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에서 1천192명 사형…통제 수단 활용”

전병무 강릉원주대 연구교수, '조선총독부관보' 등 분석
"인구 2〜3배인 일본과 비슷한 수…1910년대 무단통치기 많아"

1920년 처형된 독립운동가 강우규의 서대문형무소 신상카드.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에서 사형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천192명이며, 일제가 사형을 식민지배 통제 강화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30일(한국시간) 학계에 따르면 전병무 강릉원주대 연구교수는 역사학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 ‘역사연구’ 제40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사형 집행을 당한 사람은 1천192명으로, 연평균 33명, 월평균 2.8명이었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사형 집행 인원을 산출하기 위해 ‘조선총독부통계연보’, ‘조선총독부관보’, ‘조선사법일람’을 활용했다. 그는 “사형 집행 인원을 보면 1910년대가 가장 많고 1920년대와 1930년대 초반에 점차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다가 1930년대 후반부터 다시 약간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 교수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1910년부터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까지 이른바 무단통치기에 일제강점기 사형 집행 인원의 51%인 60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 1920〜1936년의 문화통치기에 395명이 처형됐고, 민족말살기인 1937〜1945년에는 일제가 191명을 사형했다.

전 교수는 “1910년대에는 의병에 대한 사형 집행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일제가 3·1운동과 관련해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한 사례는 많지 않지만, 3·1운동 직후인 1923년까지는 적지 않은 사람이 처형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처형된 사람 수를 일본과 비교하면 일제가 조선에서 과도하게 형법을 적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1910〜1945년에 일본에서는 1천103명이 사형됐는데, 당시 인구는 일본이 조선보다 두세 배 정도 많았다”며 1912년에는 조선과 일본 사형 집행 인원이 각각 73명과 24명으로 큰 차이가 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제는 미개하고 낙후된 조선사회와 조선의 민족성을 고려할 때 강력한 사형 제도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면서도 “범죄 예방 효과와 범죄자 격리보다는 식민지배의 통제 강화 수단으로 사형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형수에 관한 정보가 담긴 ‘조선총독부관보’를 통해 죄명, 출신지, 사형 집행 소요 기간도 조사했다. 사형을 당한 사람의 죄명은 강도살인이 52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살인 356명, 방화 67명, 제령(制令, 조선총독 명령) 위반 37명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의병장이 강도살인의 죄명으로 사형된 사례를 보면 죄명만으로 일반범과 항일운동가의 구별은 쉽지 않다”고 했다.

사형수 출신지를 분석했을 때 평안도가 228명으로 가장 많은 데 대해서는 “이 지역 출신이 만주나 접경지대에서 독립군 단체에 가입해 무장투쟁을 전개한 결과일 확률이 높다”고 추정했다.

전 교수는 “1910〜1920년대에는 사형 집행 소요 기간이 55일 안팎이었으나, 이후 점차 길어져 1940년대에는 177일에 달했다”면서 “일제강점기 전체로는 사형 집행 소요 기간이 94일이었는데, 여러 요인을 판단하면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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