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몽니’로 한미일 차관 공동회견 엎은 일본…미국 홀로 진행

일본, 경찰청장 독도방문 거론 회견불참 통보…3국협의 묻힐까 미 중재 수용
동맹 규합하려던 미국 '난처'…기시다 내각 첫 한일차관 만남, 관계개선 난항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 17일 한미일 차관협의회가 끝난 후 국무부에서 회견하고 있다. 당초 회견은 한미일 공동회견으로 열릴 예정이었지만 셔먼 부장관만 참석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외교 당국 2인자들이 17일 미국에서 진행하려던 공동 기자회견이 경찰청장의 독도방문을 문제 삼은 일본의 불참 통보로 미국 측 대표만 홀로 회견하는 일이 발생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전통적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지만, 정작 회의를 주재한 미국에서 한일 양국이 급랭한 관계 속에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셈이 됐다. ‘독도 몽니’를 부리며 합의했던 다른 나라와의 공동 외교 행사에 일방적으로 불참을 통보한 일본의 외교 결례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이날 오전 워싱턴DC 국무부에서 ‘제9차 외교차관협의회’를 한 후 오후 2시 공동 회견을 할 예정이었다.

이날 협의는 3국의 외교 차관이 지난 7월 이후 넉 달 만에 한자리에 다시 모여 머리를 맞대고 북핵을 비롯한 각종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국무부는 이미 하루 전에 협의회 직후 세 차관이 공동 회견을 한다고 공지했다. 지난 7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8차 협의회 후에도 이들 세 차관이 공동 회견을 했기에 당연한 절차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한미일 3국의 기자들도 풀 취재단을 구성해 회견장에 참석했다.

하지만 오전 10시 예정된 협의회 직전에 문제가 생겼다. 최 차관이 회담이 열리는 국무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와중에 셔먼 부장관이 일정에 없던 면담을 요청했다. 셔먼 부장관은 한국 경찰청장의 독도 방문으로 공동 회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일본 측 주장을 전하며 우리 측 입장을 물어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 측 주장은 ‘경찰청장 독도 방문으로 비행기를 못 탈 뻔했다’는 것이었다. 일본 분위기가 안 좋은데 한미일 회의가 중요해 상부를 설득해서 왔다는 것”이라며 “일본은 (공동회견에서) 일본 기자들이 경찰청장 독도 방문 질문을 할 것이고 그 경우 자신의 입장을 강하게 얘기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그 경우 우리도 명확히 반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결국 최 차관은 한일 간 문제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미일 협의가 덮이는 상황을 우려한 회담 주최자인 셔먼 부장관의 중재를 수용했다. 이후 세 차관은 한 자리에 모여서 셔먼 부장관이 혼자 회견하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17일 한미일 차관협의회가 끝난 후 주미한국대사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최 차관도 이날 특파원 간담회에서 “일본이 경찰청장 독도 방문 문제로 공동회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며 “한미일 협의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미국이 단독회견을 통해 3자 회의 결과를 공개하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일어난 뒤 한미일 협의에서 독도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후 예정됐던 한일 차관협의도 그대로 진행됐다. 셔먼 부장관은 회견에서 “한동안 그랬듯이 일본과 한국 사이에 계속 해결돼야 할 일부 양자 간 이견이 있었다”며 “이 이견 중 하나가 오늘 회견 형식의 변화로 이어졌다. 이 이견은 오늘 회의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일은 한일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등 과거사 및 독도 문제 등을 놓고 어느 때보다 냉각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여겨진다. 김창룡 경찰청장의 16일 독도 방문은 2009년 이후 12년 만이었다. 김 청장의 독도 방문 직후 일본은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은 물론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까지 나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날을 세웠었다.
17일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가 열렸다. 이날 최종건 외교부 1차관,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참석했다. 웬디 셔먼 트위터 캡처.
셔먼 부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한국, 일본과 아주 건설적인 3자 협의를 하고 종전선언과 관련한 협의에도 매우 만족한다고 밝혔지만, 공동 회견 무산에 따라 빛이 바랬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틀 전 바이든 정부 들어 첫 미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대표적인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고위급을 모아 규합하려던 미국 입장에서는 일면 난처한 상황이 됐다.

이날 회담이 지난달 4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 취임 이후 첫 한미일 차관급 만남이라는 점에서 냉각된 한일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서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등 한미일 3국 북핵대표가 지난달 19일 미국에서 만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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