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담당하며 코로나 팬데믹 기간 ‘격리면제서’ 밤새워 발급 ‘유명세’
임기 마치고 오는 2월 19일 귀임…서울시 버스정책과 과장으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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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이원강 영사가 임기를 마치고 이임한다. 이 영사는 아마도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이 문을 연 이래 가장 유명세를 탔던 민원 담당 영사로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격리면제서’가 도입되며 유튜브를 통해 제도를 설명하고 밤을 새워가며 단 한 건의 신청도 놓치지 않고 서류를 발급해 전국구 스타가 됐기 때문이다.
이임 인터뷰를 위해 이원강 영사를 만난 자리에서 ‘격리면제서’ 발급과 관련된 질문부터 던졌다.
이 영사는 “그 때는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을 했고, 유튜브를 통해 민원인들께 단 한 건의 신청도 놓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한 상황이라 그 약속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다”며 “하지만 막상 격리면제서 신청이 시작되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서류가 밀려들었고 눈 앞이 캄캄해 졌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영사는 이어 “약속은 못 지키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지난해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집에도 가지 못하고 영사관에서 먹고 자며 쇄도했던 격리면제 신청서를 단 한 건도 남기지 않고 처리할 수 있었다”며 “민원실 한 켠에 놓아둔 간이 침대에서 잠은 비록 1~2시간 밖에 자지 못했지만 보람은 컸다”고 밝혔다.
이 영사의 이런 노력은 북가주가 아닌 타 지역 한인들로부터 회자되기 시작했다. 단 기간에 너무 많은 서류 신청이 쏟아지며 처리 기간이 지체되자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서는 격리면제서 발급이 제대로 이루지는데 왜 우리 지역은 안되냐는 이야기들이 타 지역 한인들로부터 터져 나온 것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워낙 한국 방문이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격리면제서 발급과 관련한 소식은 한인들 사이에서 ‘이슈’가 됐고 언론에서도 주목하는 뉴스가 됐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뉴욕, 애틀랜타, 시카고, 시애틀, LA 등 미 전역의 한인 언론들이 이 영사의 활약을 보도하는 칭찬 기사를 쏟아냈다. 외교부 홈페이지의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이 영사에 대한 칭찬글이 쇄도 한 것은 당연한 ‘수순’ 이라고나 할까.
이원강 영사는 “팬데믹 기간이라 처음에는 민원인 분들의 반응이 이렇게 뜨거운 줄 몰랐다”며 “어느 날부터인가 총영사관으로 커피와 간식 등이 배달되면서부터 분위기를 실감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영사는 ‘격리면제서’ 발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이 영사는 “밤을 새워가며 격리면제서를 발급한 것이 칭찬을 듣거나 물 바라고 한 일이 아닌 그저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인데 너무나 과분한 칭찬을 듣게 됐다. 공직자의 한 명으로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원강 영사는 지난 2019년 2월 부임했다. 부임 직후에는 동포 영사로 근무했으며 총무 영사를 거쳐 민원을 담당해 왔다.
임기를 마친 이원강 영사는 오는 2월 19일 파견 전 근무했던 서울시로 복귀한다. 복귀 후에는 서울시 관내 모든 시내버스를 관리하는 버스정책과 과장으로 근무를 하게 된다.
이 영사는 “젊은 시절 혹시라도 고시에 낙방하면 버스 운전사가 되려고 1종 대형 버스 운전면허를 따 두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한국으로 귀임하며 버스정책과에서 일을 하게 됐다”며 “샌프란시스코에서 배운 것 처럼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주어진 업무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원강 영사는 “토니 베넷의 노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의 가사 처럼 몸은 비록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마음만은 샌프란시스코에 남겨 두고 간다”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꼭 다시 오고 싶다. 북가주 한인분들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인터뷰 자리를 떠났다.
한편, 오는 2월 19일 이임하는 이원강 영사의 후임에는 서울시 유미옥 과장이 부임한다. 유미옥 과장은 제54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서울시에서 공기업 담당관으로 근무했다.
이임 인터뷰를 위해 이원강 영사를 만난 자리에서 ‘격리면제서’ 발급과 관련된 질문부터 던졌다.
이 영사는 “그 때는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을 했고, 유튜브를 통해 민원인들께 단 한 건의 신청도 놓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한 상황이라 그 약속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다”며 “하지만 막상 격리면제서 신청이 시작되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서류가 밀려들었고 눈 앞이 캄캄해 졌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영사는 이어 “약속은 못 지키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지난해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집에도 가지 못하고 영사관에서 먹고 자며 쇄도했던 격리면제 신청서를 단 한 건도 남기지 않고 처리할 수 있었다”며 “민원실 한 켠에 놓아둔 간이 침대에서 잠은 비록 1~2시간 밖에 자지 못했지만 보람은 컸다”고 밝혔다.
이 영사의 이런 노력은 북가주가 아닌 타 지역 한인들로부터 회자되기 시작했다. 단 기간에 너무 많은 서류 신청이 쏟아지며 처리 기간이 지체되자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서는 격리면제서 발급이 제대로 이루지는데 왜 우리 지역은 안되냐는 이야기들이 타 지역 한인들로부터 터져 나온 것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워낙 한국 방문이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격리면제서 발급과 관련한 소식은 한인들 사이에서 ‘이슈’가 됐고 언론에서도 주목하는 뉴스가 됐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뉴욕, 애틀랜타, 시카고, 시애틀, LA 등 미 전역의 한인 언론들이 이 영사의 활약을 보도하는 칭찬 기사를 쏟아냈다. 외교부 홈페이지의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이 영사에 대한 칭찬글이 쇄도 한 것은 당연한 ‘수순’ 이라고나 할까.
이원강 영사는 “팬데믹 기간이라 처음에는 민원인 분들의 반응이 이렇게 뜨거운 줄 몰랐다”며 “어느 날부터인가 총영사관으로 커피와 간식 등이 배달되면서부터 분위기를 실감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영사는 ‘격리면제서’ 발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이 영사는 “밤을 새워가며 격리면제서를 발급한 것이 칭찬을 듣거나 물 바라고 한 일이 아닌 그저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인데 너무나 과분한 칭찬을 듣게 됐다. 공직자의 한 명으로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원강 영사는 지난 2019년 2월 부임했다. 부임 직후에는 동포 영사로 근무했으며 총무 영사를 거쳐 민원을 담당해 왔다.
임기를 마친 이원강 영사는 오는 2월 19일 파견 전 근무했던 서울시로 복귀한다. 복귀 후에는 서울시 관내 모든 시내버스를 관리하는 버스정책과 과장으로 근무를 하게 된다.
이 영사는 “젊은 시절 혹시라도 고시에 낙방하면 버스 운전사가 되려고 1종 대형 버스 운전면허를 따 두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한국으로 귀임하며 버스정책과에서 일을 하게 됐다”며 “샌프란시스코에서 배운 것 처럼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주어진 업무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이원강 영사는 “토니 베넷의 노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의 가사 처럼 몸은 비록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마음만은 샌프란시스코에 남겨 두고 간다”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꼭 다시 오고 싶다. 북가주 한인분들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인터뷰 자리를 떠났다.
한편, 오는 2월 19일 이임하는 이원강 영사의 후임에는 서울시 유미옥 과장이 부임한다. 유미옥 과장은 제54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서울시에서 공기업 담당관으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