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2년여 만에 일본서 다시 전시…우익단체 “폐하 모욕”

2019년 전시중단 사태 겪기도…우익 반발에 전시장 확보 난항

안세홍 위안부 사진·'불타는 히로히토' 영상물도 선보여

우익단체 전시장 앞에서 확성기 시위하자 관람 시민이 항의

일본 '시민 갤러리 사카에'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역사 왜곡이 이어지는 가운데 ‘평화의 소녀상’이 거의 2년 만에 일본에 다시 전시됐다. 6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시민 갤러리 사카에’에서 개막한 ‘우리들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에 김서경·김운성 부부 작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모티브로 제작한 조각물 평화의 소녀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에 김 작가 부부의 소녀상이 전시된 것은 2019년 8〜10월 열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不自由展)·그 후’ 이후 1년 8개월여만이다. 소녀상은 옅은 베이지색 저고리에 검정 치마 차림으로 맨발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일본 시민과 소녀상.
소녀의 오른쪽에 빈 의자가 하나 놓여 있고 왼쪽 어깨에 새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색깔의 차이를 제외하면 옛 한국 주재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것과 전체적으로 비슷한 모양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선 관람객들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소녀상을 관람했다. 소녀상 옆의 빈자리에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진 보는 관람객.
연작물 ‘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을 비롯해 안세홍 작가가 아시아 각지에서 촬영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사진도 전시됐다. 안 작가는 중국으로 동원됐다가 전쟁이 끝난 후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 피해자와 동티모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제국주의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과 일왕을 모티브로 삼았다가 우익 세력의 거센 반발을 산 오우라 노부유키 감독의 영상물 ‘원근을 껴안고 파트(part) 2’도 전시장에서 관람객과 만났다.
위안부 피해자와 '불타는 히로히토'
이 작품은 히로히토(1901〜1989)의 모습이 담긴 콜라주 작품을 불태우는 장면을 촬영해 아리랑을 배경음으로 보여준다. 히로히토는 1926〜1989년 일왕으로 재위한 인물이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현지 시민단체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를 잇는 아이치 모임'(이하 모임)은 선입견을 버리고 작품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임은 2019년 여름 전시회 중단으로 표현의 자유, 볼 권리, 역사를 빼앗길 뻔했고 그런 상황이 현재도 여기저기서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에 다시 전시된 소녀상. 몰려든 취재진.
이 단체는 “우리는 작품 그 자체를 가까이서 접하고 무엇인가를 느낀다. 그것을 소중히 하고 싶다. 묻는 것보다 느끼는 것을 우선 회복하고 싶다”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우익이 반발했으나 전시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우익단체 소속 10여 명이 전시장 건물 앞 인도에서 ‘폐하(히로히토를 의미함)에 대한 모욕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국(일본)을 깎아내려 무엇이 즐거운 것이냐’ 등의 글이 적힌 피켓을 등을 들고 확성기로 소음을 일으키며 시위를 했다.
소녀상 전시에 반대 시위하는 일본 우익단체.
이런 가운데 일본 시민이 ‘2016년에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표현)나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됐다’며 ‘민폐를 끼치지 말고 돌아가라’고 우익 단체에 항의해 눈길을 끌었다.



평소 우익 단체의 주장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 관람객으로 전시장을 찾아와 큰소리를 내며 다른 관람객을 불편하게 하는 등의 소란이 잠시 벌어지기도 했다. 이른바 ‘안전상의 우려’를 일으켜 전시회를 중단시키려는 시도로 의심되는 행동이다. 주최 측은 변호사와 경비 인력 등을 배치해 도발을 차단하며 전시회를 진행했다.

소녀상 옆에서…역사를 기록하는 사진.
일본인이 불편해하는 역사를 직시하도록 촉구하는 소녀상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은 전시 때마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2019년 8〜10월 열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不自由展)·그 후’에 선보였을 때는 우익 세력이 전시에 반발하는 가운데 협박과 항의가 이어졌다.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는 시작한 지 사흘 만에 중단됐다. 시민단체와 예술가 등이 전시 중단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법적 대응에 나선 후 2개월여 만에 재개됐다. 2019년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약 2개월 반 동안 이어졌으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가 열린 것은 전시 중단 전후를 통산해 열흘에 불과했다.



이번 전시회 준비도 쉽지 않았다. 시민갤러리 사카에의 관리자인 나고야시 문화진흥사업단은 많은 관람객이 몰려 경비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여러 조건을 내걸었고 모임이 시설 사용을 허가받는 데는 3개월이 넘게 걸렸다.



소녀상 등을 선보이는 비슷한 행사는 도쿄와 오사카에서도 추진됐으나 우익 세력의 방해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시장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쿄의 경우 전시장 사용이 취소되면서 결국 행사가 연기됐다. 오사카 전시회를 준비한 시민단체는 전시장 사용 승인 취소에 맞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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