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섬 주지사 애도…캘리포니아 조기 게양
미국 노동운동과 민권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돌로레스 우에르타가 28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우에르타의 가족은 이날 돌로레스 우에르타 재단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고인이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유족은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사생활을 존중해 달라고 요청하고,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추모 행사 계획은 추후 발표하겠다고 전했다.
우에르타는 세자르 차베스와 함께 미국 농장노동자연합(UFW)의 전신을 설립하고, 캘리포니아 농장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환경 개선을 이끈 인물이다. 특히 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의 ‘시 세 푸에데(Sí, se puede)’라는 구호를 만들어 미국 노동운동뿐 아니라 인권·여성·이민자 권익운동에도 깊은 영향을 남겼다.
1930년 4월 10일 뉴멕시코주 도슨에서 태어난 우에르타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 스톡턴으로 이주했다. 이후 교사로 일하며 가난한 농장 노동자 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목격했고, 교육 현장에서 벗어나 노동자들의 생활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조직 활동에 나섰다.
1962년 세자르 차베스와 함께 전국농장노동자협회(NFWA)를 설립한 우에르타는 이후 조직이 미국 농장노동자연합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65년 필리핀계 농장 노동자들이 시작한 델라노 포도 파업이 대규모 노동운동으로 확산하자 우에르타는 차베스와 함께 전국적인 포도 불매운동을 조직했다. 5년간 이어진 파업과 불매운동은 미국 농업 노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으며, 농장 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을 통해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우에르타는 노동조합의 조직 활동뿐 아니라 농장 경영주들과의 협상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농장 노동자들을 위한 의료보험과 복지 혜택을 확보하고, 실업 및 장애 관련 보호 제도를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활동은 1975년 캘리포니아 농업노동관계법 제정으로 이어진 노동운동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그의 활동은 농업 현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 이민자 권익 보호, 인종차별 철폐, 성평등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목소리를 냈다. 노동권과 민권을 분리할 수 없는 문제로 보고 사회적 약자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유권자 등록과 지역사회 조직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샌프란시스코 역시 우에르타의 투쟁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다. 198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지 H. W. 부시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방문에 맞춰 열린 시위 도중 경찰의 진압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갈비뼈 3개가 부러지고 비장이 손상되는 중상을 입어 수술과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당시 사건은 경찰의 집회 대응과 시위 참가자의 권리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우에르타는 회복 이후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고 여성과 소수계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2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돌로레스 우에르타 재단을 설립해 지역사회 조직화, 교육, 시민 참여와 정치적 권익 확대를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2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 민간인 훈장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다.
우에르타가 만들어 낸 ‘시 세 푸에데‘는 이후 여러 사회운동에서 사용됐으며,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 구호인 ‘예스 위 캔(Yes We Can)’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에르타는 90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집회와 강연, 선거 참여 독려 활동을 계속했다. 미국의 농장 노동자뿐 아니라 여성과 이민자, 소수계 커뮤니티의 권리를 지키는 데 평생을 바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에르타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캘리포니아 정치권에서도 애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개빈 뉴섬 주지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우에르타가 정의와 공정성을 향한 열정으로 캘리포니아와 미국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뉴섬 주지사는 우에르타가 노동자와 여성, 소수계의 권리를 위해 평생 헌신했다며 그의 정신이 다음 세대의 활동가들에게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지사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주 정부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샌프란시스코를 지역구로 둔 낸시 펠로시 전 연방하원의장도 성명을 발표하고 오랜 친구였던 우에르타의 별세를 애도했다. 펠로시는 우에르타가 용기와 결단력으로 노동운동을 이끌었으며, ‘시 세 푸에데‘라는 구호가 여러 세대의 미국인들에게 집단행동의 힘을 믿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밝혔다.
캐런 배스 로스앤젤레스 시장 역시 우에르타를 두려움 없이 시민권을 위해 싸운 지도자로 평가했다. 배스 시장은 우에르타가 90대에 이르기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며,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모을 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인물이라고 추모했다.
한편 우에르타는 올해 3월 과거 노동운동을 함께 이끌었던 세자르 차베스로부터 1960년대 성폭력을 당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노동운동의 성과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오랫동안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폭로는 미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차베스의 유산을 다시 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우에르타는 평생 노동 현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정치적 목소리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남긴 ‘시 세 푸에데‘라는 외침은 오늘날에도 미국 전역의 노동현장과 시민권 운동에서 사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