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동양의 보물’ 직지…활자만큼은 선명

프랑스서 수장고에 보관되다 1973년 이후 처음 모습 드러내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4월 12일∼7월 16일 전시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이 11일(현지시간)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 개막에 전시할 예정인 직지 하권의 실물.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약칭 직지) 하권이 50년 만에 수장고 밖으로 나왔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은 11일(현지시간)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 개막을 하루 앞두고 언론 초청 행사를 개최했다. BnF는 글과 사상의 전파 측면에서 인류에 혁명을 일으킨 구텐베르크를 중심으로 인쇄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전시회를 마련하면서 직지 하권을 공개했다.

BnF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직지 하권을 일반 대중에 공개한 것은 1973년 ‘동양의 보물’ 전시회 이후 처음이다.

직지는 도서관 1층 전시회장 초입에 있는 ‘구텐베르크 이전의 유럽’ 섹션에서 투명한 유리 안에 놓인 채로 관객들을 만날 준비하고 있었다. 펼쳐진 페이지는 누렇게 색이 바래고, 무언가에 오염된 듯 얼룩덜룩했지만, 활자는 선명하게 남아있어 글자를 식별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이 4월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직지 등을 전시하는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장 입구.
동양 고문서 부서를 총괄하는 로랑 에리셰 책임관은 직지를 펼칠 때 가해지는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뒷부분을 열어놓았다고 설명했다. 이 장에는 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비이원성'(non-dualite)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에리셰 책임관이 밝혔다.

프랑스 길상사 주지인 혜원 스님은 비이원성이란 선과 악, 아름답고 추함 등 상대적인 차별을 뛰어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로랑스 앙젤 도서관장은 이날 오후 문화재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직지가 1952년 BnF 품에 들어온 이후부터 보편적인 유산을 보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앙젤 관장은 “공동의 역사인 직지의 중요성, 그리고 당시 기술을 더 잘 이해하는데 직지의 역사를 인지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과학적인 작업을 국제적인 지평에서 장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프랑스와 한국 기관이 협업해 2021년부터 직지를 물리적, 화학적으로 분석을 진행해왔다며, 이를 BnF가 소장한 또 다른 한국 자료와 비교·대조하는 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이 4월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직지 등을 전시하는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장 입구.
BnF는 전시회장 안내문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백운 스님이 말년에 부처의 가르침을 담아 1377년 간행한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소개했다. 1900년 이전에 서울에 주재한 프랑스 외교관 콜랭 드 플랑시가 1896∼1899년 사이 직지 하권을 발견했고, 골동품 수집자인 앙리 베베르가 이를 1911년 구매한 뒤 1952년 BnF에 유증했다고 덧붙였다.

BnF는 직지가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80년 먼저 나왔다며 “아시아의 인쇄 기술은 유럽보다 몇 세기에 앞서 있었지만, 한 문화 지역에서 다른 문화지역으로 전파됐음을 증명하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직지의 정확한 명칭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승려인 백운 경한(1298∼1374) 스님이 역대 여러 부처와 고승의 대화, 편지 등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 편찬한 책으로 고려 우왕 3년(1377)에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됐다.

세계 인쇄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구텐베르크 성서(1455년)보다 정확히는 78년 앞선 인쇄본이다. 직지는 상·하 2권으로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상권은 전하지 않고 하권만 프랑스에 남아있다.

이번 전시회는 4월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약 석 달 동안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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