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우려 속에 막을 올리는 2020 도쿄올림픽은 개회식장 안에서만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첫 올림픽‘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23일(현지시간) 개막식이 열리는 일본 도쿄의 올림픽 스타디움(신국립경기장) 내부는 시작 1시간 전인 오후 7시가 지나도록 4년, 아니 5년을 기다린 하계 올림픽이 열린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여느 대회였다면 6만8천석 규모의 스타디움이 ‘예매 전쟁‘에서 승리한 관중으로 가득 들어차고 개막을 기다리는 들뜬 분위기가 가득했을 테지만, 눈 앞에 펼쳐진 건 빈 좌석이었다.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색상으로 배치된 좌석은 사람이 앉아있는 것 같은 착시를 자아냈으나 침묵이 깔렸다.
스타디움 밖에선 근처에서나마 올림픽 개막의 기분을 느끼고 싶은 시민들이 낮부터 몰려들고,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시위대도 등장해 무관중 방침이 무색해지는 장면도 연출됐다. 그러나 어둠이 서서히 드리우는 개막식장 내부는 ‘비공개 리허설‘이 열리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이날 개회식엔 내외빈 1천명 미만만 초청됐고, 각국 선수단도 일부만 참가했다. 개막이 다가와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줄어들지 않자 12일부터 도쿄도에 긴급 사태가 선포돼 올림픽 기간에 이어져 도쿄 밖에서 열리는 일부 경기를 제외하면 일정 대부분이 무관중으로 진행된다.
개회식장 전광판엔 ‘환영‘을 뜻하는 프랑스어(Bienvenue), 영어(Welcome), 일본어(ようこそ)가 흘렀지만, 그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관중이 없으니 시작 전 분위기를 띄우는 행사도 열리지 않았고, 안내 방송도 없었다. 음악만이 흘러나왔다. 빠르거나 요란하지 않은, 재즈나 미디엄 템포의 곡이 주를 이뤘다.
개막식 무대가 될 그라운드엔 국기 게양대와 후지산을 형상화한 성화대가 한쪽에 세워져 있을 뿐 텅 비었다. 딱히 무엇인가 준비를 하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개막식‘을 기사나 영상으로 전하려는 각국 취재진이 자리 잡은 취재석만 분주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전광판에는 마스크를 끼고, 손 소독을 수시로 하고,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고, 기침할 때는 팔로 가리라는 등 방역 수칙 안내 영상이 주기적으로 등장했다. 시작 50여 분을 남기고는 조명도 대부분 꺼진 가운데 타원형의 격자무늬가 바닥에 선명히 드러나 무대가 곧 시작할 것임을 알렸지만, 여전히 음악 소리만 스타디움의 공기를 채울 뿐이었다. 시작 30여 분을 남기고 격자를 대신한 올림픽 로고가 개막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시작 2분 전부터 돌입한 카운트다운은 전광판으로 숫자만 줄어들었다. 8시 정각이 돼 시작을 알리는 화면이 뜨는데도 장내엔 한쪽에서 조그만 박수가 나왔을 뿐 적막이 흘렀다. 개막식을 꾸미는 공연은 화려함은 배제된 채 대체로 차분하고 진지했다. 많은 인원이 동원되지 않다 보니 아무리 군무가 펼쳐지고 도형과 색상이 그래픽으로 깔려도 무대는 채워지지 않았다. 국기 입장 등 순서 곳곳을 채운 음악도 느리고 무거울 때가 잦았다.
내외빈들은 올림픽의 안전한 개최를 기원하며 박수는 보냈으나 축제의 막을 올리는 설렘이나 기쁨은 마스크에 가려서인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거나 공연을 마치고서 이따금 스타디움 지붕 위로 불꽃이 터졌지만, 환호성 없이 공허하게 떠오른 ‘축포‘는 쓸쓸했다.
각국 선수단이 입장할 땐 마침내 그라운드가 채워지고 선수들의 움직임으로 생동감은 조금 붙었으나 입장하는 선수 수가 크게 줄다 보니 예전 대회만큼의 흥겨움은 보이지 않았다. 입장을 마친 선수들이 한데 모여있거나 마스크를 끼지 않은 채 사진을 찍는 모습은 흐뭇함보다는 우려를 자아냈다. 대형 이벤트에 빠지지 않던 세계적인 스타들의 공연도 영상을 통해 펼쳐져 감동을 주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식장에 활력을 불어넣던 선수들도 시작 3시간여가 흐르고 하시모토 세이코 조직위원장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긴 환영사가 이어지자 대부분 바닥에 주저앉고 심지어 드러눕기도 해 부쩍 맥이 빠졌다.
모두가 지친 가운데 이어진 나루히토 일왕의 개회 선언은 인류의 스포츠 축제가 아닌 코로나 시대 새로운 일상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