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또 병신짓을 했습니다

제목이 과격합니다. ‘바보짓’이라고 붙일 수도 있었지만 자책의 의미로 과격한 제목을 붙여봤습니다. 내가 저지른 짓이 너무나 통탄할 만큼 어리석고 병신 같아서요. 나는 지금 한국에 있습니다. 계획 대로라면 지난 추석 무렵에 와 있었어야 했는데 내가 저지른 ‘병신짓’때문에 차질이 생겼어요. 내가 어떻게 병신짓을 했는지 좀 들어 보실래요.

지지난 달, 그러니까 8월 초. 동생으로부터 문자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일본을 바로 잡는 책을 쓰겠다는 야심 찬 계획으로 쉰의 나이에 일본에 유학가 있는 동생이요. 추석을 기해서 한국에 나가려는데 누나도 올 수 있냐고. 싫다고 대답했다가 금방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미국 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나는 한 번도 명절을 기해 한국에 나가본 적 없습니다. 나라가 통째로 뒤집어지는 듯한 명절 전후의 혼잡과 어수선함이 싫어서요. 그런데 앞으로 내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어요. 그 혼잡과 어수선을 한번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어요. 올케들과 차례 준비도 같이 하고, 엄마 아버지 산소도 같이 가보고요. 그래서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한국행을 계획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전거타는 일을 중단한 일이었습니다. 땡볕에 늘 노출되어 자전거를 탔기에 온 몸이 새카맣게 탔었거든요. 여기서야 햇볕에 거을린 피부를 건강과 활력의 상징으로 쳐주지만 한국이야 어디 그렇습니까. 오랜만에 동생들과 친구들을 만나는데 아프리카 토인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야외에서 자전거 타는 일을 그만두고 실내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스쿼트랑 런지도 하고. 아령운동도 하고.

실내에서 운동하면 엄청 더워요. 온몸이 땀으로 젖습니다. 운동하는 도중에, 끝나고 땀을 식히기 위해서 에어컨 바람 밑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그러면 땀이 금방 마르거든요. 그 짓을 한달 넘어했습니다. 어느날, 그날도 땀을 흠뻑 흘린 후 에어컨 바람을 맞았는데 이상하게 온몸에서 소름이 돋으면서 춥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 다음날도 같은 짓을 또 했습니다. 또 춥습니다. 할 수 없이 스웨터를 꺼내 입었는데 한기가 가시지 않습니다. 그러더니 그날 밤부터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데 아랫니 윗니가 마주칠 정도입니다. 딱딱딱 소리가 날 정도입니다. 아뿔사! 바람이 또 들었구나! 몇 년전 같은 증세를 야기해 그렇게 고생을 했건만 내가 또 병신짓을 하고 만 것입니다.

이번처럼 가을의 초입으로 들어가던 어느날, 부엌에 서 있는데 짧은 치마밑으로 한기가 쑥 들어오는 것 같더니 얼음물에 들어가 있는 듯한 증상이 왔어요. 몸이 찬 데 늘 찬 음식, 청량음료 등을 달고 살았는데 갱년기랑 겹쳐 몸에 바람이 든 겁니다. 한약도 먹어보고 침도 맞아보고 별짓을 다해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몸을 덥게 하는 데는 섭생이 중요하다는 정보를 우연히 접하고나서 음식을 바꾸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찬 기운이 있는 음식은 멀리하고 성질이 뜨겁다는 생강, 인삼, 계피, 두리안, 마늘을 아침저녁으로 장복했어요. 그러기를 몇 달, 몸 전체에 차있던 냉기가 점차 물러가고 몸이 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식품점의 오픈 냉장고 앞만 지나가도 걸리던 감기도 안 걸리고 한여름에도 스웨터를 입을 정도였었는데 어깨끈만 달린 탱크톱만 입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된 겁니다.

그렇게 몇년 동안 몸에 별 이상이 없었기에 나는 또 방심한 것입니다. 몸에 냉기를 또 넣고 만 것입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운동하면서 몸에 열이 오르고 땀이 나면서 온몸의 땀구멍이 활짝 열렸을 거 아닙니까. 그 열린 땀구멍으로 에어컨 찬바람을 마구 불어넣었으니 어떠했겠어요? 그렇잖아도 원기가 부족한 편인데. 몸이 찬 기운을 받아 탈이 나고 만 것입니다.

내가 편식이 말도 못하게 심합니다. 어릴 때 지지리도 못 먹고 못 살았는데도 입맛이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모양이 이상하고 냄새가 이상하고 맛이 이상한 것은 입에도 안 댑니다. 갈비탕, 감자탕같은 탕 종류는 아예 맛도 안 보고요. 나물도 안 좋아하고 찌개도 안 좋아하고 만두도 안 좋아하고 하다 못해 두부 같은 것도 찌개나 국에 들어간 것은 건드리지도 않습니다. 오직 부친 것만. 그러면 뭘 좋아하냐. 라면요. 아침저녁으로 라면만 먹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가려대고 잘 안 먹으니 영양분이 늘 모자랍니다. 어떤 땐 귀에서 위잉 소리가 날 때도 있었습니다. 운동은 늘 땀흘릴 정도로 하면서 잘 먹지는 않지, 예민해서 늘 불안한 상태에 있지, 최근에 좀 나아졌다 하나 늘상 불면에 시달리지. 거기다 찬바람을 맞았으니 탈이 안 나는 게 이상하지요.

이렇게 몸에 바람이 든 증상은요. 병원에를 가봐도 소용없습니다. 의사들은 채혈, 채뇨에서 나온 수치만으로 진단을 하잖아요. 갑상선에 문제가 생기면 추위를 탈 수도 있답니다. 그러나 검사결과, 모든 게 정상. 그렇지만 나는 고통스러워 죽을 지경입니다. 등에 큰 얼음덩어리를 지고 있는 기분입니다. 위에도 말했지만 한겨울에 얼음물 계곡에 들어가 앉은 기분입니다. 전기장판에 이불을 몇겹으로 덮고 누워있어도 추위는 가시지 않은데 겉은 더워서 땀으로 목욕을 합니다. 냉장고에서 맥주병을 꺼내 놓으면 겉에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히는 이치와 같습니다. 속은 찬데 겉은 더우니. 또한 하루에도 몇 번씩 식은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쫘악 납니다. 원기가 부족할 때 생기는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어째요. 다시 몸을 보호하는 섭생을 해야지요. 몸에 들어온 냉기를 몰아내야지요. 한국가게에서 팩에 든 곰탕을 잔뜩 샀습니다. 역한 냄새가 비위를 상하게 했지만 밥을 말아서(위에도 썼지만 내가 국물종류를 안 좋아합니다. 더구나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행위는 아이고, 생각만 해도 싫습니다만 급하니까 이것저것 안 가리게 됩디다)약이라고 생각하고 아침 저녁으로 먹었습니다. 지인들이 날라다 준 생강차, 쌍화차도 계속 마셨습니다. 양념으로 쓰려고 갈아서 얼려놓은 마늘에 꿀을 넣어서 코를 잡고 마셨습니다. 작년 봄, 한국나갔을 때 동생이 사준 홍삼 엑기스도 먹었습니다. 주위에 나누어주고 네 통이 남았는데 그동안 건드려보지도 않았던 홍삼이었습니다. ‘두리안’ 가루도 먹었습니다. 열대과일인 두리안이 ‘속의 열’을 생성시켜 준다고 하길래요. 지난번 같은 증세로 고생했을 무렵에는 나랑 친한 할배가 중국가게로부터 두리안을 사다 주었습니다만 그 할배가 요즘 내게 두리안을 사다 줄 상황이 못 됩니다. 그래서 꿩대신 닭이라고 아마존에서 두리안 가루를 샀습니다. 이게 엄청 비싸요. 3온스에 15불. 예닐곱 숟가락 먹으면 금방 봉지가 빕니다. 없는 살림에 과용해서 열 봉지를 더 샀습니다.

두꺼운 스웨터에 털양말, 그리고 목에는 스카프를 칭칭 동여맨 차림으로 뜨거운 음료가 담긴 머그컵을 한몸해서 거의 한 달을 살았습니다. 폭염이 캘리포니아를 강타했을 때였습니다. 매일 백도가 넘을 때. 기온이 117도를 기록할 때도요, 집안에 에어컨이 24시간 돌아간다고 해도 한여름에 무슨 짓입니까. 그렇지만 나는 감수해야 했습니다. 내가 저지른 ‘병신짓’의 댓가를 치루어야했으니까요.

한국에 와서 몸보신을 위해 ‘흑염소’를 먹고 있습니다. 빠진 진액을 보충하는데는 흑염소가 최고라고 해서요. 염소 잡는 값 포함, 백만원이 들었으니 빠트리지 말고 주의 기울여 먹어요 라고 동생이 당부했습니다. ‘염소 잡는 값’이란 말은 안 들었으면 좋았을 걸. 나로 인해 한 염소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미안하던지요. 내가 병신짓만 안 했어도 지금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을 염소…

후회와 통탄과 자책으로 보낸 지난 한 달이었지만 뜻밖에 얻은 다른 결과물도 있습니다. 바로 주위 사람들의 나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가만있지 않더군요. 한 지인은 재정이 넉넉치 않으면서도 비싼 홍삼엑기스를 사다 주었고요. 한 지인은 인스턴트 생강차, 쌍화차를 갖다 준 것도 모자라 집에서 직접 꿀 넣고 갈은 생강을, 또 다른 지인은 꿀에 잰 마늘을, 또 다른 지인은 매운 음식이 몸의 열을 돋운다면서 짬뽕을 해다 주었습니다.

뒤늦에 내가 아팠다는 소식을 들은 세종식당 주인 조영순 씨는 ‘흑염소탕’을 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눈물이 핑 돌더군요. 병신짓으로 한동안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내가 그동안 헛살지는 않았구나하는 생각에 나오는 감격의 눈물이었습니다.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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