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열풍 조명한 스탠퍼드 아태연구소…배우 이병헌, “올드보이·기생충 출연 못한 것 아쉬워”

배우 이병헌, 박지은 작가 초청 ‘한류의 미래’ 콘퍼런스 열어
배우 이병헌 “OTT가 한국 배우들에게 더 많은 기회 제공”
K-드라마 인기 원인 “한국 최첨단 기술 빠르게 적응, 새로운 콘텐츠 제작”

이병헌이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한류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배우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스탠퍼드대 쇼렌스틴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 소장 신기욱 교수)가 지난 4월 19일 맥카우홀에서 ‘한류의 미래(The Future of Hallyu)’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APARC 설립 4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날 콘퍼런스는 배우 이병헌과 ‘사랑의 불시착’으로 유명한 박지은 작가를 비롯해 이영진, 다프나 주르 스탠퍼드대 교수, 김주옥 텍사스 A&M대 교수, 크리스토퍼 한스콤 UCLA교수, 보니 틸랜드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 교수 등 한국학, 한국문화 관련 석학들이 참여해 한류의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날 콘퍼런스는 지난해 APARC가 한국학 과정인 코리아 프로그램을 개설한지 20주년을 맞아 개최한 ‘K-POP의 미래 비전’에 이은 것으로 콘퍼런스에 참여한 패널들은 K-POP과 함께 최근 세계적인 선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대해 조명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맥카우홀을 가득 메운 학생과 북가주 지역 한인 등 300여 명의 청중들은 패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궁금증을 풀기도 했다.

❖이병헌 “넷플릭스 등 OTT 한국 배우들에게 많은 기회 제공해줘”

‘아이리스’, ‘미스터 션샤인’, ‘JSA’, ‘광해’ 등 많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 ‘지아이조’,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 할리우드에도 진출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이병헌은 이날 콘퍼런스의 마지막 패널로 참여해 유창한 영어로 배우로서의 자신의 인생과 작품관 그리고 할리우드 진출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이병헌은 “20대 출여했던 영화들이 실패를 한 뒤 배우를 그만둬야 겠다는 결심을 한 적도 있다”고 말한 뒤 “하지만 박찬욱 감독님의 ‘공동경비구역 JSA’에 출연하며 배우에 대한 관점이 바뀌게 되었다”며 “내 캐릭터를 만드는 것 보다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이야기에 동화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병헌은 이 영화 이후 출연작들을 선정할 때 대본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이병헌은 이어 출연하지 못해 후회스러운 작품들도 털어놨다. 이병헌은 한 청중의 질문에 “일급비밀”이라고 너스레를 떤 뒤 “올드보이, 기생충, 헤어질 결심 등의 영화에 출여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이 영화들에 출연하지 못하게 된 것은 이미 계약된 다른 일정들이 있어서”라고 해명한 뒤 크게 웃었다.

‘올드보이’는 2004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높인 작품이었다. ‘기생충’은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헤어질 결심’은 올해 아시아필름어워즈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작품을 고르는데에는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읽는 순간 느끼는 감정이나 감성이 재미있다고 느껴지면 따르는 편”이라고 이병헌은 밝혔다.

이병헌은 영화 ‘지. 아이. 조(G.I. Joe)에 캐스팅 되며 할리우드에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도 밝혔다. 이병헌은 “2006년 일본에서 4만명이 넘는 팬미팅을 한 적이 있었다”며 당시 사진을 보여준 뒤 “당시 할리우드에서는 내가 출연했던 영화가 아닌 도쿄에서 열렸던 팬미팅 사진을 보고 아시아 시장으로의 진출을 가늠했던 것 같다. 이것이 내가 할리우드에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이병헌은 한국과 할리우드의 제작 시스템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병헌은 “할리우드에 오니 프리 프로덕션(사전 제작 시스템)이 굉장히 철저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 뒤 “실제 촬영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일들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 예로 차량 스턴트 장면에서 차량이 파손되자 똑같은 차량을 5분만에 구해와 깜짝 놀랐던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이어 “한국의 제작 시스템은 현장에서 많은 것이 이뤄진다. 아이디어 회의가 열리기도 한다”며 “이런 점이 한국만의 독창성을 만들어내는 장점”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이병헌은 OTT 플랫폼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냐는 질문에는 “배우의 입장에서 넷플릭스와 같은 OTT는 많은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하지만 여전히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전했다.

이병헌은 연기 노하우를 묻는 한 청중의 질문에 “32년간 배우로 살며 연기가 쉽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매 작품마다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답변했다.
박지은 작가(왼쪽)가 한국의 드라마 제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패널로 참여한 이진희 스탠퍼드대 교수.
❖ ‘사랑의 불시착’ 박지은 작가 참석 K-드라마 제작과정 설명

이날 패널토론에는 ‘사랑의 불시착’, ‘별에서 온 그대’ 등 인기 드라마를 쓴 박지은 작가가 참석해 K-드라마 제작과정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도 마련됐다.

박지은 작가는 “예전 LA를 방문했을 때 미국의 드라마 제작 과정을 엿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8편의 에피소드를 12명의 작가가 참여해 스토리를 만드는 것을 봤다”며 “한국의 경우는 여전히 한 명의 작가가 소설가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을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드라마 작가가 필요한 경우 보조작가를 두고 자료조사와 모니터링 등 메인 작가를 도와준다”며 “’사랑의 불시착’의 경우 북한의 문화와 언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탈북인과 함께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박지은 작가는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에서는 모든 이야기가 한 번에 공개되기 때문에 예전처럼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대본 작업을 하지는 못한다”며 “배우와 스태프 등 제작을 하는 입장에서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박지은 작가(왼쪽 두번째)가 인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대본 작업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것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박 작가는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해서 한국인들만이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드라마가 공개된 시점이 코로나 팬데믹이어서 자유롭게 여행하지 못하는 상항에서 드라마를 보다 보니 많은 공감대를 얻은 것 같다”고 풀이했다.

박지은 작가는 이외에도 대본 작업 후 배우 섭외를 하고 감독과 함께 드라마 제작에 대해 논의하는 등 전반적인 드라마 작업에 대해 소개했다. 또한 과거 로맨스와 가족 이야기가 중심이 됐던 한국드라마가 넷플릭스 등 OTT 보급으로 장르도 다양해지고 의사, 변호사 출신 작가가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K-드라마에 대해 패널 토론을 하고 있는 석학들. (오른쪽부터) 다프나 주르 스탠퍼드대 교수, 크리스토퍼 한스콤 UCLA교수,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 보니 틸랜드 교수, 김주옥 텍사스 A&M대 교수. 맨 왼쪽은 패널 토론 진행을 맡은 마씨 권 스탠퍼드대 교수.
❖ “최첨단 기술에 빠르게 적응하는 한국인들…전 세계가 주목하는 콘텐츠 만들어내”

K-드라마가 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지에 대해 한국학과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석학들의 패널 토론도 이어졌다. 스탠퍼드에서 한국학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다프나 주르 교수, 김주옥 텍사스 A&M대 커뮤니케이션 교수, UCLA 한국 등 아시아 언어 문화를 가르치는 크리스토퍼 한스콤 교수,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 보니 틸랜드 교수 등은 패널 토론에서 K-드라마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인기를 얻는데 대해 ‘한국인들의 빠른 정보기술 습득력과 OTT 보급’을 꼽았다.

다프나 주르 교수는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들 보다 최첨단 기술에 빠르게 반응하고 쉽게 전파되며 변화해 나간다”며 “이런 한국의 특성이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인기를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주옥 교수는 왜 세계가 K-드라마 갑자기 주목하게 됐는지 묻는 질문에, ‘K-드라마’가 짧은 시간에 인기를 끈 것은 아니라는 답변을 내놨다. 김 교수는 “한국 드라마는 1990년대와 2000년대 ‘겨울연가’, ‘대장금’ 등을 통해 일본과 동남아, 중동 등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많은 수익도 창출할 수 있었다”며 “이를 토대로 K-드라마가 해외로 더 많이 진출할 수 있었고 미주 지역까지 인기가 확산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김주옥 교수(왼쪽)가 K-드라마가 인기를 얻기까지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 출신인 다프나 주르 교수는 “1993년 이스라엘을 떠나 한국으로 갈 때 주위에서 왜 한국에 가느냐고 물었다”며 “하지만 2010년 경 이스라엘에 머물 때에는 ‘김밥’, ‘강남’, ‘사랑해’와 같은 한국말을 모두가 알 정도로 한국문화가 보편화 돼 있었다”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보니 틸랜드 교수는 최근 K-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에 대해서는 ‘글로벌 방영 시스템’인 OTT를 꼽았다. 보니 틸랜드 교수는 “넷플릭스 등을 통해 190여개개 넘는 나라에서 K-드라마가 방영되면서 그동안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해온 K-드라마가 더욱 폭넓은 인기를 끌 수 있게 됐다”며 “’오징어게임’, ‘사랑의 불시착’ 등 인기드라마 순위 T-10에 5편의 K-드라마가 포함돼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 패널들.
크리스토퍼 한스콤 UCLA교수는 “한류는 이미 미국에서도 중요한 문화로 자리매김 했다”고 말한 뒤 “학생들이 K-팝과 K-드라마에 관심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쉽게 친해지고 소통한다”며 “한국의 유명대학 이름이 새겨진 옷을 입고 들어오는 백인 학생들을 수업시간에 쉽게 볼 수 있고, 유명 서점에서 BTS가 읽었던 책을 추천하는 코너가 마련돼 있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고 예를 들어 설명했다.

패널들은 그동안 한류가 전 세계에서 어떻게 인기를 얻고 주목을 받아왔는지 분석하며 다가올 미래에는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감이 크다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패널 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는 다프나 주르 스탠퍼드대 교수(오른쪽).
한편, 이날 행사에 앞서 APARC 신기욱 소장은 인사말을 통해 “그동안 정치, 경제, 북한문제 등에 치중해 왔지만 최근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관심을 반영하기 위해 지난해 개최한 K-팝 콘퍼런스에 이어 올해는 K-드라마를 조명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축사에 나선 윤상수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는 “챗GPT에 물었더니 ‘K-드라마는 지난 몇 년간 독특한 스토리텔링, 매력적인 캐릭터 등으로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다’고 답했다”며 “작가, 배우, 감독, 프로듀서가 진정한 문화외교관”이라고 말했다.


최정현 기자 / choi@baynewslab.com

Related Posts

의견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