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다음 팬데믹 막으려면 세계적 의료조직 만들어야”

'빌 게이츠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법' 10일 출간

빌 게이츠. 자료사진.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것은 똑똑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전 세계가 미리 준비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예방하는 일을 하는 조직을 마련하는 게 전 세계가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이자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 이사장 빌 게이츠(67)는 10일(한국시간) 번역 출간되는 ‘빌 게이츠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법'(비즈니스북스)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지난달 초 영미권에서 먼저 출간된 책에서 빌 게이츠는 인류가 새로운 팬데믹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는 2015년 테드(TED) 강연에서 “몇십 년 내 1천만 명 이상을 사망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전쟁보다는 전염성이 높은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코로나19를 예견하고 경고한 선각자로 주목받았다.

◇ “글로벌 전염병 대응·동원팀 필요…강력한 긴급상황실 돼야”

빌 게이츠는 향후 발생 가능성이 있는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전 세계적인 조직 ‘글로벌 전염병 대응·동원팀'(GERM) 결성을 꼽는다. 2014년 서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에볼라바이러스가 유행한 때를 떠올리며 “문제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아웃브레이크(특정 지역에서 작은 규모로 질병이 급증하는 것)를 감지하고 대응해 팬데믹 발생을 막을 만한 규모와 활동 범위, 자원과 권한을 지닌 조직이 없다며 세계보건기구(WHO)의 관리를 받는 GERM이 대안이 될 거라고 예상한다.

빌 게이츠는 “GERM이 팬데믹을 선언할 권한이 있어야 하며 국가 정부 및 세계은행과의 협력으로 대응 자금을 빠르게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약물과 백신 개발, 데이터 시스템, 외교, 컴퓨터 모델링, 커뮤니케이션 등 전 분야를 총망라하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는 GERM을 운영하려면 인력 3천여 명에게 줄 급여와 장비 등 연간 10억 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한다. 코로나19처럼 수조 달러의 비용이 드는 비극을 예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엄청나게 싼 가격”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GERM은 세계를 아우르는 강력한 긴급상황실이 돼야 한다”며 “새로운 질병의 확산 저지가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하지만 팬데믹의 위협이 없을 때라면 소아마비, 말라리아, 기타 전염성 질병의 퇴치를 도우면서 역량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 6개월 내 백신 사용·배분 강조…’현장 종합 훈련’도 제안

책은 과학자들이 코로나19 발생 이후 1년 만에 여러 백신을 만들어낸 것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백신 후보의 성공 확률은 6%”라며 “질병의 역사에서 이례적인 일이고 기적”이라고 평가한다. 또 “그 어떤 백신보다 빠르게 만들어지고 승인을 받았다는 게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덧붙인다.

빌 게이츠는 “(전염병 발생 시) 새 백신은 코로나19 백신보다도 빨리 개발돼야 한다. 빠르게 대량 생산을 해서 병원체가 확인된 후 6개월 안에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현재 가장 유망한 기술로는 화이자·모더나 등이 개발한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을 꼽았다. 그는 “미래의 아웃브레이크에서는 최초 확진 이후 최초 백신 후보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몇 주 혹은 며칠 단위로 측정하게 될 것이다. mRNA가 이를 가능케 할 기술로 자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전 세계의 백신은 배분 방법을 정해 가장 비싼 값을 부르는 사람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상황이 빚어지지 않고, 공중보건 쪽이 가장 큰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 부유한 나라 국민보다 치료받을 가능성이 낮은 ‘보건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조기에 병원체를 차단하고 시스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파악하는 ‘현장 종합 훈련’도 제안한다. GERM이 아웃브레이크를 경험하는 도시를 지정한 뒤 진단 검사 개발, 격리 문제 처리 등을 확인해 의미 있는 내용을 추리고,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권고 사항을 행동에 옮기도록 요청하자는 것이다.

◇ ‘바이러스 대유행’ 음모론 일축…”위험 진화 대비 노력하자”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자신에게 제기된 ‘바이러스 대유행을 만들어냈다’, ‘백신을 이용해 국민에게 추적 장치를 심으려 한다’ 같은 음모론을 일축했다. 빌 게이츠는 “(MS 시절보다) 공격이 집요해졌다. 진실이 거짓보다 오래간다는 점을 믿고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국이 마스크 쓰기와 거리두기 등 비약학적 개입을 한 것에 대해서는 “아웃브레이크 초기에 가장 중요한 도구”라며 과잉 대응처럼 보인 부분이 있더라도 필요한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마스크에 대해서는 “호흡기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데 효과적이고 저렴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빌 게이츠는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한 변종이 출현할 수도 있다며 “위험한 바이러스가 진화할 때를 대비해 우리를 보호해줄 새롭고 개선된 도구를 만드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코로나19 사태와 관계없이 별도의 장기적 목표, 즉 코로나19 이후의 팬데믹 예방 사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실수에서 배움을 얻고 이런 재난을 다시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을 시작할 기회가 됐다. 우리가 모두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누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더 큰 꿈을 꿀 수도 있다. 안주의 반대는 두려움이 아니라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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