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부부가 한국에서 오던 지난 1월의 어느날. 남편과 나는 비행기 도착 시간보다 네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공항까지 거리상으로는 한 시간 삼십분 정도였지만 혼잡하기로 악명 높은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통과해야 했거든요. 앞에 차 사고라도 나서 꼼짝없이 길에서 묶이는 경우를 대비해서 넉넉하게 시간을 책정하는 게 옳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다행히 차 사고 같은 것은 없었고 거의 두 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후 두 시간 가까이를 또 기다려서 동생과 상봉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여섯 시간을 동생 마중하는데 허비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가 무지막지하게 막힙니다. 주차장 같습니다. 아예 차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해요. 평일 오후 4시라는 최악의 상황을 감안한다고 해도 정말이지 너무합니다. 차 밀리는 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열몇 시간의 비행에 지쳤을 동생 부부에게 미안해서 그저 전전긍긍, 안절부절. 다섯 시간이나 걸려서 집에 도착하니 밤 열시가 넘었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침대가 아닌 맨바닥에(전기장판 위에 담요를 두 개나 깔아주긴 했지만)누웠을 동생 부부의 안위가 신경 쓰입니다. 우리집에서 자고가는 사람이 아예 없기에 여분 침대를 마련해 놓지 않았었거든요. 동생 오는 걸 기회로 손님용 침대를 구입하자고 남편이 말했었지만 새살림 집에 들이는 게 싫어서 반대한 게 후회 되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일단 집에서 가까운 근교부터 구경을 시키러 나갑니다. 그다음 날에는 쇼핑몰에 데리고 갑니다. 미국의 한국음식을 맛보여 주려 한국식당에도 데리고 가고 미국 음식 맛을 보여주려 미국식당에도 데리고 갑니다. 남편이나 나나 나돌아 다니는 걸 안 좋아하지만 멀리 온 동생을 위해서 매일 건수를 만들어 동분서주합니다. 또한 주위사람들이 동생을 보고 싶어 해서 식사자리를 마련합니다. 식사에 초대된 지인들이 먼 길 왔다고 극구 사양하는 동생에게 ‘노잣돈’이 든 봉투를 쥐어줍니다. 동생은 돌아가면 그만, 모두 내 빚이 되겠지요.
아무 스케쥴이 없어 동생이 집에 있을 땐 혹시라도 따분할까 봐, 심심할까 봐 또 마음이 쓰입니다. 그래서 연신 어디 가고 싶은 데 없냐, 먹고 싶은 것 없냐, 하고 싶은 것 없냐 물어봅니다. 동생 부부를 즐겁고 흡족하게 대접해 주는 게 지상최대의 과제인 것 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 늘 규칙적이고 고즈넉하고 평화롭던 내 일상이 완전히 뒤죽박죽 되는 것을 감수하고 모든 스케쥴을 철저하게 동생한테 맞춥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자. 이제 내가 한국에 갑니다. 인천공항에 내렸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해 몇 시간을 운전해 공항에 가서 대기했었지만요. 한국에서도 간혹 차를 가지고 나와주는 가족이나 친지가 있겠지요. 그러나 대중교통이 편리하게 잘 발달돼 있다는 이유로 한국에 가는 사람에게도 거기 있는 사람에게도 ‘마중’과 ‘배웅’이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전입니다. 미국교포들은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목적지까지 가는 일을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혼자만의 ‘사투’가 시작됩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아니면 두 번씩, 남들보다 자주 나가는 편이지만 눈이 팽팽 돌아가게 발전하고 변하는 한국시스템을 미국 시골구석에서 우물안 개구리같이 살던 촌놈이 따라가기란 벅차니까 사투란 말을 써도 됩니다. 전부 무인화, 기계화 되어 있어요. 차표 한 장 사는 것도 헷갈리고 눈 앞에 안개가 잔뜩 끼인 것처럼 얼떨떨합니다. 요즘은 좀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기계랑 씨름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던지요. 어디다 물어볼 데도 없어요.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별별 시행착오를 거치고 버벅거려야 합니다.
언젠가 한번은 기계로 표를 사는 일을 포기하고(크레딧 카드가 없으니 현금을 기계에 넣었는데 계속 에러 메세지가 떠서)직원이 표 파는 창구로 간 적이 있습니다. 누가 한국 공공기관 직원들을 친절하다고 했나요? 방글방글 웃고는 있습니다. 고객님, 어서 오세요. 뭘 도와 드릴까요하는 목소리도 상냥합니다. 그런데요. 그냥 ‘영혼없는 친절’이라는 게 극명하게 보입니다. 분명히 입꼬리는 양 옆으로 올려져 있는 것 같은데 눈은 웃지 않고 있고요. 얼굴엔 짜증과 피로와 권태가 가득합니다. 직원의 그런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드는 것 있지요.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알아서 기어야할 것 같은 그런 기분. 비굴한 웃음을 지어보여야할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래서 물어볼 점을 미리 머릿속에서 정리한 후 입안에서 몇 번 연습한 후에야 창구로 갑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쳐서 간신히 버스나 지하철을 탑니다. 종착지는 서울역. 한 시간 쯤 걸려서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서울역에 도착했다고해서 끝난게 아닙니다. 태산처럼 높은 에스켈레이트를 타고 하염없이 올라가야 역사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짐이 한 개밖에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택시에서 봇물처럼 쏟아져나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을 전사처럼 씩씩하게 헤치고 부딪치고 비집어야만 목적지로 갈 수 있습니다. 굼뜨고 느리면 안 됩니다. 용감하게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미국에서처럼 남에게 먼저 양보하고 얼굴 마주치는 사람마다 미소 짓고 마음좋게 굴다간 미친사람 되는 것은 한순간이고 금방 도태되고 말아요.
짠~하고 마침내 서울역사에 발을 디뎠습니다. 자, 또 난관 앞에 부딪쳤습니다. 자동티켓 판매기로 열차표를 사야하거든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표를 사서 고향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비행기에서, 길에서 보낸 시간만 하루가 넘습니다.
여름 휴가철만 되면 들이닥치는 친지들 때문에 목청을 돋우며 햄버거샵에서 싸우는 부부를 보고 퍼뜩 든 생각이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봉’이 아닐까, 하는 생각. ‘미국 사는 죄’로 한국 가족과 친지들의 관광과 접대를 떠맡아야 하는 봉. 바리바리 선물 사 오고 와서도 돈을 적지 않게 쓰고 가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남편의 말에 아내가 항변하더군요.
“바리바리? 건어물과 고춧가루 몇 봉지가 바리바리야? 바리바리 안 사다 줘도 되니까 제발 이제 좀 그만 오라고 해! 그리고 한국가게 가면 널린 게 한국 식료품이야. 차라리 내 돈 주고 맘 편하게 사 먹는 게 낫지 꼴랑, 그것 몇 봉자 사다주고는 매일 운전수 노릇 시녀 노릇 해줘야만 하는데?! 손님이라고 와서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차려다 바쳐줘야 하고 나가서 먹는다해도 그 많은 식구들 밥값은 늘 우리가 냈잖아? 그것까지는 좋다 이거야. 사람을 거지 취급하는데 화가 안 날 수가 없어. 쇼핑몰이란 쇼핑몰은 다 섭렵하고 싶어해서 모셔다 주면 지들은 몇 천불짜리 몇 만불짜리 물건들을 척척 사면서 내겐 싸구려 티셔츠 한 장 던져주더라?! 내가 우버 운전사래도 일당으로 치면 몇 백불은 될 건데 그 모든 수고를 당연시 하며 누리려 하는데 내가 불만이 없겠어?없겠냐고?”
그녀가 또 목청 돋구어 말했었습니다.
“일 년에 기껏해야 2주밖에 없는 금쪽같은 귀한 휴가를 내 자신이나 우리 가족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단 하루도 써보지 못했어! 모두 시집식구들 수발을 위해서 다 바쳐야 했지. 그게 진짜 분하고 열통터져서 미치겠어!”
그녀의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직장인에게 휴가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입니다. 온갖 더러운 꼴 참아보면서도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이유가 휴가라는 보상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 귀한 휴가를 한 해도 아니고 두 해도 아니고 매년 남(더구나 시집식구들)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면 얼마나 원통절통할까요. 지금은 남편도 나도 은퇴한 후라 시간이 많습니다만 십몇 년 전, 동생 부부가 왔을 땐 남편도 나도 휴가를 내야 했었어요. 직장에 출근하면서 손님들을 접대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내가 한국에 갔을 때는 그 누구도 나를 위해 휴가를 내지 않았습니다. 동생들도, 친구들도 평상시대로 사업에, 학교에, 운동에 그대로 종사했습니다. 밥이라도 한 끼 먹으려면 오히려 내가 그들의 비는 시간을 맞추어야만 했습니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외롭지요. 그래서 한국에서 누가 오면 진심으로 기쁘게 맞이합니다. 타국에서는 고향 까마귀도 반갑다는 속담도 있듯이 나를 찾아줬다는 사실만으로도 황송해서 집을 내어주고 시간을 내어주고 운전사가 되어주고 관광가이드가 되어주고 요리사가 되어주고. 한 달 생활비가 날아가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손님접대에 최선을 다하지요. 그렇게 융슝하게 대접받고 돌아간 그들. 그들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나요?
이계숙 작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가 무지막지하게 막힙니다. 주차장 같습니다. 아예 차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해요. 평일 오후 4시라는 최악의 상황을 감안한다고 해도 정말이지 너무합니다. 차 밀리는 게 내 잘못은 아니지만 열몇 시간의 비행에 지쳤을 동생 부부에게 미안해서 그저 전전긍긍, 안절부절. 다섯 시간이나 걸려서 집에 도착하니 밤 열시가 넘었습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침대가 아닌 맨바닥에(전기장판 위에 담요를 두 개나 깔아주긴 했지만)누웠을 동생 부부의 안위가 신경 쓰입니다. 우리집에서 자고가는 사람이 아예 없기에 여분 침대를 마련해 놓지 않았었거든요. 동생 오는 걸 기회로 손님용 침대를 구입하자고 남편이 말했었지만 새살림 집에 들이는 게 싫어서 반대한 게 후회 되었습니다.
다음날부터 일단 집에서 가까운 근교부터 구경을 시키러 나갑니다. 그다음 날에는 쇼핑몰에 데리고 갑니다. 미국의 한국음식을 맛보여 주려 한국식당에도 데리고 가고 미국 음식 맛을 보여주려 미국식당에도 데리고 갑니다. 남편이나 나나 나돌아 다니는 걸 안 좋아하지만 멀리 온 동생을 위해서 매일 건수를 만들어 동분서주합니다. 또한 주위사람들이 동생을 보고 싶어 해서 식사자리를 마련합니다. 식사에 초대된 지인들이 먼 길 왔다고 극구 사양하는 동생에게 ‘노잣돈’이 든 봉투를 쥐어줍니다. 동생은 돌아가면 그만, 모두 내 빚이 되겠지요.
아무 스케쥴이 없어 동생이 집에 있을 땐 혹시라도 따분할까 봐, 심심할까 봐 또 마음이 쓰입니다. 그래서 연신 어디 가고 싶은 데 없냐, 먹고 싶은 것 없냐, 하고 싶은 것 없냐 물어봅니다. 동생 부부를 즐겁고 흡족하게 대접해 주는 게 지상최대의 과제인 것 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 늘 규칙적이고 고즈넉하고 평화롭던 내 일상이 완전히 뒤죽박죽 되는 것을 감수하고 모든 스케쥴을 철저하게 동생한테 맞춥니다. 최선을 다합니다.
자. 이제 내가 한국에 갑니다. 인천공항에 내렸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해 몇 시간을 운전해 공항에 가서 대기했었지만요. 한국에서도 간혹 차를 가지고 나와주는 가족이나 친지가 있겠지요. 그러나 대중교통이 편리하게 잘 발달돼 있다는 이유로 한국에 가는 사람에게도 거기 있는 사람에게도 ‘마중’과 ‘배웅’이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전입니다. 미국교포들은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목적지까지 가는 일을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혼자만의 ‘사투’가 시작됩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아니면 두 번씩, 남들보다 자주 나가는 편이지만 눈이 팽팽 돌아가게 발전하고 변하는 한국시스템을 미국 시골구석에서 우물안 개구리같이 살던 촌놈이 따라가기란 벅차니까 사투란 말을 써도 됩니다. 전부 무인화, 기계화 되어 있어요. 차표 한 장 사는 것도 헷갈리고 눈 앞에 안개가 잔뜩 끼인 것처럼 얼떨떨합니다. 요즘은 좀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기계랑 씨름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던지요. 어디다 물어볼 데도 없어요.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별별 시행착오를 거치고 버벅거려야 합니다.
언젠가 한번은 기계로 표를 사는 일을 포기하고(크레딧 카드가 없으니 현금을 기계에 넣었는데 계속 에러 메세지가 떠서)직원이 표 파는 창구로 간 적이 있습니다. 누가 한국 공공기관 직원들을 친절하다고 했나요? 방글방글 웃고는 있습니다. 고객님, 어서 오세요. 뭘 도와 드릴까요하는 목소리도 상냥합니다. 그런데요. 그냥 ‘영혼없는 친절’이라는 게 극명하게 보입니다. 분명히 입꼬리는 양 옆으로 올려져 있는 것 같은데 눈은 웃지 않고 있고요. 얼굴엔 짜증과 피로와 권태가 가득합니다. 직원의 그런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드는 것 있지요.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알아서 기어야할 것 같은 그런 기분. 비굴한 웃음을 지어보여야할 것 같은 그런 기분. 그래서 물어볼 점을 미리 머릿속에서 정리한 후 입안에서 몇 번 연습한 후에야 창구로 갑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쳐서 간신히 버스나 지하철을 탑니다. 종착지는 서울역. 한 시간 쯤 걸려서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서울역에 도착했다고해서 끝난게 아닙니다. 태산처럼 높은 에스켈레이트를 타고 하염없이 올라가야 역사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짐이 한 개밖에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택시에서 봇물처럼 쏟아져나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을 전사처럼 씩씩하게 헤치고 부딪치고 비집어야만 목적지로 갈 수 있습니다. 굼뜨고 느리면 안 됩니다. 용감하게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미국에서처럼 남에게 먼저 양보하고 얼굴 마주치는 사람마다 미소 짓고 마음좋게 굴다간 미친사람 되는 것은 한순간이고 금방 도태되고 말아요.
짠~하고 마침내 서울역사에 발을 디뎠습니다. 자, 또 난관 앞에 부딪쳤습니다. 자동티켓 판매기로 열차표를 사야하거든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표를 사서 고향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비행기에서, 길에서 보낸 시간만 하루가 넘습니다.
여름 휴가철만 되면 들이닥치는 친지들 때문에 목청을 돋우며 햄버거샵에서 싸우는 부부를 보고 퍼뜩 든 생각이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들은 ‘봉’이 아닐까, 하는 생각. ‘미국 사는 죄’로 한국 가족과 친지들의 관광과 접대를 떠맡아야 하는 봉. 바리바리 선물 사 오고 와서도 돈을 적지 않게 쓰고 가는데 뭐가 불만이냐는 남편의 말에 아내가 항변하더군요.
“바리바리? 건어물과 고춧가루 몇 봉지가 바리바리야? 바리바리 안 사다 줘도 되니까 제발 이제 좀 그만 오라고 해! 그리고 한국가게 가면 널린 게 한국 식료품이야. 차라리 내 돈 주고 맘 편하게 사 먹는 게 낫지 꼴랑, 그것 몇 봉자 사다주고는 매일 운전수 노릇 시녀 노릇 해줘야만 하는데?! 손님이라고 와서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차려다 바쳐줘야 하고 나가서 먹는다해도 그 많은 식구들 밥값은 늘 우리가 냈잖아? 그것까지는 좋다 이거야. 사람을 거지 취급하는데 화가 안 날 수가 없어. 쇼핑몰이란 쇼핑몰은 다 섭렵하고 싶어해서 모셔다 주면 지들은 몇 천불짜리 몇 만불짜리 물건들을 척척 사면서 내겐 싸구려 티셔츠 한 장 던져주더라?! 내가 우버 운전사래도 일당으로 치면 몇 백불은 될 건데 그 모든 수고를 당연시 하며 누리려 하는데 내가 불만이 없겠어?없겠냐고?”
그녀가 또 목청 돋구어 말했었습니다.
“일 년에 기껏해야 2주밖에 없는 금쪽같은 귀한 휴가를 내 자신이나 우리 가족을 위해서는 지금까지 단 하루도 써보지 못했어! 모두 시집식구들 수발을 위해서 다 바쳐야 했지. 그게 진짜 분하고 열통터져서 미치겠어!”
그녀의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직장인에게 휴가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입니다. 온갖 더러운 꼴 참아보면서도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이유가 휴가라는 보상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 귀한 휴가를 한 해도 아니고 두 해도 아니고 매년 남(더구나 시집식구들)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면 얼마나 원통절통할까요. 지금은 남편도 나도 은퇴한 후라 시간이 많습니다만 십몇 년 전, 동생 부부가 왔을 땐 남편도 나도 휴가를 내야 했었어요. 직장에 출근하면서 손님들을 접대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내가 한국에 갔을 때는 그 누구도 나를 위해 휴가를 내지 않았습니다. 동생들도, 친구들도 평상시대로 사업에, 학교에, 운동에 그대로 종사했습니다. 밥이라도 한 끼 먹으려면 오히려 내가 그들의 비는 시간을 맞추어야만 했습니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외롭지요. 그래서 한국에서 누가 오면 진심으로 기쁘게 맞이합니다. 타국에서는 고향 까마귀도 반갑다는 속담도 있듯이 나를 찾아줬다는 사실만으로도 황송해서 집을 내어주고 시간을 내어주고 운전사가 되어주고 관광가이드가 되어주고 요리사가 되어주고. 한 달 생활비가 날아가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손님접대에 최선을 다하지요. 그렇게 융슝하게 대접받고 돌아간 그들. 그들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나요?
이계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