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사로잡은 ‘신의 목소리’ 조수미…아름다운 선율과 환상적 기교에 ‘기립박수’

헙스트 극장서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특별 공연
오페라 아리아와 한국 가곡 등 모두 14곡 선사
김윤희 바이올린, 비니첸코 피아노 연주 ‘풍성’

태극기를 연상시키는 드레스를 입고 나온 소프라노 조수미가 안드레이 비니첸코의 반주로 줄리어스 베네딕트의 '집시와 새'를 부르고 있다.
역시 조수미였다. 샌프란시스코 헙스트 극장에서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열린 공연에서 조수미는 특유의 고음역대에서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며 녹슬지 않은 기량으로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왜 그를 세계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고 부르는지 확인시켜주는 무대였다.

조수미는 첫번째 무대에 하얀색 드레스에 빨강과 파랑의 리본을 허리에 메고 나왔다. 한미동맹 70주년을 의식한 듯 태극기를 연상시키는 드레스였다. 드레스에 눈길을 뺏긴 것도 잠시, 줄리어스 베네딕트의 ‘집시와 새(The Gypsy and The Bird)’, 비발디의 오페라 바자제트(Bajazet) 중 이레네의 아리아로 유명한 ‘나는 멸시 받는 아내라오(Sposa Son Disprezzata)’, 에바 텔라쿠아의 ‘목가(La Villanelle)’까지 연이어 세 곡을 부른 소프라노 조수미의 무대에 관객들은 탄성과 함께 박수갈채를 보냈다.

바이올린 연주자 김윤희의 무대에 이어 조수미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오페레타 ‘박쥐(Die Fledermaus)’의 ‘내가 시골의 순진한 여자를 연기한다면(Spiel Ich Die unschuld Vom Lande)’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 노래는 조수미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서거 100주기를 기념해 1999년에 발표한 앨범 ‘A Tribute to Johann Strauss’에 수록돼 인기를 끌었던 곡이기도 하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라 '유쾌한 미망인' 중에서 '입술은 침묵하고'를 부르고 있다. 이 곡은 왈츠풍으로 곡 중간 관객석에 앉아있던 이석찬 씨를 무대로 불러 함께 왈츠를 추기도 했다.
이어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미소의 나라(Das Land Des Lachelns)’와 ‘유쾌한 미망인(Die Lustige Witwe)에서 두 곡을 불렀다. 미소의 나라에서는 ‘나의 온 마음은 당신 것이오(Dein Ist Mein Ganzes Herz)’를 유쾌한 미망인에서는 ‘입술은 침묵하고(Lippen Schweigen)’를 골랐다. 슈트라우스 2세부터 레하르까지의 곡들은 모두 왈츠풍의 곡들로 레하르의 곡 사이에 반주를 맡은 안드레이 비니첸코의 ‘쇼팽 왈츠(Waltz in C-Sharp Minor Op.64, No.2)’까지 어울어지며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입술은 침묵하고’를 부를 때에는 관객 한 명을 무대위로 불러 함께 왈츠를 추고 포옹을 하는 등 재미있는 연출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무대에는 공연무대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샌프란시스코 한인회장을 역임한 이석찬 씨가 불려 올라갔다. 이석찬 씨는 공교롭게도 이날 무대에 앞서 공연 소개를 맡았던 이수지 씨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피아노 반주와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아돌프 아담의 오페라 '투우사' 중 '아 어머니 들어주세요'를 부르고 있다.
이어 1부 순서 마지막 곡으로 조수미는 아돌프 아담의 오페라 ‘투우사(Le Toreador)’ 중 ‘아 어머니 들어주세요(Ah Vous Dirai-je Maman)’를 바이올린과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불렀다. 이 곡은 우리에게 익숙한 ‘반짝반짝 작은별’의 멜로디가 담겨 있는 곡으로 프랑스 민요에서 유래했다. 모차르트의 ‘작은별 변주곡(12 Variation on ‘Ah Vous Dirai-je Maman’)’도 프랑스를 여행하던 모차르트가 이 멜로디를 듣고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무대에서는 피아노 반주에 바이올린 연주까지 더해져 독특한 무대로 꾸며졌다. 특히 바이올린과 조수미의 목소리가 함께 어울어지며 만들어낸 선율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관객들도 곡이 끝난 뒤 첫 기립박수를 보냈다.

인터미션에 이어 고풍스런 드레스를 입고 나온 조수미는 김동진 작곡 ‘가고파’, 이홍렬 작곡 ‘꽃구름 속에’, 임긍수 작곡 ‘강 건너 봄이 오듯’ 등 세곡의 한국 가곡을 불렀다. 한인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리게하는 무대였다.
김동진 작곡의 한국가곡인 가고파를 부르고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
조수미는 이어 마이클 윌리엄 발페의 오페라 ‘보헤미안 소녀(The Bohemian Girl)’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나는 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꾸었어요(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s)’와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Rinaldo)’에서 ‘나를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를 불렀다. 가곡에 이어 차분한 분위기의 무대가 연출됐다.

조수미는 로시니의 알프스의 ‘양치기 소녀(La Pastorella Delle Alpi)’로 분위기를 바꿨다. 제목처럼 양치기 소녀가 부르는 이 노래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시킬 정도로 경쾌한 멜로디로 조수미는 곡 중 나오는 ‘야호’소리와 메아리를 관객들과 함께하며 참여를 유도하기도 했다. 마지막 곡으로는 빈첸초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I Puritani)’에서 ‘그대의 달콤한 목소리가 나를 부르네(Qui La Voce Sua Soave)’를 불렀다. 성호를 그은 뒤 노래를 시작한 조수미는 ‘달콤한’ 목소리를 선사하며 예정된 공연을 모두 마쳤다.
앵콜곡으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조수미.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홒프만 이야기' 중에서 '인형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환호성과 함께 기립박수를 보냈다. ‘브라바’를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무대 뒤로 사라졌던 조수미는 커튼 콜을 받고 다시 무대로 나왔다. 이번엔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한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아리랑이었다. 자신의 반주로 부른 아리랑이 끝나자 관객들은 다시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환호성도 이어졌다.

두 번째 커튼 콜에 다시 무대에 선 조수미는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호프만 이야기(Les Contes d’Hoffmann)’ 중 ‘인형의 노래(Les Oiseaux Dans La Charmille)’를 불렀다. ‘인형의 노래’는 오페레타 극 중 ‘올랭피아(Olympia)’의 아리아로 태엽이 풀리면 노래가 멈추는 설정으로 씌여져 유명한 곡이다. 이 날 무대에서도 조수미는 이 부분을 연기했고 피아니스트인 비니첸코가 태엽을 감는 장면을 연출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두 번의 앵콜을 끝으로 공연은 마무리 됐다. 관객들은 무대 조명이 꺼질 때까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 날 공연은 조수미가 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프라노인지 베를린 필하모닉의 전설적 지휘자였던 카라얀으로부터 왜 ‘신이 주신 목소리’라 평가를 받았는지 새삼 되새겨 보는 무대였다.
공연을 마친 뒤 인사를 하고 있는 소프라노 조수미, 가운데는 피아노 반주를 맡은 안드레이 비니첸고, 오른쪽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
특히, 최근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계희, 이영은, 손지훈은 물론 지난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8살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임윤찬,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조성진 등 한국의 음악가와 연주자들을 빼 놓고는 현대 클래식 음악계를 논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정명훈, 정경화, 정명화 등과 함께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하는 선두주자인 성악가 조수미의 공연은 문화강국으로 우뚝 선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는 뜻 깊은 공연이였다.

또한 오스트리아 국적의 한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가 선사한 생상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Introduction and Rondo Capriccioso, Op. 28)’와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 Op. 20)’는 이날 공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반주를 맡은 안드레이 비니첸코의 쇼팽 왈츠와 리스트의 ‘사랑의 꿈(Liebestraum, No. 3)’ 연주는 담백하면서도 차분한 연주로 관객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한편, 이날 공연은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과 시애틀 총영사관 그리고 LA한국문화원이 공동 후원해 개최됐다. 시애틀에서는 지난 8월 3일 베나로야홀에서 공연이 열렸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는 8월 6일 헙스트 극장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오는 8월 11일에는 LA 월트디즈니홀에서도 한 차례 공연이 더 열린다.


최정현 기자 / choi@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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