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록·퓨전 넘나든 혁신적 음색 탐구…후대에 지대한 영향
사인은 세균성 수막염…갑작스런 별세에 음악계 애도 봇물
‘기타리스트들의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제프 벡이 별세했다. 향년 78세.
뉴욕타임스(NYT)와 AP통신 등 현지 언론은 11일 벡의 공식 웹사이트를 인용해 그가 전날 세균성 수막염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자택이 위치한 영국 남부의 리버홀 인근 병원에서 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으로는 2005년 결혼한 아내 산드라 캐시가 있다. 분신과도 같았던 흰색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도 주인을 잃게 됐다.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함께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벡은 1944년 영국 웰링턴에서 회계사 아버지와 초콜릿 공장에 다니던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났다. 12∼13세 무렵 기타를 직접 만들어 볼 정도로 기타에 흥미를 보인 그는 윔블던 미술대학에 진학했으나 미술보다는 밴드 활동에 몰두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영국의 다양한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면서 실력을 쌓아나간 그는 1965년 당시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있었던 밴드 ‘야드버즈’에 클랩튼의 후임으로 가입한 것을 계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야드버즈에서 그가 연주한 ‘쉐이프 오브 팅스'(Shapes of Things)’는 영국 싱글차트 3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1위에 각각 오르는 등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이 곡에서 피드백을 사용한 거친 솔로 연주로 주목받은 벡은 이후 야드버즈와 결별한 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밴드 ‘제프 벡 그룹’을 결성했다.
이후 솔로 가수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로드 스튜어트와 롤링 스톤스의 기타리스트가 되는 로니 우드 등이 초창기 멤버였지만 극도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벡의 까다로운 성격 탓에 멤버들의 교체가 잦았다.
5년만인 1972년 밴드를 해산한 벡은 3인조 밴드 ‘벡, 보거트 앤드 어피스’를 거쳐 1975년 영국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팀을 이뤄 제작한 연주앨범 ‘블로 바이 블로'(Blow by Blow)를 발표해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록 역사에 남을 명반으로 꼽히는 이 앨범 수록곡 ‘쉬스 어 우먼(She’s a Woman)’에서 그는 인간의 목소리를 기타의 음색으로 변조시키는 이펙터인 토크박스를 사용했다.
또한 ‘커즈 위브 엔디드 애즈 러버스(Cause We’ve Ended as Lovers)’에서는 현을 튕긴 뒤 기타의 볼륨을 조절해 클래식 현악기 같은 효과를 내는 ‘볼륨 주법’을 선보이는 등 혁신적인 음색을 창조했다.
이후 그는 건반연주자 얀 해머와 함께 재즈 록·퓨전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는 앨범 ‘와이어드(Wired)’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첫 솔로앨범 ‘블로 바이 블로’에 이어 연속으로 100만장 이상 판매되며 플래티넘 음반으로 기록됐다.
완벽주의자였던 벡은 완성도 높은 앨범을 선보이며 비평가들에게는 극찬받았지만 3대 기타리스트의 다른 일원인 클랩튼이나 페이지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블루스와 퓨전 재즈, 하드록을 넘나들며 혁신을 추구했던 벡은 테크닉적으로는 후배 연주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페이지는 벡을 조명한 2018년 다큐멘터리에서 “모두가 제프를 존경한다. 그는 보기드문 뮤지션으로, 연주할 때 (단순히 연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관객과 대화를 한다”고 찬사를 보냈다.
에어로스미스의 조 페리도 과거 인터뷰에서 “제프 백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기타리스트”라며 “그는 한 두 세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재능으로 나머지 우리 모두보다 위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꾸준하게 새로운 음색을 탐구하는 벡의 고집에 매료돼 그를 스튜디오로 초빙한 가수들도 적지 않다. 1970년대 초반에는 스티비 원더가 벡과 함께 작업을 했고, 핑크 플로이드 출신 로저 워터스는 1992년도에 발표한 ‘어뮤즈드 투 데스(Amused to Death)’에서 벡의 기타를 내세웠다.
벡은 지난해 ‘헤비메탈의 제왕’ 오지 오스본이 낸 최신 앨범의 첫 번째 싱글 ‘페이션스 넘버 9(Patient Number 9)’의 기타 솔로를 담당하기도 하는 등 별세 전까지 60여년간 록 기타의 외길을 걸었다. 작년에는 할리우드 스타이자 기타리스트인 조니 뎁과의 협업으로 새 음반 ’18’을 내놓고 투어를 다니는 등 최근까지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그래미상을 8번 수상한 벡은 음악 잡지 롤링 스톤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명’에서 5위에 오르기도 했다.
벡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음악계에서도 애도가 이어졌다. 10대 시절부터 벡과 인연을 이어온 페이지는 트위터에 “제프는 이제 천상에서 음악을 전해줄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블랙 새버스의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는 트위터를 통해 “그는 시대를 상징하는 천재적인 기타리스트였다”면서 “제프 벡과 같은 사람은 또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뉴욕타임스(NYT)와 AP통신 등 현지 언론은 11일 벡의 공식 웹사이트를 인용해 그가 전날 세균성 수막염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자택이 위치한 영국 남부의 리버홀 인근 병원에서 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으로는 2005년 결혼한 아내 산드라 캐시가 있다. 분신과도 같았던 흰색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도 주인을 잃게 됐다.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함께 3대 기타리스트로 꼽히는 벡은 1944년 영국 웰링턴에서 회계사 아버지와 초콜릿 공장에 다니던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났다. 12∼13세 무렵 기타를 직접 만들어 볼 정도로 기타에 흥미를 보인 그는 윔블던 미술대학에 진학했으나 미술보다는 밴드 활동에 몰두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영국의 다양한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면서 실력을 쌓아나간 그는 1965년 당시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있었던 밴드 ‘야드버즈’에 클랩튼의 후임으로 가입한 것을 계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야드버즈에서 그가 연주한 ‘쉐이프 오브 팅스'(Shapes of Things)’는 영국 싱글차트 3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1위에 각각 오르는 등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이 곡에서 피드백을 사용한 거친 솔로 연주로 주목받은 벡은 이후 야드버즈와 결별한 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밴드 ‘제프 벡 그룹’을 결성했다.
이후 솔로 가수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로드 스튜어트와 롤링 스톤스의 기타리스트가 되는 로니 우드 등이 초창기 멤버였지만 극도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벡의 까다로운 성격 탓에 멤버들의 교체가 잦았다.
5년만인 1972년 밴드를 해산한 벡은 3인조 밴드 ‘벡, 보거트 앤드 어피스’를 거쳐 1975년 영국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조지 마틴과 팀을 이뤄 제작한 연주앨범 ‘블로 바이 블로'(Blow by Blow)를 발표해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록 역사에 남을 명반으로 꼽히는 이 앨범 수록곡 ‘쉬스 어 우먼(She’s a Woman)’에서 그는 인간의 목소리를 기타의 음색으로 변조시키는 이펙터인 토크박스를 사용했다.
또한 ‘커즈 위브 엔디드 애즈 러버스(Cause We’ve Ended as Lovers)’에서는 현을 튕긴 뒤 기타의 볼륨을 조절해 클래식 현악기 같은 효과를 내는 ‘볼륨 주법’을 선보이는 등 혁신적인 음색을 창조했다.
이후 그는 건반연주자 얀 해머와 함께 재즈 록·퓨전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는 앨범 ‘와이어드(Wired)’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첫 솔로앨범 ‘블로 바이 블로’에 이어 연속으로 100만장 이상 판매되며 플래티넘 음반으로 기록됐다.
완벽주의자였던 벡은 완성도 높은 앨범을 선보이며 비평가들에게는 극찬받았지만 3대 기타리스트의 다른 일원인 클랩튼이나 페이지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블루스와 퓨전 재즈, 하드록을 넘나들며 혁신을 추구했던 벡은 테크닉적으로는 후배 연주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 페이지는 벡을 조명한 2018년 다큐멘터리에서 “모두가 제프를 존경한다. 그는 보기드문 뮤지션으로, 연주할 때 (단순히 연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관객과 대화를 한다”고 찬사를 보냈다.
에어로스미스의 조 페리도 과거 인터뷰에서 “제프 백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기타리스트”라며 “그는 한 두 세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재능으로 나머지 우리 모두보다 위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꾸준하게 새로운 음색을 탐구하는 벡의 고집에 매료돼 그를 스튜디오로 초빙한 가수들도 적지 않다. 1970년대 초반에는 스티비 원더가 벡과 함께 작업을 했고, 핑크 플로이드 출신 로저 워터스는 1992년도에 발표한 ‘어뮤즈드 투 데스(Amused to Death)’에서 벡의 기타를 내세웠다.
벡은 지난해 ‘헤비메탈의 제왕’ 오지 오스본이 낸 최신 앨범의 첫 번째 싱글 ‘페이션스 넘버 9(Patient Number 9)’의 기타 솔로를 담당하기도 하는 등 별세 전까지 60여년간 록 기타의 외길을 걸었다. 작년에는 할리우드 스타이자 기타리스트인 조니 뎁과의 협업으로 새 음반 ’18’을 내놓고 투어를 다니는 등 최근까지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그래미상을 8번 수상한 벡은 음악 잡지 롤링 스톤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명’에서 5위에 오르기도 했다.
벡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음악계에서도 애도가 이어졌다. 10대 시절부터 벡과 인연을 이어온 페이지는 트위터에 “제프는 이제 천상에서 음악을 전해줄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블랙 새버스의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는 트위터를 통해 “그는 시대를 상징하는 천재적인 기타리스트였다”면서 “제프 벡과 같은 사람은 또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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