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가 완공되면 먼저 간 전우들 곁으로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다.”
존 스티븐스 한국전쟁기념재단(KWMF, Korean War Memorial Foundation) 사무총장이 지난 2015년 한국전 기념비가 세워지게 될 샌프란시스코 프리시디오 국립묘지 앞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 남겼던 말이다.
한국전 전쟁영웅으로 샌프란시스코 한국전 기념비 건립을 주도했던 존 스티븐스KWMF 사무총장이 지난 5월 25일 별세했다. 향년 100세. KWMF은 지난 8월 30일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뉴스레터를 1년 6개월만에 다시 발행하며 존 스티븐스 사무총장의 별세 소식을 알렸다.
존 스티븐스는 미 해병 1사단 제5해병대 1대대 에이블중대 중대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1950년 8월 낙동강 전투를 시작으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은 물론, 장진호 전투에도 참가했던 한국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인물이다. 한국전쟁 최악의 전투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에서는 동상으로 발가락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는 부대원들을 이끌고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고, 인천상륙작전에서는 제일 선봉에 섰다. 장진호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최전선에서 전투를 하다 보니 수많은 부하들을 먼저 떠나 보내야 했다. 낙동강 전투에 투입된 첫날에만 150여 명의 부하를 잃었다고 그는 회고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은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불려질 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한국전쟁이 휴전 된 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전쟁영웅’으로 칭송됐고 존경을 받았다. 이후 중령으로 예편한 그는 개인사업 등을 하다 은퇴를 했다.
존 스티븐스 한국전쟁기념재단(KWMF, Korean War Memorial Foundation) 사무총장이 지난 2015년 한국전 기념비가 세워지게 될 샌프란시스코 프리시디오 국립묘지 앞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 남겼던 말이다.
한국전 전쟁영웅으로 샌프란시스코 한국전 기념비 건립을 주도했던 존 스티븐스KWMF 사무총장이 지난 5월 25일 별세했다. 향년 100세. KWMF은 지난 8월 30일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뉴스레터를 1년 6개월만에 다시 발행하며 존 스티븐스 사무총장의 별세 소식을 알렸다.
존 스티븐스는 미 해병 1사단 제5해병대 1대대 에이블중대 중대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1950년 8월 낙동강 전투를 시작으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은 물론, 장진호 전투에도 참가했던 한국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웠던 인물이다. 한국전쟁 최악의 전투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에서는 동상으로 발가락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는 부대원들을 이끌고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고, 인천상륙작전에서는 제일 선봉에 섰다. 장진호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최전선에서 전투를 하다 보니 수많은 부하들을 먼저 떠나 보내야 했다. 낙동강 전투에 투입된 첫날에만 150여 명의 부하를 잃었다고 그는 회고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은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불려질 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한국전쟁이 휴전 된 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전쟁영웅’으로 칭송됐고 존경을 받았다. 이후 중령으로 예편한 그는 개인사업 등을 하다 은퇴를 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기념재단(KWMF) 설립의 단초가 된 ‘한국전 참전용사 사은 만찬’에 참석하면서부터 한국전 기념비 건립을 계획하게 됐다. 로리스 다이너 인터내셔널 김만종 대표가 사비를 털어 2004년부터 한국전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 표시로 매년 개최했던 ‘사은 만찬’에는 베이 지역은 물론 북가주에 거주하고 있던 한국전 참전 미 노병들이 참석을 했다. 존 스티븐스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한국전쟁의 영웅이었던 존 스티븐스는 사은 만찬에 참석하던 참전용사들의 구심점이 됐고, 사은 만찬 참석에만 그치지 말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자며 ‘한국전 기념비’ 건립을 계획했다. 이후 기념비를 세우기 위한 기금모금을 위해 한국전쟁기념재단(KWMF)도 설립했다. 재단의 회장은 대외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 출신의 피트 맥클로스키와 쿠엔틴 콥이 연이어 맡았지만 재단의 중심은 항상 존 스티븐스 사무총장이었다.
기념비 건립을 결정했지만 재단은 기금모금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 소식을 접한 북가주 지역 한인들과 총영사관은 적극 나서 기금모금을 도왔다. 한국 보훈처에서도 비용을 보탰다. 불가능 할 것 같았던 330만 달러가 마련됐고, 기념비가 세워질 수 있었다. 제막식은 2016년 8월 1일 샌프란시스코 프리시디오 국립묘지 앞에서 열렸다. 프리시디오 국립묘지는 한국전 참전용사 2273명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이다.
존 스티븐스 사무총장은 제막식에서 기자에게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전우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한국전 기림비를 세웠다고 나의 미안함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래도 작은 위안은 된다”고 말한 뒤 환하게 웃었다. 그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붉어졌고 이내 눈물이 고였다.
존 스티븐스 사무총장의 유해는 오는 11월 4일 워싱턴DC 인근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한국전쟁의 영웅이었던 존 스티븐스는 사은 만찬에 참석하던 참전용사들의 구심점이 됐고, 사은 만찬 참석에만 그치지 말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자며 ‘한국전 기념비’ 건립을 계획했다. 이후 기념비를 세우기 위한 기금모금을 위해 한국전쟁기념재단(KWMF)도 설립했다. 재단의 회장은 대외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 출신의 피트 맥클로스키와 쿠엔틴 콥이 연이어 맡았지만 재단의 중심은 항상 존 스티븐스 사무총장이었다.
기념비 건립을 결정했지만 재단은 기금모금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 소식을 접한 북가주 지역 한인들과 총영사관은 적극 나서 기금모금을 도왔다. 한국 보훈처에서도 비용을 보탰다. 불가능 할 것 같았던 330만 달러가 마련됐고, 기념비가 세워질 수 있었다. 제막식은 2016년 8월 1일 샌프란시스코 프리시디오 국립묘지 앞에서 열렸다. 프리시디오 국립묘지는 한국전 참전용사 2273명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이다.
존 스티븐스 사무총장은 제막식에서 기자에게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전우들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한국전 기림비를 세웠다고 나의 미안함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래도 작은 위안은 된다”고 말한 뒤 환하게 웃었다. 그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붉어졌고 이내 눈물이 고였다.
존 스티븐스 사무총장의 유해는 오는 11월 4일 워싱턴DC 인근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