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범죄자’ 통념 깬 연구…UC어바인 쿠브린 교수 “이민 증가 지역 오히려 범죄 감소”

20년 장기 데이터 분석 통해 상관성 검증
대중들 인식과 연구 결과 간 괴리 지적
범죄학 노벨상 ‘스톡홀롬 범죄학상’ 수상

UC어바인 샤리스 E. 쿠브린 교수. 사진 = UC Irvine School of Social Ecology.
이민이 늘어나면 범죄가 증가한다. 미국 사회에서는 이런 통념이 일반화 돼 있다. 사실일까. 샌프란시스코 대표 언론인 크로니클은 17일 캘리포니아대학교(UC) 어바인의 범죄학자 샤리스 E. 쿠브린 교수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 같은 통념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쿠브린 교수가 20여 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이민이 범죄 증가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밝혀왔으며, 일부 경우에는 오히려 범죄 감소와 연결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것이다. 이 연구로 쿠브린 교수는 지난해 ‘범죄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스톡홀롬 범죄학상을 수상했다.

크로니클은 쿠브린 교수의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특정 사례나 단기간 분석이 아니라,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데이터 분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도시 단위뿐 아니라 지역, 인구 집단, 세대별 변화까지 폭넓게 추적하며 이민과 범죄의 관계를 다각도로 검토했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닌 구조적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연구 중 하나는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 주요 도시들의 변화를 분석한 것이다. 이 연구에서 쿠브린 교수와 공동 연구자는 이민 인구가 증가한 도시들에서 폭력 범죄가 오히려 감소했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특히 이 분석은 경제 수준, 인구 변화, 지역 특성 등 다양한 변수들을 통제한 이후에도 동일한 경향이 유지됐다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즉, 단순히 외부 요인에 의해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 이민 증가 자체와 범죄 감소 사이에 일정한 연관성이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후 이어진 연구들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청소년 범죄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이민자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청소년 폭력 행위가 감소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이는 이민자 가정이 상대적으로 가족 중심적이고 공동체 결속력이 강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이민자 밀집 지역이 사회적 통제력이 더 강하게 작동하며, 이로 인해 범죄 예방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도시별로 이민 증가와 범죄 유형 간의 관계를 세분화해 분석했다. 그 결과, 약물과 관련된 살인 사건 등 특정 범죄에서는 이민 증가가 오히려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다른 유형의 범죄에서도 유의미한 증가 효과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이민이 범죄를 유발한다는 기존 인식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특히 쿠브린 교수는 이민과 범죄의 관계를 설명할 때 단순한 통계 결과를 넘어 그 배경까지 함께 분석해왔다. 많은 이민자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에 정착하며, 안정적인 경제 활동과 교육 기회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범죄와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법적 지위나 사회적 낙인에 대한 우려로 인해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민자 공동체의 특성 역시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가족 중심의 생활 방식, 지역 내 상호 지원 네트워크, 종교 및 문화적 결속 등이 범죄 억제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지역 사회 내에서 비공식적인 사회 통제 기능을 강화하며, 결과적으로 범죄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의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크로니클은 지적한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이민이 범죄를 증가시킨다고 믿고 있으며, 특히 보수 성향에서는 그 비율이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 이는 수십 년간의 조사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은 흐름이다.

이 같은 괴리는 정치적 환경과도 깊이 맞물려 있다.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는 이민자를 범죄와 연결짓는 정치적 메시지가 강화되면서 대규모 단속과 추방 정책이 추진됐고, 이 과정에서 인권 침해 논란과 사회적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특정 사례를 확대 해석해 전체 이민자 집단을 문제시하는 방식의 담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을 비롯한 여러 서구 국가에서도 극우 포퓰리즘과 반이민 정서가 확산되며 과학적 연구 결과와 대중 인식 간의 간극이 더욱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포와 편견이 결합된 정치적 메시지가 사실보다 빠르게 확산되는 구조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지식과 믿음의 단절’로 보고 있다. 연구는 오랜 시간과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는 반면, 왜곡된 정보는 빠르고 강하게 퍼지기 때문이다. 쿠브린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학문은 너무 느리고, 정책과 여론은 너무 빠르게 움직인다”고 지적하며 연구 결과가 현실에 반영되기까지의 한계를 토로했다.

쿠브린 교수는 연구 결과가 학술지에 머무르는 데 그치지 않고 정책과 사회적 논의로 확장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연구 내용을 정책 입안자들에게 직접 전달하고,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대중과 공유하는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는 과학적 사실과 사회적 인식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시도다.

쿠브린 교수의 연구는 단순히 이민과 범죄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가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특정 집단을 바라보고 판단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반복적으로 축적된 데이터가 보여주는 방향과 대중의 믿음이 엇갈리는 현실 속에서, 그의 연구는 사실에 기반한 논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 있다.


최정현 기자 / choi@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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