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불상, 11년 제자리 찾기 분쟁 끝에 결국 일본 손으로

2012년 문화재 절도단이 일본서 밀반입
대법원 7년 소송전 끝 일본 취득시효 인정
불상 되찾으려 노력했던 지역사회 실망

사진은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수장고에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 문화재청 제공.
절도범에 의해 일본에서 국내로 들어온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의 소유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26일(한국시간) 대법원이 일본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11년 만에 마무리됐다.

불상 제자리 찾기 운동을 펼쳤던 충남 서산 지역사회 관계자들은 판결에 아쉬움을 표현하면서 외교·문화 영역에서 불상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절도범이 밀반입한 불상…결연문엔 ‘서주 사찰에 봉안’

불상 소유권 분쟁은 2012년 국내 문화재 절도단이 일본 쓰시마섬에서 국보급 불상 2점을 훔쳐 국내로 들여오면서 시작됐다. 절도단은 2012년 10월 일본 나가사키현 카이진신사와 간논지에 침입, 통일신라시대 동조여래입상과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을 훔쳐 나왔다.

이 가운데 금동관음보살좌상 안에 ‘1330년경 서주에 있는 사찰에 봉안하려고 이 불상을 제작했다’는 결연문이 담겨 있는 게 알려지면서 소유권 논란이 촉발됐다. 서주는 서산의 고려시대 명칭이다.

서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부석사는 “불상이 왜구에게 약탈당한 것으로,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지역사회와 불교계도 불상 환수 운동을 펼쳤다. 일본 간논지 측도 불상을 도난당한 사실이 명백한 만큼, 조속히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일본 정부도 여러 차례 불상을 돌려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고려 후기인 14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이 불상은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불교의 보살 중 하나인 관세음보살이 가부좌한 모습으로, 높이 50.5㎝, 무게 38.6㎏다. 고려 후기 보살상 중 예술적 가치가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엇갈린 판결…1심 ‘부석사’·2심 ‘간논지’

부석사가 2016년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유체동산 인도 소송을 내면서 법적 다툼이 본격화했다. 1심은 부석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전지법은 2017년 1월 불상을 부석사로 인도하라는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이 불상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도난이나 약탈 등 방법으로 일본으로 운반돼 봉안되어 있었다며 역사·종교적 가치를 고려할 때 불상 점유자는 불상을 원고인 부석사에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판단 근거로는 이 불상이 제작된 1330년 이후 서산지역에 왜구들이 5차례에 걸쳐 침입했다는 기록과 불상에 화상의 흔적이 있는 점 등을 들었다. 왜구들은 주로 사찰에 방화한 후 불상을 가지고 나왔다는 자문 결과를 토대로 했다.

국가를 대리해 소송을 맡은 검찰은 ‘불상과 결연문의 진위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은 무려 6년 넘게 이어졌다. 대전고법은 지난 2월 1심을 뒤집고 불상을 일본에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간논지 측이 1953년부터 불상이 도난당하기 전인 2012년까지 60년간 평온·공연하게 점유해 온 사실이 인정된다”며 “불상이 불법 반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취득시효(20년)가 완성된 만큼 소유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당시 서주의 부석사가 현재의 부석사와 동일한 종교단체라는 입증도 되지 않았다고 봤다.

◇ 대법원, ‘취득 시효’ 법리 적용…”일본에 소유권”

부석사 측은 항소심 재판부가 시효취득에 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왜구에 의한 약탈은 ‘무단 점유’로서 자주 점유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매매에 관한 사안과 같이 본 항소심 판단은 일본국 판례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서산시는 고려시대 부석사와 현재 부석사가 같은 종교단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시굴 조사에도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상고를 기각하고, 소유권이 일본에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타인의 물건이더라도 일정 기간 문제 없이 점유했다면 소유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는 ‘취득 시효’ 법리에 따라 불상의 소유권이 정상적으로 간논지에 넘어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옛 섭외사법(현 국제사법) 법리에 따라 취득시효가 만료하는 시점에 물건이 소재한 일본 법을 적용하는 게 맞는다고 보고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및 공연하게 타인의 물건을 점유하는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옛 일본 민법에 따라 일본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피고보조참가인(간논지)이 법인격을 취득한 1953년 1월 26일부터 2012년 10월 6일경 절도범에 의해 이 사건 불상을 절취당하기 전까지 계속하여 이 사건 불상을 점유했다”며 “간논지는 취득시효가 완성된 1973년 1월 26일 당시 일본국 민법에 따라 이 사건 불상의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또 불상이 고려 시대 왜구에 약탈당해 불법으로 반출됐을 개연성이 있다거나 우리나라 문화재라는 사정만으로 이러한 취득시효 법리를 깰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2심과 달리 서주 부석사가 현재 부석사와 같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봤다.

◇ 지역사회 “실망스럽지만, 되찾는 노력 계속”

불상 제자리 찾기 운동을 지속해서 펼쳤던 지역사회는 대법원 판결을 “약탈을 정당화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부석사 전 주지인 원우 스님은 “문화재를 빼앗겼던 후손의 입장에서 약탈을 자행했던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라며 “대법원이 약탈을 앞장서서 합법화했다. 전 세계에 내놔도 정말 부끄러운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이상근 부석사불상봉안위원회 상임대표도 “약탈품의 시효취득을 인정한 이해가 안 가는 판결”이라며 “악의적 점유의 시효취득을 인정하지 않는 게 국제적인 판례 흐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불상을 부석사로 돌려놓기 위한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우스님은 “그럼에도 우리는 종교적·외교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미국이 우리나라에 어보를 돌려준 것처럼 문명국의 일반적인 흐름에 일본이 동참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근 상임대표도 “안타깝고 쉽지 않겠지만, 문화적 교류나 일본 불교계와 협력을 통한 수단으로 불상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 후 일본 측은 불상의 조속한 반환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간논지의 다나카 세츠료 주지는 조기 반환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NHK 방송은 전했고, 무라이 히데키 일본 관방 부장관도 “불상이 간논지에 조기 반환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를 설득하고 간논지를 포함한 관계자들과 연락해 적절하게 대응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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