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전문’ 엄마의 ‘고뇌’…전도연 주연 ‘길복순’ 베를린서 첫선

1천800석 전석 매진 K-영화 인기 실감
관객들 "한국의 '로코퀸'? 안 믿겨요"
'반칙없는' 정통액션에 '묵직' 주제 의식도
전도연 "오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변상현 감독(왼쪽), 배우 전도연·김시아가 18일(현지시간)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

대형 스크린 속 ‘길복순’이 털어놓은 이 한 마디에 주변에 앉은 현지 관객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어 대사를 영어·독일어 자막으로 이해해야 했지만, ‘자식 문제’는 만국 공통의 고민거리라는 듯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이 18일(현지시간) 오후 9시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영화제 기간 총 세 차례 현지 관객들을 만날 예정으로, 첫 상영일인 이날 1천800석이 하루도 채 안 돼 전석 매진됐을 정도로 K-영화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자정 가까운 시각까지 객석을 지킨 관객들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시작하자마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객석 가득 메운 관객들.
영화제를 찾는 여배우 하면 떠올릴 법한 우아한 드레스 대신 나비넥타이와 턱시도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주연 배우 전도연은 “오늘을 잊지 못할 거 같다. 여러분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영화는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 주인공 ‘길복순’이 회사와 재계약을 앞두고 휘말리는 사건·사고와 그 과정에서 아이를 키우며 맞닥뜨리게 되는 ‘보통 엄마’로서의 현실적 고민을 이질감 없이 풀어나간다.

영화 ‘밀양'(이창동)으로 ‘원조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이후 제한적인 캐릭터에 “답답했다”는 전도연은 그간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2시간 20분가량의 러닝타임 내내 ‘반칙 없는’ 액션 연기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직장에서는 능력을 인정받는 ‘원톱’이지만, 마트 문이 닫히기 전 빨리 퇴근해야 하고, 학교 폭력에 휘말린 딸의 문제로 고뇌하는 영락없는 보통 엄마의 얼굴이 곳곳에 녹아 있다. ‘킬'(kill)을 연상시키는 성씨와 다소 촌스러운 ‘복순’이란 이름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길복순'. 넷플릭스 제공.
변성현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도연과 사석에서 대화 중 그의 휴대전화에 뜬 ‘복순이모’라는 이름을 보고 그 자리에서 주인공 이름을 ‘길복순’으로 결정했다고 뒷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전도연도 액션 연기가 가장 어려웠다면서 “액션 배우랑 연기를 하면 조금이라도 실수해도 맞춰줄 수 있는데, 배우들끼리 액션을 하는 거라 작은 실수로 인해 다치게 하지 않을까 조심했다”며 “정말 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자녀의 성 정체성이라는 다소 묵직한 주제도 정면으로 다룬다. 이에 기자회견장에서는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질문이 외신 취재진 사이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변 감독은 성 정체성과 무관하게 누구든 “그 고백이 어려운 고백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영화 '길복순'. 넷플릭스 제공.
전도연은 기자회견장은 물론 상영 현장에서도 ‘슈퍼 스타’로 소개됐지만, 관객들에게는 전도연이라는 이름의 친숙함보다 ‘액션 여배우’로 진한 인상이 남은 듯했다.

영화가 끝난 뒤 만난 엘라 프랑케 씨는 “전도연이라는 배우 이름이 사실은 친숙하진 않았는데, 액션 연기가 정말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유명한 로코퀸’이라는 기자의 말에 “정말이냐. 믿기지 않는다”고 되묻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비앙카씨도 “장면이 빨리 전개돼 자막으로 대사를 보는 게 버거울 법도 했는데, 대사보다는 연기 자체로 스토리텔링을 풀어나간 것 같아 더 재미있게 봤다”고 전했다.

길복순은 베를린영화제에서 두 차례 더 상영된 뒤 내달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관객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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