선진국다운 책임 있는 자세이며, 국제사회에서도 설득력을 가진다.

그렇다면 어떤 대응이 필요한가.

우선 정부 차원의 외교·법적 대응을 더 전략적이고 일관되게 강화해야 한다. 일본 정부의 망언과 왜곡된 교과서 채택에 대해 형식적 항의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다국어 공식 자료·연구보고서 등을 통해 독도의 역사·법적 근거를 국제사회에 꾸준히 알리고, 일본의 역사왜곡과 교과서 문제를 국제 학계·교육단체·시민사회와 공유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유네스코, 인권기구, 학술 단체와의 연계를 통해 ‘왜곡된 역사교육’을 국제 의제로 끌어올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민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일본 내부에는 극우에 반대하며 식민지 지배·전쟁 책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양심적 지식인과 시민단체도 적지 않다. 이들과의 연대·교류를 확대하고, 독도·위안부·강제동원 문제를 다루는 공동 심포지엄,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 온라인 콘텐츠 제작 등을 통해 일본 사회 내부의 변화를 도울 수 있다. 독도는 단순한 ‘우리 땅’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민주주의·역사 정의를 논의하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전략도 필수적이다. 일본 청소년이 접하는 유튜브·SNS·검색엔진에는 극우 시각에서 제작된 콘텐츠가 넘쳐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한국어·일본어·영어 등 다국어 기반의 논리적·자료 기반 콘텐츠를 꾸준히 생산해야 한다. 감정적 비난이 아니라 근거와 설명을 갖춘 ‘설득 가능한 콘텐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식이다. 독도 문제를 단순한 감정적 반일의 소재로 소비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일본 극우의 체계적 역사 왜곡 전략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차세대에게 독도 문제의 역사적 맥락과 국제정치적 현실을 제대로 교육하고, 동시에 일본 사회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와 연대 가능성도 알려야 한다. 일본 전체를 적으로 규정하는 단순 혐오는 극우의 거울상일 뿐이며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복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망언은 결국 일본이 전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과거가 현재형으로 되살아난 한 단면이다. “무시하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역사적 경험을 통해 허구임이 드러났다. 이제는 민간과 정부가 함께,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그리고 장기 전략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독도 문제는 단지 영토 문제가 아니라, 전쟁·식민지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청산할 것인지, 그리고 동아시아의 미래를 어떤 가치 위에 세울 것인지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북가주 한인들은 이미 민간차원에 이룩한 성공 사례를 경험한 바 있다. 바로 ‘위안부 기림비’ 건립이다. 일본 극우정치인들이 역사적 사실과 피해자들의 증언이 명확함에도 ‘위안부’를 부정하고 과거를 덮으려 한 움직임에 맞서, 한국·중국·필리핀·네덜란드 등 북가주 13개 커뮤니티가 힘을 모아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 위안부 기림비를 세운 것이다. 이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을 넘어,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천한 매우 성공적인 민간 연대의 사례다.

물론 독도는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간의 영토분쟁으로 비춰질 수 있어 폭넓은 민간 연대를 이끌어 내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적극 나서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한국의 고유한 영토라는 점을 적극 설명하고 나아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2차대전 군국주의 망령’임을 적극 알린다면 충분히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인 커뮤니티는 ‘위안부 기림비’ 건립 과정을 통해 다져왔던 타 커뮤니티와의 연대도 아직 공고하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부터 ‘독도는 한국 땅’임을 적극적으로 알려 나갈 필요가 있다. ‘위안부’가 역사적 사실이듯 ‘독도’ 또한 분명한 대한민국의 영토기 때문이다.

최정현 베이뉴스랩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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