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덮어놓고 잘난 척 하다가

지난 주 아주 무더운 날 저녁, 한 지인이 놀러 왔습니다. 남편의 친구라는, 한국에서 온 부부를 동행했어요. 교환교수로 미국에서 잠시 지낼 때 영주권을 획득하긴 했지만 그동안 한국에서만 쭉 살았다는 부부였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 교육문제도 있고 노후를 보내기엔 아무래도 미국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답니다. 그래서 이 지역의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요. 지인이 말했어요. 여기저기에 나온 매물들을 둘러보고 새로 짓는 주택단지의 모델 하우스도 구경하는 중에 있지만 우리집을 보여주고 싶어서 데리고 왔다고. 자기가 자랑을 많이 했답니다. 모델 하우스 뺨치는 집이라고요. 너무 간소하고 깨끗해서 ‘절간’ 같은 느낌이 나는 집이라고요.

생전 칭찬을 안 하는 지인이 ‘모델 하우스 뺨치는 집’이라고 우리집을 소개했다기에 기분이 좋아서 나는 흐흐흐 웃었습니다. 칭찬은 안 하지만 보는 눈은 있구나 하고.

에에, 맞아요. 우리집에 와본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합니다. 사람이 안 사는 모델 하우스같다고요. 호텔 로비같다고요. 빈틈없이 너무 각이 딱딱 맞아서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한국집을 다녀봤지만 벽에 달력이 안 걸린, 그리고 밥통이나 커피 메이커 등 가전제품이 부엌 카운터에 올려져 있지 않는 유일한 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잡다한 살림살이, 그러니까 사람이 살면서 필요로하는 생활도구나 집기나 가전제품이나 기타 잡동사니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자랑할 거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나지만 물질이 흔해 넘쳐나는 요즘,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것만 놓고 산다는 것 하나는 내세울만 합니다. 무소유를 추구하는 것은 아닌데, 미니멀 주의자는 아닌데, 나는 어릴 때부터 뭐가 어수선하게 많은 게 싫었습니다. 쌓여있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없으면 없는대로 살았습니다.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안 사고요(에어 프라이기가 삶의 질을 바꿔준다면서 주위에서 엄청 꼬셔도 절대 안 삽니다).부득이하게 뭘 하나 사게 되면 집에 있는 기존의 것을 없애면서요. 가구와 액자, 그리고 인테리어 소품도 한 가지색으로 통일하고 ‘여백의 미’를 추구하면서 구석구석을 휑하니 비워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안 사는 집’ 같다는 느낌이 드나 봅니다. 모델 하우스가, 호텔 로비가 깨끗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살림살이들이 없어서 아니겠습니까.

지인은 저녁을 안 먹었다며 피자 한 판을 사들고 부부와 같이 나타났습니다. 부부는 내 나이 또래. 첫눈에 보기에도 험한 일을 하지 않고 평생 살아온 사람들 같았어요. 둘다 피부가 곱고 하얗고 귀티가 났거든요. 다만 한국에서 온 사람치고 옷이 평범하다 생각했더니(한국에서 온 사람들의 옷은 금방 표가 나더군요. 디테일이 많아서요. 레이스, 반짝이, 단추, 자수, 영어 문구 등이 꼭 있어요. 하다못해 주머니도 많고)한국에서 가져 온 옷이 미국과는 안 맞는 것 같아 ‘코스코’에서 사입은 거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와아, 집 너무 좋네요!’하고 탄성을 올렸습니다. 나 역시 표현을 잘 하고 반응을 잘 보이는 사람인지라 여자가 금방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기가 안방, 여기가 컴퓨터 방, 방문을 열어보일 때마다 여성은 연신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너무너무 멋지다고. 너무너무 깨끗하다고. 너무너무 정돈이 잘 되었다고.

그녀의 칭찬에 나는 한껏 고무되었어요. 여지껏 우리집을 드나든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이 여성처럼 우리집 인테리어와 청소상태에 관심과 흥미를 보이는 사람은 없었거든요. 흥미와 관심은 커녕 쓰다 달다, 말도 없이 무덤덤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 여자의 반응이 고맙고 반가울밖에. 또한 나는 누가 잘한다잘한다 하면 진짜 잘하는 줄 알고 더 신바람이 나는 사람입니다. 인테리어 하나, 소품 하나를 사고 구하기까지의 사연을 침을 튀기며 일일이 설명했습니다. 여자의 칭찬과 탄성과 환호에 한껏 취한 거지요. 콧대가 산처럼 올라갔고 어깨 또한 마냥 으쓱했습니다. 이때, 나는 그만 자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위에도 얘기 했다시피 오랜만에 듣는 칭찬에 한껏 젖은 나는 급기야는 ‘만약 이 지역에 집을 사게 되면 인테리어를 도와 주겠다’는 말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내 딴에는 호의를 베푼 거지요. 자만에 잔뜩 빠져서 말이지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야 할 일이 곧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집 구경을 마치고 지인이 가져온 피자를 먹는 자리. 여자가 피자를 먹다말고 전화기를 꺼내는 것 같더니 뭔가를 마구 찾습니다. 그러더니 내게 전화기를 내밉니다. 서울에 있는 자기 집, 그리고 부산에 있는 자기 세컨드 집이랍니다. 엄마야!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나는 뒤로 넘어갈 뻔했습니다. 세상에, 이건 완전히 잡지에 나올 법한 집입니다. 100평이 넘는다는, 복층으로 된 그녀의 아파트는(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가끔 한국 아파트를 구경하는데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제일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천정이 낮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호화찬란하게 꾸며놔도 ‘태’가 잘 안 나는 집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이층으로 막힘없이 뻥 뚫렸어요.)그야말로 번쩍번쩍 빛이 납니다. 화려하고 세련되고 우아하고 근사하고 멋짐, 그 자체였어요. 가구며 소파며 장식재 마감이며 전자제품들이 모두 수입품이랍니다. 이태리제. 그래서 그런지 고급스러움이 사진으로도 그대로 보여요. 벽에 걸린 그림이며 집안 곳곳에 놓인 장식품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었고요. 돈으로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부산에 있다는 그녀의 세컨 하우스 역시 돈 냄새가 물씬 풍기는 넓은 아파트였는데 대형 통창으로 바닷가에 줄지어 선박된 어선들이 그대로 보여요. 밤에 찍은 사진이었는데 어선들에서 밝힌 불빛과 까만 밤하늘이 어우려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내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자 옆에서 지인이 거듭니다. 그렇게 멋지고 비싼 집이 예닐곱 채나 된다고. 월세만 해도 수천만원이라고.

세상에,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도 유분수지, 귀신 앞에서 머리를 풀어도 유분수지, 몇 천억 재산가 앞에서 꼴랑 백만불도 안 되는 집 자랑이라니! 집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가구와 소품은 견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집 가구값을 다 합친다해도 이 여성이 가지고 있는 한 집의 소파 가격에도 못미치니까요. 나는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무안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또 있었습니다. 들어오면서 부엌 카운터에 아무렇게나 던져 두었던 헝겊 주머니를 여자가 가져와서 보여주었는데요. 어디가서 5불 정도에 산 싸구려 ‘에코백’인가 했더니 그 유명한 일본의 이세이 미야케 (ISSEY MIYAKE)제품, 몇 십만원짜리랍니다. 우리나라 최고 재벌의 아내가 입어서 유명해졌다는. 그녀가 말합니다. 한국에서 웬만큼 산다하는 여성들은 이세이 미야케정도는 손쉽게 사입는다고. 자기도 딸이 사준 것도 있고 이 브랜드 옷이 많다고. 그러면서 말합니다. 미국으로 이주를 위해 짐을 정리했는데 자기 옷장 정리에만 남편이랑 둘이서 사흘이나 걸렸다고요. 사흘이나 걸려야 할 정도로 많은 옷장 정리라니. 사흘은 커녕 세 시간도 안 걸릴 단촐한 옷장을 가지고 있는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덮어놓고 잘난 척 하지 말것. 누가 칭찬 좀 해 준다고 기고만장하지 말것. 나설 때 안 나설 때 제발 좀 가릴 것.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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