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남편은 아무 죄가 없으니

몇 년전 할매와 함께.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한 할배의 집에 들렀습니다. 뭘 하나 전해 주어야 했었는데 마침 할배집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었거든요. 미리 전화통화를 했기에 내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할배가 집 밖에서 기다리고 있더군요. 물건을 전해주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떠나오려는데 현관문이 빼꼼이 열리더니 부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사람 소리가 나니까 무슨일인가 싶어 나와봤나 봐요. 나랑 눈이 마주치자 얼른 문 뒤로 모습을 감추는 할배의 부인. 2,3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보고야 말았습니다. 땟국이 줄줄 흐르는 그녀 모습을. 사흘은 손질 안 한듯 제멋대로 뻗친 봉두난발의 그녀 모습을. 김치국물 자국인지 우유자국인지 치약을 흘렸는지 불그죽죽하고 허연 얼룩이 잔뜩 묻은 목 늘어진 스웨터에 무릎이 튀어나온 수면바지를 입은 그녀 모습을. 그때가 오후 세 시쯤. 오전에야 기상한 차림 그대로 집안에서 서성거릴 수 있다지만 대낮을 지나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에도 그런 칠칠맞은 차림새라니. 쯪쯪 혀를 차다가 나는 픽 웃었었습니다. 왜냐면 나 또한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얼마전만해도 할배 부인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었으니까요.

누차 말했지만 나는 집순이입니다. 여행을 싫어하고 늘 집안에만 있는. 집이 제일 좋은. 집이 좋은 이유중 하나는 내 맘대로 풀어져 있을 수 있으니까요. 직장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이 아침에 머리라도 빗고 옷이라도 갈아입었지만 집에 있을 때는 내 게으름이 극에 달합니다. 아침에 일어난 차림에 융으로 된 가운하나만 걸치고 하루종일 뒹굴뒹굴합니다. 물론 세수도 안 합니다. 머리 또한 안 빗지요. 손으로 쓸어서 곱창밴드로 대충 묶어요. 충치 생길까봐 양치는 겨우 하지만 그 차림새로 소파에 파묻혀 랩탑만 하루종일 붙들고 있는 거지요. 움직이는 게 귀찮습니다. 요의가 느껴져도 참다가 참다가 방광이 터질 지경이 되어야 어쩔 수없이 기어 갑니다. 요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물론 먹는 것도 귀찮아요. 언젠가 한 번은 배는 고픈데 차 트렁크에 실린 라면을 가지러 가기 싫어서 하루종일 쫄쫄 굶은 적도 있어요.

그러고 있는데 지인한테서 전화가 올 때가 있습니다. 커피 마시러 가자고. 밥 먹으러 가자고. 나가려면 나랑 한몸이 되다시피한 따뜻한 가운을 벗어내고 옷을 갈아입고 치장을 해야합니다. 끔찍합니다. 그래서 거절. 남편이 가게에 살 게 있다고 같이 나가자고 권유해도 거절. 물론 옷갈아 입고 치장하는 게 싫어서. 처음에 미국왔을 때 공공장소를 파자마차림에 산발한 모습으로 나다니는 미국인들을 보고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 꼴로 나다닐 용기는 없고.

이 게으름에서 나를 건져준 것은 이웃에 사는 할 할매입니다. 올해 여든에 들어가는 할매. 그녀를 만난지가 7.8년 쯤 되었는데 첫 인상이 참 깔끔하고 예쁘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자님들은 믿기 않겠지만 칠십 먹은 할머니도 예쁠 수 있답니다. 꾸미기에 따라서요. 언제봐도 그 할매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장(盛粧)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 없어요. 미용실에서 갓 나온 듯한 머리모양에다 늘 신부화장을 하고 있어요. 분을 잘 바른 얼굴에 분홍색 립스틱과 아이샤도우, 마스카라까지요. 귀에는 귀걸이가 빛나고 있고 팔찌, 반지, 목걸이까지 완벽하게 걸고 차고 있습니다. 옷차림도 엄청 신경쓰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서 내가 놀라 자빠질 뻔 했다는 것 아닙니까. 겨울인 지금은 무릎까지 오는 부츠에 가죽조끼에 베레모까지 쓰고 다닙니다. 한 달에 두 번은 반드시 네일 샵에 가서 손발톱을 핑크색으로 칠하고 일 주일에 한 번씩 얼굴 마사지도 한다는데 그래서인지 항상 피부가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그 할매를 볼 때마다 나는 감탄을 했습니다. 참 부지런하구나. 외모 꾸미는 정성도 타고나야 하는구나. 그러면서도 큰 자극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한번도 그 할매를 따라해보려는 생각 물론 없었고요. 왜냐면 ‘꾸미는 일’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므로.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지 않듯이 나같이 외모가 형편없는 사람은 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러던 어느날 할매가 갓부친 부침개를 들고 우리집에 놀러왔습니다. 늘 그랬듯 산발한 머리에 가운차림인 나를 보더니 할매가 한숨을 푹 쉽니다. 그러더니 말했어요. 깨끗이 정돈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나에 대한 예의이자 남편에 대한 예의야. 이렇듯 헝클어진 아내 모습을 매일 봐야하는 남편은 무슨 죄야?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맞아요. 내 남편은 무슨 죄랍니까. 우리집 강아지도 잘 차려입은 사람만 좋아하던데.

작년에 만난 한 여성, 예순 다섯입니다. 위에 쓴 할매처럼 이 여성 역시 여자는 예순이 넘어서도 예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집이 가까운지라 자주 놀러가는데 항상 완벽한 차림새입니다. 금방이라도 외출할 수 있을 만큼 고운 화장에 멋진 머리 세팅에 단정한 옷매무새. 가끔 교회가다가 들러서 방금 집에서 만든 김밥이라든가 팥죽을 주고 가는데 그녀의 차림새를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예순이 넘어도 꾸미니까 여자스럽구나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은퇴해서 출근할 일이 없지만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옷부터 갈아입습니다. 그리고 양치하고 세수하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서 묶습니다. 향수도 한 방울 목 뒤에 바릅니다. 할매 말을 따르기로 했거든요. 푹 퍼진 채로 있을 땐 화장실에 가도 일부러 거울을 외면했습니다. 거울에 비친 귀신같은 내 모습을 보고 헉, 하고 뒷걸음치게 될까봐. 우울증이 도질까봐. 요즘은 마음놓고 거울을 봅니다. 늙고 못생긴 모습이지만 깔끔하니까 나름 봐줄만 해요. 맞습니다. 남편을 위해서 치장하라는 말이 맞습니다. 남편은 아무 죄가 없으니까.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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