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추도사] 역사의 진보를 믿었던 민주주의의 거목, 이해찬 부의장님을 기리며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한인회관에 마련된 고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분향소. 베이뉴스랩 포토뱅크.
존경하는 이해찬 부의장님,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증인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치열했던 투사였던 부의장님을 눈물로 보내 드립니다. 2026년 1월의 차가운 겨울바람도 당신이 평생토록 품으셨던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식히지 못할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비보 앞에 우리 모두는 황망함을 금할 길이 없으며, 고인이 평생 짊어지셨던 국가와 민족에 대한 그 거룩한 무게를 다시금 가슴 깊이 새깁니다.

부의장님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걸어온 고난과 영광의 기록이었습니다.
서슬 퍼런 유신 독재 시절, 청년 이해찬은 안락한 삶 대신 가시밭길을 택하셨습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면서도 굴하지 않으셨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또다시 고초를 겪으면서도 당신의 신념은 결코 꺾이지 않았습니다. 독재의 총칼 앞에서도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았던 그 강직함이 있었기에, 이 땅에 민주주의의 봄은 비로소 올 수 있었습니다.

부의장님은 단순한 정치인을 넘어, 민주주의의 위대한 설계자이셨습니다. 1987년 6월의 뜨거웠던 여름을 기억합니다. 6월 항쟁의 중심에서 민주 헌정을 쟁취 해내셨고, 이후 제도권 정치에 입문하여 7선 의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시는 동안에도 늘 ‘약자의 편’과 ‘민주적 가치’를 최우선에 두셨습니다. 당신께서 보여주신 단호한 결단력과 혜안은 혼란스러운 정국마다 민주 진영의 나침반이 되었고, 대한민국이 권위주의를 탈피해 선진 민주 국가로 나아가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한인회관에 마련된 고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추모식에서 헌화하는 김지수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한인회 이사장.
부의장님, 당신은 늘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국무총리 시절 보여주셨던 국가 균형발전을 향한 집념, 세종시라는 담대한 도전,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서 염원하셨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이제 남겨진 우리들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차가운 머리로 전략을 세우셨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으로 동지들을 아끼셨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셨습니다.

이제 그 뜨겁고 치열했던 민주화의 장정을 멈추고 평안히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흘린 땀방울과 눈물은 이 땅의 민주주의라는 거목의 뿌리가 되었고, 당신이 내디딘 한 걸음 한 걸음은 후대들이 걸어갈 당당한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그 매서운 질책과 따뜻한 통찰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부의장님께서 꿈꾸셨던 ‘사람 사는 세상’, ‘평화로운 한반도’를 향해 우리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부의장님, 이제 하늘 나라에서 김대중 대통령님 노무현 대통령님을 만나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같이 걱정하고 계십니까? 그토록 그리워하시던 영원한 동지 김근태 의장을 만나셨습니까? 서슬 퍼런 고문과 탄압의 현장에서, 그리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광장에서 두 분이 나누셨던 그 뜨거운 약속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제 무거운 짐은 남겨진 저희에게 맡기시고, 하늘에서 김 의장님과 함께 평화롭게 미소 지으시 길 바랍니다.

민주주의의 거목이시여,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그리운 동지들과 함께 고통 없이 평온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부의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김지수 변호사·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한인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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