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열차사고에 분노한 민심 거세져…”총리 물러나라” 반정부 시위 들불로

수도 아테네서 4만명 이상 항의 시위
대국민 사과에도 들끓는 비판여론

8일(현지시간)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한 시위 참가자가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의 얼굴에 붉은 X자가 그려진 표지판을 들고 있다.
그리스 역사상 최악의 열차 사고 후폭풍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주무 부서 장관이 사임하고, 총리가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분노한 민심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AP, AFP,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그리스 전역에서 수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부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만 학생, 교사 등 최소 3만명 이상이 도심을 행진하며 “사고가 아니라 범죄다. 우리 중 누구라도 그 열차에 타고 있을 수 있었다”고 외쳤다. 한 플래카드에는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살아갈 것이다”, 다른 플래카드에는 “살인자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하며 해산을 시도했다. 54세의 토목 기술자인 니키 시우타는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동시에 분노와 좌절감을 표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는 아테네뿐만 아니라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 서부 항구 도시 파트라스 등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그리스 경찰은 이날 전국에서 약 5만3천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자정 직전 350명을 싣고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로 가던 여객열차가 테살로니키에서 라리사로 가던 화물열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사고로 최소 5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고 있다. 희생자 대다수가 황금연휴를 즐기고 귀향하던 20대 대학생으로 확인되면서 공분을 키웠다.

그리스 사법 당국은 여객열차를 잘못된 선로로 보낸 라리사역의 역장을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라리사 역장은 경찰 조사에서 잘못을 시인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인간의 실수에 따른 비극적인 사고”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와 철도회사가 노후한 철도 시스템을 방치해 초래된 참사라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사고가 발생한 철도회사 ‘헬레닉 트레인’의 전 노조위원장 파나요티스 파라스케보풀로스는 해당 노선의 신호 시스템이 6년 전 고장 난 뒤로 한 번도 수리된 적이 없다고 폭로했다.

정부에 더 큰 잘못이 있음에도 라리사 역장이라는 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정부의 태도는 국민들의 분노에 더 큰 불을 질렀다. 사고 발생 이후 그리스 전역에서 시위가 쉽사리 진정되지 않자 미초타키스 총리는 대국민 사과를 하고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미초타키스 총리는 그리스 철도 안전 시스템을 조속히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유럽연합(EU)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교통부 장관이 사고 직후 사임했다. 그러나 그리스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을 조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분노한 여론은 정권 퇴진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총리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했다.

시위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공무원 노조가 24시간 파업을 벌였고, 의사, 교사, 버스 운전자, 여객선 승무원도 파업에 돌입했다. 철도노조가 사고 발생 다음 날인 지난 1일부터 파업에 들어가면서 그리스 철도망은 마비 상태가 됐다.

언론도 현 정부에 등을 돌렸다. 현지 일간지 카티메리니는 미초타키스 총리의 대국민 사과를 “뒤늦은 사과”라며 평가절하한 뒤 사과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정부 규탄 시위가 폭력적인 양상으로 번지면서 지금까지 14명이 구금됐다.

그리스 집권 신민주당은 애초 4월 초 총선을 치를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번 사고로 5월까지 총선이 연기될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Bay News Lab / 저작권자 (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 Posts

의견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