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폭락 사태 핵심 인물 권도형, 몬테네그로서 체포…’400억 달러 증발’ 진상 밝혀질까

미국 검찰 사기 혐의 기소…한국에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수사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이사. 자료사진.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가 유럽 발칸반도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되면서 이 코인 붕괴를 둘러싼 진상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몬테네그로 정부는 23일(현지시간) 권 대표로 의심되는 인물이 자국의 수도 포드고리차에서 검거돼 신원 확인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으며, 한국 경찰은 몬테네그로 당국에 권씨의 지문 자료를 보내 그가 맞다는 사실을 24일 최종 확인받았다.

권씨의 신병이 확보된 것은 한국 검찰이 지난해 9월 그에게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추적해온 지 약 6개월 만이다.

그가 도피 행각을 벌이는 동안 한미 사법 당국은 테라·루나 폭락 사태와 관련 있는 인물들을 일제히 조사하는 등 수사망을 좁혀온 터여서 이번 신병 확보를 계기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 가상화폐 시장 뒤흔든 테라·루나 사태, 어떻게 촉발됐나

테라·루나와 권 대표가 세계 금융권 이슈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5월 이들 가상화폐의 가치가 급락하면서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엔지니어를 거친 권 대표는 2018년 소셜커머스 티몬 창업자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와 손을 잡고 테라폼랩스를 설립했다.

이후 테라폼랩스에서 발행한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이하 테라)와 자매 코인 루나는 한때 시가총액 상위권 암호화폐로 부상하며 업계와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또 그가 설립한 ‘루나파운데이션가드’가 테라 가치를 떠받치는 안전장치의 하나로 15억 달러어치 비트코인을 사들이면서 가상화폐의 큰손을 뜻하는 ‘비트코인 고래’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테라의 가치를 계속 안정적으로 떠받치는 데 실패하면서 자매 코인 루나도 폭락하는 사태를 맞게 됐다.

이 알고리즘은 루나 공급량을 조절해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 1개의 가치를 1달러에 맞추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테라를 예치하면 루나로 바꿔주고 최대 20% 이율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세워 투자자를 모았다.

하지만 가상화폐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테라가 1달러 밑으로 추락했고, 테라폼랩스는 루나를 대량으로 찍어내 테라를 사들임으로써 가치를 부양하려 했다. 이는 결국 통화량 증가에 따른 가치 폭락과 대량 투매 사태로 이어졌다.

이후 가상화폐 헤지펀드 스리애로우스캐피털(3AC), 코인 중개·대부업체 보이저 디지털, 거대 가상화폐 거래소 FTX 등의 연쇄 파산이 이어지면서 코인 시장의 위기를 촉발했다.

◇ 수상한 알고리즘과 “수익 보장” 홍보…시세조종도 의심

지난달 중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테라폼랩스와 권 대표를 사기 혐의로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SEC는 권 대표 등이 스테이블 코인을 포함한 무기명증권을 판매해 투자자들에게 최소 400억 달러 규모의 손해를 끼쳤다고 고발했다.

SEC는 권 대표 등이 테라와 미 달러화의 1대 1 교환 비율을 유지한다고 광고하는 등 코인의 안전성을 내세워 투자자를 오도했다고 봤다. 이에 더해 미국 뉴욕 검찰도 권 대표 체포 소식이 전해진 이날 그를 증권사기와 시세조작 등 8개 혐의로 기소했다.

블룸버그 통신이 인용한 공소장에 따르면 뉴욕 검찰도 권 대표가 테라의 블록체인 기술 등에 관해 투자자들을 속인 것으로 봤다. 특히 그가 TV 인터뷰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거짓이거나 오해를 초래할 수 있는 진술을 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또 권 대표가 테라의 시장 가치를 변동시키기 위해 익명의 미국 거래 회사와 함께 시장 조작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했다. 다만 블룸버그는 “정확히 무엇이 권씨 프로젝트의 붕괴를 촉발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며 “미 당국은 지난해 11월 파산한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와의 연관성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험 투자를 전문으로 했던 FTX 계열사 알라메다 리서치는 보이저 캐피털에 코인을 빌려줬다가 큰 손실을 봤는데, 보이저 캐피털이 테라·루나 사태의 여파로 작년 7월 파산하는 등 도미노처럼 잇따라 붕괴하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권 대표가 비트코인 1만개 이상을 빼돌렸다는 혐의도 미 당국의 수사 대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SEC는 지난달 중순 고발장에 이런 내용을 적시하면서 권 대표가 비트코인 1만개를 ‘콜드월렛'(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실물 암호화폐 저장소)에 보관해왔으며 작년 5월부터 주기적으로 이 자금을 스위스 은행으로 이체, 현금화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현재 비트코인 시세(2만8천달러)를 기준으로 비트코인 1만개는 2억8천만달러에 달한다.

◇ 한국 검찰은 테라 증권성 입증, 자본시장법 위반 수사 주력

한국 검찰도 1년 가까이 권 대표를 수사해왔다. 검찰은 테라·루나 폭락 사태 직후인 작년 5월 투자자들이 사기와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권 대표를 고소함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를 맡은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수사 과정에서 루나가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작년 9월 권 대표 등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증권성’이 성립되지 않으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검찰은 그간 가상화폐가 투자계약증권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해 왔다.

자본시장법을 전문으로 하는 법조계 인사들은 루나와 테라 생태계를 고려하면 투자계약증권으로 볼 수 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테라와 루나의 가치를 연동해 서로 교환해준 점과 테라를 예치하면 20%에 가까운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유인한 점 등이 ‘투자 계약’ 성격을 띠는 것으로 해석됐다.

검찰은 또 작년 11월 권 대표가 테라폼랩스 직원과 나눈 대화 내용을 확보해 권 대표가 테라 시세를 조종하라는 취지의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는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대표가 당초 1테라의 가치를 미화 1달러 수준에서 자동 조정되도록 설계했다고 홍보했지만, 사실은 특정 가격에 맞춰 일종의 시세 조종을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법무부를 통해 범죄인 인도를 청구해 권 대표를 국내 송환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다만 권 대표는 미 당국의 수사 대상이기도 한 만큼, 그의 신병이 미국으로 인도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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