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진 칼럼] 묻지 말아야 할 3가지

강현진 전 새크라멘토 한국학교 이사장.
미국에서 오래 살아보면, 미국인들이 처음 만난 사람들과 나누는 인사말이나 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된다. 미국인들은 공석이든 사석이든 대화의 주제가 대체로 단순하다. 날씨 이야기, 상대방의 옷차림에 대한 칭찬, 혹은 스포츠에 관한 이야기 정도가 대부분이며, 서로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통례다. 이 과정에서 묻는 사람이나 대답하는 사람 모두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태도로 대화를 이어가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의 경우는 다르다. 공석이든 사석이든 만나면 제일 먼저 묻는 말은 “고향이 어디냐”이고, 대화가 조금 더 진행되면 “학교는 어디를 나왔느냐”를 묻는다. 대화가 깊어지면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특히 해외에 살고 있는 한인들, 그중에서도 노년층은 만남의 첫머리에 반드시 고향, 학벌, 직업을 묻고 난 후에야 본격적인 대화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때 고향이나 학벌, 직업이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상대를 높여 받드는 시늉을 하고, 반대로 자신보다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은연중에 얕잡아 보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우리 한인 사회에서 흔히 경험하는 대인관계의 모습이다.

물론 상대방의 고향이나 학벌, 직업은 대화를 이어가는 데 참고가 될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기준 삼아 상대방을 특별히 우대하거나 아부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 반대로 상대의 학벌이나 직업이 변변치 못하거나 생활이 어렵다고 해서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 또한 삼가야 한다.

한국 사회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역주의, 학벌주의, 직업의 귀천 같은 잘못된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면서 수많은 갈등을 겪어 왔다. 심지어 이민 사회에서도 고향 선후배, 학교 동문, 또는 좋은 직업에서 은퇴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단체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가능하다면 상대방의 고향이나 학벌, 직업을 묻지 말고, 그 사람의 됨됨이와 인품을 보고 인간관계를 맺으며 좋은 벗으로 지내야 한다.

우리가 범하기 쉬운 가장 큰 결례는 바로 ‘선입견’이다. 사람의 인격이나 지식, 경험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잘못된 선입견으로 인해 좋은 사람을 나쁘게 보거나, 나쁜 사람을 좋게 보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예단보다는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와 대화하며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 보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길이며, 또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다.

상대가 아무리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고 학벌과 직업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남을 도울 줄 모르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하한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높은 지위와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존경받을 수 없다. 반대로 학벌이 낮고 기술이 변변치 못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됨됨이가 바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를 존중하고 존경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지 고향이나 학력, 과거 경력 같은 것을 묻기보다는, 이민 생활 속에서 얻은 경험과 세월 속에서 길러낸 지혜와 교훈을 듣고 서로의 삶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앞으로는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미국인들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대화법을 써 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 노년층에게 진정한 좋은 친구는 학벌이 높은 사람도, 재산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오직 평범하지만 올곧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현진 전 새크라멘토 한국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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