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상하이 의거 91돌…김구가 윤봉길에 한 마지막 당부는

"왜놈 외 인사를 해하지 말라"…김구 중국어 저술 '도왜실기'에 수록
'최측근' 엄항섭이 해방 후 본인글 더해 번역

김구·엄항섭의 '도왜실기'(1946).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 제공.
“윤봉길의 거사는 실로 일본제국주의의 몰락을 선고하는 조포(弔砲)이자 살인방화를 저지른 흉악범을 징벌하는 벽력(霹靂)이었다.(중략) 아!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뜻이 있으면 3군의 장수를 없앨 수 있으니,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자라면 어찌 국가의 존망이 걸린 위급한 때에 손 놓고 죽음을 기다리거나 일어나 분투하지 않을까 보냐”

정확히 91년 전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훙커우 공원 거사에 대해 백범 김구가 8개월 후 출간한 저서 ‘도왜실기(屠倭實記)’에 기술한 내용이다.

1930년대 초 김구는 일제의 만주 침략, 일본 경찰의 간계로 조선 거주 중국인 수백명이 죽거나 다친 ‘완바오산(만보산) 사건'(1931) 등을 보면서 항일 특공작전을 구상하고 이를 수행할 한인애국단을 조직했다. 이후 이봉창·윤봉길 의거가 일어났고 조선총독과 남만주철도회사(滿鐵·만철) 총재 처단 시도가 있었다.

도왜실기는 윤봉길의 의거를 비롯해 한인애국단의 투쟁사를 중국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항일투쟁을 촉구하기 위해 김구가 중국어로 써서 중국에서 발간한 책이다. 윤봉길 의사가 거사 후 연행되는 당시 언론보도 사진도 이 책에 수록됐다.
도왜실기에 수록된 윤봉길 의사의 연행 사진(보도사진).
도왜실기의 내용 중 김구가 윤봉길에게 한 마지막 당부는 일제강점기 의열투쟁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김구는 “최후로 (윤봉길) 군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적은 왜놈뿐이니 오늘 이 일을 실행함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신중히 해야 할 것이고 결코 왜놈 이외의 각국 인사에게 해를 가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불특정 다수를 살상하는 테러 행위가 아니라 침략 원흉만을 족집게처럼 처단하라는 주문이다.

도왜실기는 김구의 ‘최측근’ 엄항섭(1898~1962)이 해방 후 국어로 번역하고 본인의 글을 추가해 국내에서 1946년 3월 다시 출간됐다.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의 윤소라 학예연구사는 “1946년 국내에서 발간된 도왜실기는 엄항섭이 번역하고 자신의 글을 추가해 편집했기 때문에 김구와 엄항섭 두 분이 함께 저술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저장성 피난시절의 김구(뒷줄 오른쪽 세 번째)와 엄항섭(뒷줄 오른쪽 두 번째).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전부장을 지낸 엄항섭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김구를 수행하고 보좌하면서 김구 명의 발표성명과 호소문 초안을 작성하고 번역도 했다. 김구의 보좌관, 연설비서관, 메시지비서관 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해방 후에도 남북협상에서 한국독립당 대표단의 일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6·25전쟁의 혼란 중에 납북됐다.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등에 소속돼 북한의 체제 선전에 이용당하다가 1958년 반당·반혁명 혐의로 체포돼 고초를 겪고 1962년 평양에서 외로이 숨을 거뒀다. 우리 정부는 1989년 엄항섭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윤소라 학예연구사는 “최근 기념관이 수집한 도왜실기는 유일본은 아니지만 김구와 주요 납북 독립운동가가 함께 저술해 사료적 가치와 역사적 의의가 있는 자료”라고 소개했다.

6·25전쟁납북자기념관은 올해 김구·엄항섭의 도왜실기, 납북 언론인 최영수의 기사·삽화가 수록된 신문, 서울 소재 학교가 부산에 설립한 ‘피난학교’ 자료 등 6·25전쟁과 납북자 관련 유물 163종 386점을 공개 구입 절차를 거쳐 수집했다고 29일(한국시간) 밝혔다.

수집한 유물은 보존 처리 등을 거쳐 전시에 활용될 예정이다. 6·25전쟁납북자기념관은 통일부 소속의 전문박물관으로 매년 구입, 기증, 복제 등을 통해 분단과 6.25전쟁 자료를 수집한다.
납북 언론인 최영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의 삽화와 기사가 실린 신문.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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