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방문 목전서 가자병원 폭발로 민간인 500명 희생 ‘대참사’…이·팔 전쟁 시계제로

민간인 희생에 국제사회 경악…진상규명 결과 여론 향배 가를듯
소행 주체 놓고 진실공방…이슬람권 분노·시위 확산

병원 앞에서 분노 표시하는 팔레스타인인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간 전쟁 중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중심부의 한 병원에서 17일(현지시간) 대규모 폭발로 민간인 수백명이 숨졌다. 누구의 소행이냐를 놓고 하마스와 이스라엘간에 책임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진상 규명 결과에 따라 전쟁의 향방과 정세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민간인 수백 명이 숨진 상황에 국제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중동·이슬람권은 분노를 표출하며 이스라엘과 서방을 규탄하고 나섰으며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외교 해법 모색을 위해 예정됐던 요르단에서의 4자 회담이 취소된 가운데 이스라엘 방문길에 올랐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확전 위기를 맞은 이번 전쟁의 중대 분수령으로 꼽혔으나, 이번 폭발 대참사로 인해 출발부터 악재를 만나 ‘반쪽짜리’가 되면서 그 의미와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 가자지구 보건당국 “최소 500명”…”부상자·피란민 몰려 있었다”

AP, AFP,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가자시티의 알아흘리 아랍병원이 폭격을 받아 수백명이 숨졌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오후 수백명이 다치고 수백명의 희생자가 아직 건물 잔해 밑에 있다고 밝혔다. 폭발 이후 보건 당국자들은 사망자 수가 500명이라고 밝혔다. 희생자 대다수는 여성과 어린이, 피란민으로 알려졌다.

이 병원은 앞선 열흘간의 이스라엘 공습에 따른 부상자들과 가족들, 병원 마당으로 피란한 사람들로 붐비는 상황이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외신을 통해 전해진 영상과 사진에는 불이 건물을 휩싸고 건물 밭 잔디밭에는 훼손된 시신이 다수 보인다. 그중 다수가 어린이들이었다. 또한 바닥에는 담요, 학교 배낭 등의 소지품이 늘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번 폭발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맞는다면 2008년 이후 가장 피해가 큰 이스라엘군의 공습이라고 이스라엘 현지 일간지 하레츠는 전했다.

◇ 하마스 “이스라엘군 공습” vs 이스라엘 “이슬라믹 지하드 오발”

폭발 사실을 발표한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 공습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가자지구 통치권을 잃은 뒤 세력이 요르단강 서안에 그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은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병원 대학살이 일어났다며 “이스라엘이 모든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책임을 부인하며 팔레스타인의 또 다른 무장정파 이슬라믹 지하드의 로켓 실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 수석 대변인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은 성명을 통해 “분석 결과 가자지구 내 테러리스트들이 일제 사격한 로켓들이 알아흘리 아랍 병원이 폭발했을 때 병원 아주 가까운 곳을 지나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여러 곳에서 나온 정보에 따르면 이슬라믹 지하드가 병원 인근에서 로켓을 일제 사격한 것으로 확인돼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전 세계는 알아야 한다. 가자지구 병원을 공격한 것은 이스라엘군이 아니라 야만적인 테러리스트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슬람 지하드 측은 로이터통신에 “거짓말이자 날조이며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며 “점령군(이스라엘군)은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끔찍한 범죄와 학살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미국 정보 당국은 이스라엘이 제공한 정보를 포함해 이번 폭발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파악하기 위한 정보를 분석 중이라고 CNN 방송이 전했다.

◇ 국제사회 “경악”…이슬람권 분노 표출, 곳곳서 시위 확산

책임 소재와 관계없이 민간인 수백 명이 폭격 속에 숨진 전쟁범죄 정황에 국제사회가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팔레스타인 민간인 수백명의 죽음이 경악스럽다.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병원과 의료진은 국제 인도주의법에 따라 보호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아랍에미리트(UAE)와 러시아의 요구로 18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가자지구 병원 참사를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가자지구 알아흘리 병원 폭발과 그것이 초래한 최악의 인명 피해에 분노하고,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가자지구의 민간인 시설을 공격 표적으로 삼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하마스를 직접 지지하지 않고 일정 거리를 둬온 중동 이웃국들을 포함한 이슬람권은 폭격에 대한 가자지구 당국의 발표가 보도된 직후부터 분노를 표출하고 나섰다. 요르단 외무부는 병원 공습에 대해 “이스라엘이 이 심각한 사건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고, 카타르 외무부는 이번 공격을 “잔인한 학살이자 무방비 상태 민간인에 대한 극악무도한 범죄”라고 비판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가자지구의 병원에서 팔레스타인 부상자들 위로 떨어진 미국·이스라엘 폭탄의 화염이 곧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들을 집어삼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이란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무슬림과 아랍인들에게 “강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 즉시 거리와 광장으로 나가라고 촉구했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요르단강 서안의 곳곳에서는 시위대와 팔레스타인 보안군 간의 충돌이 빚어졌다. 요르단 암만에서 분노한 시위대가 이스라엘 대사관 급습을 시도했고, 튀르키예와 튀니지 주재 서방 국가 대사관이나 이라크, 리비아 도심과 광장 등지에도 시위대가 몰려들고 있다.

◇ 이·팔 전쟁 해법 어디로…악재 만난 바이든, 일단 이스라엘만 ‘반쪽방문’

책임이 어느 쪽에 있든 간에 전쟁에 가장 취약한 민간인·환자들이 보호받던 의료시설에서 수백명이 사망한 참사로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은 중대 기로에 놓이게 됐다. 아랍·이슬람권이 격앙된 만큼 확전 위기가 고조될 전망이다. 당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요르단 방문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 이집트 대통령을 포함한 4자 정상회담 계획이 이례적으로 목전에서 취소됐다.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이 먼저 공습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회동을 취소한다고 밝혔고 요르단도 “지금은 전쟁을 멈추는 것 외에는 어떤 말도 소용없다”며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다.

이스라엘의 공격 직후 아랍 국가들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하는 현 상황이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하면서도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진단도 나왔다.

영국 BBC 방송은 “아랍 국가들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을 취소하는 것을 손쉽게 생각하고 있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아랍국가들이 미국 대통령에게 이렇게 큰 거부를 할 용기가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만 방문한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가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바이든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어려운 질문들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확전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해 중동 이웃국들에 하마스 제거 당위성을 설득하는 데 공들여왔는데 이번 참사가 악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곧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할 것이라는 관측과 관련해서는 이번 참사로 이스라엘이 더 강하게 견제받을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만나 이스라엘에 연대를 표시하는 동시에 가자지구내 인도주의 위기 최소화를 위한 합의 도출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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