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총영사관 주도 ‘공립도서관 한국 도서 보급’ 사업…누굴 위한 사업이었나

한동만 전 총영사 부임 후 총영사관 주도로 시작돼
총영사 바뀌어도 계속된다던 사업 이제는 잊혀져
현 총영사관 담당영사 관련 사업 내용 전혀 몰라
취지 변하지 않았다면 사업 정상화 시켜 나가야

더블린 도서관의 한국 도서 섹션. 인도 도서들 사이로 200여 권이 채워져 있다. 인도 도서들 사이에 있어 한국 섹션이라고 부르기가 무색하다.
북가주 지역 공립도서관에 한국 도서 보급 사업이 시작된 것은 2014년부터다. 2013년 부임한 한동만 총영사가 총영사관 중점사업으로 한국 도서 보급 사업을 추진하면서 부터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은 “대부분의 도서관에 90년대 한국 도서와 자료들을 최근 자료들로 대체하기 위한 것”이라며 “주류사회와 한인 청소년들에게 한국 문화는 물론 독도, 동해 역사도 바로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바로 알리겠다는 취지다.

공립도서관 한국 섹션 개설은 한동만 총영사 부임후 1년 반이 흐른 2014년 10월 18일 첫 성과를 이뤘다. 한인들도 많이 거주하는 밀브레이 도서관에 한국 섹션이 마련된 것이다. 기존의 섹션을 확대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섹션을 개설한 것이라고 총영사관은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공립도서관에 한국 섹션 개설에 발맞춰 한국문화축제도 함께 개최됐다. 지역 학부모회 등 한인들이 대거 동원돼 행사가 개최됐다. 한국 전통 춤과 장단 등 다양한 무대가 마련됐고 한식과 한국 전통놀이 체험도 제공됐다. 북가주에 지역별로 한국 문화축제가 대대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것이 이 때 부터다.

총영사관의 대대적인 홍보와 한인들의 반응이 어울어지며 한국 도서 보급 사업은 확산일로로 접어들었다. 2015년에만 밀피타스, 살리나스, 플레즌튼 도서관에 한국 섹션이 마련됐다. 공식처럼 한국문화축제도 성대하게 열렸다. 살리나스에서는 몬소리 사물놀이패 공연과 삼고무, 태권도 시범, 비빔밥 시식 등 행사가 지역 한인들을 중심으로 개최됐고 플레즌튼, 더블린 지역은 트라이밸리 한인 학부모회(KPA)가 주축이 돼 한국문화축제를 개최했다.

당시 한동만 총영사는 “각 카운티별로 도서 기증 절차와 기준이 달라 한국 도서 보급에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도서 보급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한인 언론사 취재 기자들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쉽지 않지만 공립 도서관 보급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밀브레이 도서관 한국 섹션. 대부분 10년이 넘은 책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한동만 총영사의 이런 설명에도 당시 취재 기자들 사이에선 부정적 견해들이 터져 나왔다. 취지가 좋다고는 하나 과연 한국 도서 보급 사업이 한동만 총영사 이임 이후에도 계속 유지가 될 수 있을지, 한동만 총영사가 자신의 실적을 쌓기 위해 벌이는 이벤트성 사업은 아닌지 하는 견해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 문을 여는 도서관마다 기증되는 도서들은 수십권에서 백여권이 전부였고 일부에서는 그나마 한 두 달이 지나면 폐기되는 월간 잡지들이 도서관 책장을 채웠다. 뿐만 아니라 한국 섹션 개설에 발맞춰 이를 홍보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대부분 한인들이 동원됐다. 총영사관 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이런 상황속에서 총영사관이 무리하게 행사를 강행한다는 정황들이 포착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총영사관의 요구에 맞추느라 애를 먹었고 자원봉사자 동원과 부족한 예산도 문제가 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지역 행사에서는 영사 부인 등 가족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동만 총영사는 기자들의 이런 질문에 “이임 후에도 도서 보급 사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총영사가 바뀌더라도 사업은 계속된다는 설명이다. 총영사의 확답에 당시 관련업무를 맡았던 이용석 동포담당 영사도 “그렇다”고 답을 했다.

한동만 총영사의 이런 약속은 신재현 총영사가 부임한 뒤 어느정도 지켜지는 듯 보였다. 신 총영사 부임 후 더블린과 랜초 코도바 공립도서관에 한국 섹션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용석 영사 후임으로 부임한 이성도 영사도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한국 섹션을 마련한 것은 아니지만 2017년 12월 5일 팔로알토 미첼파크 도서관을 찾아 한국 도서를 기증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그 이후 한국 섹션이 새로 만들어진 곳은 없었고 개설된 도서관에 도서를 계속 지원하지도 않았다.

기자는 당시 한국 섹션이 개설됐던 도서관들을 다니며 지원이 계속 되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하지만 대답은 모두 같았다. 8~9년전 책을 지원받고 그 이후로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해당 도서관의 한국 도서 섹션을 둘러보니 10년이 훨씬 넘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 수십권에서 200여권 남짓이었고 그나마 밀브레이 도서관이 500여권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수천여권을 비치했다는 언론 보도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플레즌튼 공립도서관 한국 섹션.
플레즌튼 도서관에서 만난 사서 크리스 씨는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도서를 지원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최소 최근 5-6년 사이에는 도서 지원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 인도 도서들이 많이 늘어나 다른 언어 섹션을 축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더블린 도서관에서 만난 담당자는 관련 내용을 묻자 “한국 도서를 구입해야 하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고 우선 구입해야 할 책들이 많아 (한국 도서를)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명부터 늘어놨다. 한국 도서 기증이 필요하냐고 묻자 “도서를 기증해 준다면 감사하다”는 답변 했다.

다른 도서관들도 비슷한 설명이다. 10년 가까이 같은 책들이 책장을 지키고 있으니 자연스레 찾는 사람이 줄어들게 되고 도서 구입 순위도 낮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자가 둘러본 도서관 중 한국 관련 영상 자료를 가지고 있는 곳은 플레즌튼 도서관이 유일했다. 자료도 DVD 7개 정도가 전부였다. 한국과 관련한 최신 영상자료 등을 보급해 한국의 발전상을 알리겠다던 한동만 총영사의 약속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더 큰 문제는 총영사관이 주도해 공립도서관에 한국 도서를 보급해온 사실을 지금의 총영사관 담당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경태 문화담당 영사는 관련 내용을 묻는 질문에 “부임 이후 한국 도서 보급과 관련한 업무를 한 적이 없다”며 “한인 단체에서 요청이 있을 경우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지난해까지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윤홍선 영사의 답변도 비슷했다. 취재중 알게 된 사실로 지난해 새크라멘토 인근 랜초 코도바 공립도서관 한국 섹션에 도서를 지원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요청을 한 사람은 강현진 새크라멘토 한국학교 이사장이었다. 강 이사장은 “여러 차례 윤 영사에게 한국 도서 지원을 요청했고 방문을 해 달라고도 부탁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홍선 영사는 “도서관장과 전화통화를 했다”며 “외교부에 요청을 했고 그 사이 업무가 바뀌었다”고 해명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어떤 조치나 지원은 없었다.

두 영사들은 또한 과거 자료를 찾기 어렵고 인수인계 과정에서도 관련 사업은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당 사업들은 총영사관 홈페이지만 찾아봐도 금방 찾을 수 있다. 공관장 활동사항에 자세히 소개돼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동만 전 총영사의 대대적 홍보 덕분에 인터넷 검색창을 통해서도 많은 기사들을 찾을 수 있다.

총영사관에서 지역 한인이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요청을 하는데도 이를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기도 하다. 윤상수 총영사가 이런 내용들을 알고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올해 개최됐던 KPA주최 한국문화축제 모습. 베이뉴스랩 포토뱅크.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사라진 한국 문화 축제를 트라이밸리 한인학부모회(KPA)가 다시 재개했다는 점이다. 팬데믹이 누그러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리버모어 도서관에서 행사가 열렸다. 총영사관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지는 못했지만 회원들이 행사 취지에 공감해 행사를 개최하게 됐다는 것이다.

총영사관도 이를 거울삼아 과거 추진했던 한국 도서 보급 사업이 전임 총영사의 업적을 위한 것이 아닌 한인들을 위한 사업이 될 수 있도록 다시 정상화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총영사관이 나서 수많은 한인들을 동원해가며 사업을 추진하더니 총영사가 바뀌며 없던 일이 됐다는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도서를 공립도서관에 보급해 주류 사회와 한인 청소년들에게 한국의 역사, 문화를 바로 알리겠다는 그 취지가 너무 좋지 않나.


최정현 기자 / choi@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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