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전설 ‘선댄스의 아이콘’ 로버트 레드포드 별세…향년 89세

소년 같은 미소의 스타이자 아카데미 수상 감독
환경운동가∙독립영화 수호자 인생 89년 마감

로버트 레드포드. 자료사진.
할리우드의 황금소년에서 오스카 수상 감독, 진보적 활동가이자 독립영화의 대부로 자리 잡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AP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이 16일 보도했다. 레드포드는 유타 산맥 선댄스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잠든 채로 별세했다고 홍보 담당자 신디 버거가 전했다.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1960년대 스타덤에 오른 그는 1970년대 ‘캔디데이트’, ‘대통령의 사람들’, ‘추억’ 등으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 ‘보통 사람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으며 연출가로도 정상에 올랐다. 금발 머리와 소년 같은 미소로 당대 최고의 인기 배우였지만, 그는 외모에 갇히지 않기 위해 정치적 발언, 비주류 역할 도전, 독립영화 지원에 나섰다.

레드포드는 워싱턴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 산 속 사냥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중간첩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제인 폰다, 메릴 스트립, 톰 크루즈와 호흡을 맞췄지만, 가장 각별한 파트너는 폴 뉴먼이었다. 두 사람은 ‘내일을 향해 쏴라’와 ‘스팅’으로 전설적인 듀오가 됐다. ‘선댄스 키드’라는 영화 속 이름은 훗날 그가 창립한 선댄스 영화제의 상징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 그는 연기보다 연출과 제작, 그리고 독립영화 지원에 집중했다. 유타주 파크시티에 세운 선댄스 인스티튜트와 영화제는 쿠엔틴 타란티노, 스티븐 소더버그, 폴 토머스 앤더슨, 대런 아로노프스키 같은 신예를 발굴했다. 레드포드는 “핵심은 독립”이라며 할리우드 주류에 가려진 목소리에 무대를 내주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환경운동 역시 평생의 사명이었다. 로스앤젤레스가 자동차와 스모그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그는 깨끗한 공기와 물, 자연 보존을 위해 앞장섰다. 클린에어법·클린워터법 통과에 힘썼고, 유타 토지 보존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레드포드는 1936년 8월 18일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태어나 야구 장학금으로 대학에 진학했으나 연극과 미술에 빠져 배우의 길을 걸었다. 브로드웨이 무대와 TV 드라마를 거쳐 영화에 입문했고, ‘맨발로 공원을’에서 제인 폰다와 함께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1994년 ‘퀴즈 쇼’, ‘말을 듣는 남자’, ‘밀라그로 빈필드 전쟁’ 등 연출작들은 사회와 인간의 본질을 담아냈다. 2002년에는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으며 영화계에 남긴 발자취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레드포드가 생전에 남긴 “나는 태어날 때부터 경계 밖을 향해 달려온 아웃사이더였다”는 말이 그의 삶과 영화, 그리고 선댄스 정신을 가장 잘 대변한다.

레드포드는 두 차례 결혼해 네 자녀를 두었으며, 그 중 두 명을 먼저 떠나보냈다. 아들 제임스 레드포드는 2020년 작고했다.


스티브 권 기자 / steve.kwon@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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