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에 ‘조국애’ 심어준 시대의 어른, 해외 유일 생존 독립유공자 이하전 지사 별세

새크라멘토 자택서 4일 별세, 향년 104세
독립운동·교육·봉사로 이어진 ‘애국’ 실천
대한민국 정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지난달 17일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한인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하전 지사.
독립운동가 이하전 지사가 4일 새벽 4시 새크라멘토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유족이 밝혔다. 향년 104세다. 1921년 11월 26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생전 독립유공자 가운데 최고령이자, 해외에 거주하던 유일한 생존 독립유공자로 알려져 왔다. 북가주 지역에 거주하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전하고, 한인 사회에 조국애와 역사 의식을 일깨워온 시대의 어른이 영면에 들었다.

이하전 지사는 지난달 17일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한인회가 수여하는 ‘대한민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수상했다. 10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택이 있는 새크라멘토에서 직접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을 찾아 상을 받았고, 제123주년 미주한인의날 기념식에도 참석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아쉽게도 이날 행사는 고인이 한인 사회와 공식적으로 만난 마지막 자리로 남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이하전 지사의 104세 생일을 맞아 축전과 선물을 보내 감사를 표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9일 페이스북에 ‘104세 독립운동가께서 부른 ‘고향의 봄’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자유,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한 지사님께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해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며 “귀가 어두우신데도 축전을 끝까지 경청하고, 기쁜 마음에 ‘고향의 봄’을 불렀다고 한다. 머나먼 미국 캘리포니아 땅에서 조국을 떠올리며 노래하는 지사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적었다.

이 대통령은 또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한없이 송구한 마음”이라며 “이 지사님을 비롯한 선열들이 걸어온 자랑스러운 독립투쟁의 역사를 영원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지켜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하전 지사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수상한 뒤 수상자 및 가족, 샌프란시스코 한인회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하전 지사는 일제강점기 한국과 일본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36년 평양 숭인상업학교에 재학 중 이광수의 『흙』, 『조선의 현재와 장래』 등을 탐독하며 민족의식을 키웠고, 일본인의 차별과 억압에 맞서 조국 독립을 이루겠다는 뜻을 굳혔다. 1938년에는 동료 학생들과 함께 비밀결사 독서회를 조직해 활동했으며, 이후 ‘축산계’로 명칭을 바꾸고 결의문을 작성해 항일 의식을 다져갔다.

1939년에는 안창호 선생의 사진을 건네받고 그 뜻을 기리며 비밀결사의 활동 자금으로 사용할 8달러를 출연했다. 일본 유학 중이던 1941년 1월, 도쿄에서 비밀결사 활동을 이어가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고향 평양으로 압송됐고, 같은 해 12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죄명은 ‘일본제국 타도와 조선독립운동’이었다.

1945년 해방을 맞은 뒤 그해 10월 연희대학교에 입학해 철학을 공부했으며, 1948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패서디나에서 수학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이후 몬터레이 미 육군 언어학교 한국어과 교수가 되어 평생 미군 장병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쳤다.

고인은 1947년 흥사단에 입단해 단우번호 316번으로 활동했으며, 도산 안창호의 정신을 평생의 좌표로 삼아 살았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광복회 회장을 맡아 독립운동 정신을 알리고 한인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데도 힘썼다.
이하전 지사가 고령임에도 직접 샌프란시스코를 찾아 자랑스러운 한국인상을 수상한 뒤 수상소감을 전하고 있다. 이 지사는 수상소감에서 한인들에 대한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해 전했다.
학자이자 저술가로서의 발자취도 남겼다. 1998년 옥중기 『아담후예들의 나체군무』를 시작으로 『빛을 따라서』(2003), 『나그네 인생』(2006), 『들려온 소리들』(2008), 『오마니의 콧노래』(2012) 등 모두 다섯 권의 저서를 펴냈다.

201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선조들의 희생정신을 본받았으면 한다”며 “어디에서 태어났든 조상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고인은 1954년 결혼해 부인 고인숙 씨와 사이에 아들 인철 씨와 딸 인희 씨를 두었다. 평생을 독립과 교육, 그리고 한민족의 정신을 전하는 데 바친 이하전 지사의 삶은 미주 한인 사회와 역사 속에 깊이 남게 됐다.

한편, 고 이하전 지사의 장례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건국훈장을 수훈한 독립지사인 고인의 장례는 현재 대한민국 국가보훈부와의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장례 일정은 추후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글·사진 = 최정현 기자 / choi@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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