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개냐 사냥감이냐…이정재·정우성 첩보물 ‘헌트’ 칸서 첫선

관객들 3분 기립박수…감독 데뷔 이정재, 불어로 "메르시 보꾸"

영화 '헌트' 속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영화 재밌게 보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메르시 보꾸!”

20일(현지시간) 0시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을 통해 최초 공개된 영화 ‘헌트’를 연출하고 주연한 이정재는 영화가 끝난 뒤 마이크를 들고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감독 데뷔작인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들어설 때부터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주연 배우이자 절친한 친구인 정우성이 옆을 지켰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자 객석에서 하나둘 일어난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고, 기립박수는 약 3분간 이어졌다. 이정재와 정우성은 함께 손뼉을 치며 상기된 얼굴로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정재는 주연 배우로만 제안을 받았지만 “대의를 위한 두 남자의 선택이 많은 공감대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출을 결심했고 각본도 집필했다고 한다. 그는 남다른 배짱과 촉으로 안기부에서 13년간 자리를 지킨 1팀장 박평호 역을 연기했다. 정우성은 군에 오랫동안 몸담았다가 안기부로 갓 들어온 2팀장 김정도 역을 맡았다. 둘은 남파 간첩 총책임자 색출에 나서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영화는 박정희 정권부터 5·18민주화운동까지 억압과 피억압의 현대사를 보여주는 시퀀스로 시작한다. 박평호와 김정도가 하는 일은 국가에 해악이 된다고 여겨지는 ‘반항자’들을 잡고, 엮고, 불게 만들어 사회에서 추방하는 것이다. 언뜻 사냥꾼 같아 보이지만, 실은 위에서 찍은 사냥감을 대신 해치워주는 사냥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느 날 안기부 고위직 중에 스파이 총책 ‘동림’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둘은 순식간에 사냥감 신세로 전락한다. 이들은 서로를 스파이로 의심하는 상대의 이빨에 물어뜯기지 않기 위해 점점 더 노골적이고 저열하게 비밀을 파고든다.

후반부로 갈수록 두 사람의 정체는 점차 또렷해지지만,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 누구 한 사람이 죽어야만 끝나는 싸움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첩보물인 만큼 영화는 격투와 총격전, 폭발 신까지 시원스러운 액션 장면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추리와 추적을 통해 전개되는 촘촘한 심리전에 더 눈길이 간다. 경쟁하듯 서로를 파고들지만, 관객들은 이들이 선역인지 악역인지, 적인지 아군인지도 막판까지 가늠하기 어려울 듯하다.

이정재는 칸영화제 측을 통해 “화려한 액션도 중요하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펼쳐지는 이야기와 상황들이 각 캐릭터에게 어떤 결정을 내리게 하는지 주목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묵직한 주제 의식 또한 울림을 준다. 이정재는 “특정 단체나 심지어 정부가 이데올로기를 통해 우리를 선동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혹독한 제한을 통해 우리를 폭정에 따르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영화는 그런 시대의 잘못을 멈추기 위한 노력 중 하나”라며 “우리의 양심과 정의로운 자각이 갈등을 멈추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릭터 자체가 가진 힘도 무시할 수 없다. 2시간가량 이어지는 심리 스릴러가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박평호와 김정도는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비인간적이거나 인간적이어서 묘하게 공감을 산다.

실화와 픽션을 적절히 섞은 스토리는 관객에게 상상과 예측의 공간을 허락한다. 방콕 테러, 전투기 귀순, 대학 교수 간첩 조작 사건 등은 모두 실제 있었던 일에서 영감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황정민, 주지훈, 박성웅, 조우진, 김남길, 이성민 등 쟁쟁한 배우들의 우정 출연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헌트’는 칸영화제에서 며칠간 더 상영되며 국내에서는 오는 8월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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