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군의 뿌리 북가주 ‘윌로우스 비행학교’ 조명하는 학술대회 열린다

국립항공박물관・국외소재문화재단 공동
임시정부 비행학교의 역사적 가치와 보존방안 모색
8월 10일 오후 9시30분부터 유튜브 생중계

1920년 당시 윌로우스 비행학교 모습.
한국 공군의 뿌리이자 대한민국 항공역사가 시작됐던 북가주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된다.

한국항공박물관과 국외소재문화재단은 오는 8월 11일 오후 1시 30분(SF시간 8월 10일 오후 9시 30분)부터 ‘대한민국 항공역사의 효시 임시정부 비행학교의 역사적 가치와 보존방안’을 주제로 공동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전 연세대 사학과 교수이자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던 김도형 박사가 ‘윌로우스 한인비행가양성소의 설립과 운영에 대해 주제 발표를 하게 되며, 프레즈노 주립대 교수이자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장인 김영욱 교수가 ‘윌로우스 한인 비행학교 발굴 과정과 그 보존이 미주 한인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발표를 한다.

이어 임종현 헤리티지스마트컨설팅 대표가 ‘대한민국 옛 임시정부 비행학교 현지조사 성과와 보존을 위한 제언’에 대해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장이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사례로 본 국외사적지 활용 방안’ 등에 대해서도 주제발표가 이어진다.

주제발표에 이어 홍윤정 심산김창숙기념관 학예실장, 안태현 전 공군박물관장, 한종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 책임, 길윤형 한겨례신문 국제뉴스팀장이자 안창남 평전 저자가 참여하는 종합토론 시간도 마련된다.
1920년 당시 윌로우스 비행학교 모습. 학교 교사 정면에 성조기가 게양되어 있고, 마구간과 창고가 있다. 뒤에는 학생들이 기숙하던 막사가 희미하게 보인다. 독립기념관 제공.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1920년 7월 5일 세워졌다. 당시 새크라멘토 인근 지역에서 쌀농사로 대부호가 됐던 김종림이 40에이커의 땅과 5만 달러(현재 약 1000만 달러)의 자금을 내놓으며 시작됐다. 학교 운영은 상하이 임시정부 군무총장이던 노백린 장군이 맡았다.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노백린 장군이 주장한 ‘무장투쟁론’에서 시작됐다. 노백린 장군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독립전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공군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이를 바탕으로 윌로우스 비행학교가 세워졌고, 당시 레드우드시티의 비행학교에서 조종사 양성을 받던 한인들이 윌로우스 조종사양성소가 세워되며 옮겨와 교육을 받았다. 당시 레드우드 비행학교 강사였던 프랭크 브라이언트도 함께 스카웃되며 교관으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오래가지 않아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쌀농사를 통해 비행학교 운영자금의 거의 전부를 지원하던 김종림이 1921년 쌀값 폭락에 대홍수까지 겹치며 더 이상 비행학교를 지원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비행 실습 중 사고까지 겹쳐 결국 1921년 4월 문을 닫게 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임시정부에서 파견됐던 노백린 장군이 운영을 했고 김종림을 비롯한 초기 한인 이민 선조들이 힘을 모아 운영했던 윌로우스 비행학교에서는 70명이 넘는 조종사들이 배출되며 한국 공군의 뿌리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윌로우스 비행학교와 김종림에 대한 연구와 기념사업 노력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나마 단국대 초빙교수였던 류기원씨가 윌로우스항공기념재단을 설립하며 기념사업을 시작했고 윌로우스시가 위치한 클렘카운티 의회로부터 윌로우스 비행학교 기념관 건립을 위한 부지를 임대하는 등 성과를 올렸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는 국립항공박물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 된다. 학술대회 시작은 미 서부시간 기준 8월 10일(화) 오후 9시 30분 부터다.


Bay News Lab / editor@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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