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미국이 의료 후진국이라고?

지지난 회에서도 말했듯이 지난번 한국 방문은 보름 동안이었어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빠듯했던 일정과는 달리 보름이란 긴 시간이 주어지자 일단 마음부터 느긋해지더군요. 그래서 미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몇 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문자만 주고받던 남자 동창과의 만남, 부산 친구와 일박, 대구 친구와 일박, 그리고 치과 방문. 한국치과 기술이 대단히 뛰어날 뿐만 아니라 미국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가격도 저렴하고 신속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말이지요.

그동안 한국을 그렇게 자주 다녔지만 치과를 찾아가 볼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위에도 썼지만 시간도 모자랐고 그동안은 남편 직장에서, 내 직장에서 제공하는 치과보험이 두 개나 되었으니 굳이 한국에서까지 치과를 찾을 필요성을 못 느꼈거든요. 이제 직장 은퇴해서 내 치과보험도 없어졌기에 치료비를 조금이나마 아껴보려고 치과 방문을 계획에 넣은 겁니다.

올케의 추천을 받아 간 곳은 그 고장에서 가장 진료를 잘한다는 곳이었습니다. 환자가 늘 터져나가서 얼마 전에 더 큰 건물을 마련했다는. 아닌 게 아니라 화려한 실내와 으리으리한 설비를 자랑하더군요. 접수받는 직원만 다섯 명. 이렇게 최신식 설비를 갖춘 곳이면 최상의 진료를 잘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와 면담한 후 나는 곧 실망해야 했습니다. 의사는 내 치아 엑스레이를 대충 한 번 쓱 훑어보는 것 같더니 ‘보험이 없다고요? 자세한 이야기는 실장과 하세요’란 말을 남기고 나가버렸습니다. 방을 나간 의사 뒤를 이어 들어온 실장이란 중년 남자는 단도직업적으로 물었습니다. 보험이 없으므로 치료비가 상당하게 나올 텐데 그래도 진행할 거냐고요. 치료비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어쨌거나 미국보다는 쌀 거니까)대답하자 실장이 말했어요. 내가 치료하기를 원하는 치아 두 개 중 한 개는 신경까지 손 본 후 크라운을 해야 하며 그 기간을 한 달 정도로 예상한다고. 치료비는 120만 원 선불이며 치료를 위해 방문할 때마다 얼마씩을 더 내야 한다고. 정확한 금액을 말하지 않고 그냥 ‘얼마씩 더’라고 얼버무렸습니다.

120만원이면 이곳 미국 치과의 반의 반도 안 되는 금액입니다. 두개의 보험을 가지고도 한번 방문 때마다 천불 가까이 돈을 부담해야했던 나였습니다. 문제는 기간입니다. 한 달이라는 기간. 일 주일만에는 안 되냐고 했더니 그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어요. 나는 힘 없이 돌아나와야했습니다. 엑스레이비 3만 5천원만 지불하고.

저녁에 올케에게 말했더니 ‘한 달이 걸린다더라’란 부분보다 120만 원이란 가격만 가지고 대뜸 ‘바가지’라고(바가지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들었습니다)펄펄 뛰었습니다. 최고 좋은 임플란트를 해도 120만 원은 안 될 거라고. 그러면서 다른 치과를 추천해 줍니다. 나는 손을 내저었습니다. 다른 데 가봐도 비슷한 가격과 비슷한 기간을 제시할 게 뻔할 것 같아서요. 장터마다 돌아다니는 약장수도 아니고 치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일 텐데 환자를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20년 째 다니는 단골 치과에 갔습니다. 치아 두 개를 크라운 했지요. 얼마 들었냐고요? 얼마 걸렸나고요? 남편 치과보험에서 일부분 내 주고도 내 부담 금액만 2500불. 그런데요. 중요한 것은 신경치료가 필요치 않았다는(내가 몇 번이고 물어봤어요. 신경치료는 필요없냐고. 의사 대답은 노)겁니다. 두 번 방문도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치아 부분 본 뜨고 그 자리에서 크라운을 만들어 끼워주더군요. 서너시간만에 깨끗하고 튼튼하고 새하얀 치아를 가지고 병원문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바가지를 씌우려 했던 게 맞았습니다. 보험이 없다는 말에 외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알고 그랬겠지요. 외국에서 온 사람이면 그렇게 멋대로 마음대로 속여도 되는 건지.

지난달, 갑자기 생긴 어지러움증으로 응급실에 갔었어요. 응급실을 방문한 건 20여년 전, 미니 뇌졸중 이후 처음인데요, 예나 지금이나 응급실은 정신없습니다. 소란스럽고 분주합니다. 어지러워서 눈도 못 뜨고 있는 나는 환자도 아니에요. 독충에 물린 남자와 고열로 헛소리를 하는 아이와 금방 아이가 나올 것 같다며 악을 쓰는 산모와 지금 빨리 손을 써주지 않으면 쇼크로 죽을 거라고 울부짖는 담석환자들 틈에서 나는 마냥 기다려야 했지요. 도착한 순서가 아니라 위중, 경중을 따져 환자를 봐주니까요. 대기실에서만 서너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면서도 마음은 편했습니다. 미국 의료 시스템과 의료진에 대한 믿음이 있었거든요. 더디지만, 좀 허술해 보이지만, 어수선하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일단 내 차례가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고 정확하고 철저하고 안전하고 친절하게 나를 보살펴 줄 것이라는 믿음이요.

아닌 게 아니라 일단 내 차례가 오자 속전속결, 일사천리입니다. 문진, 심전도 검사부터 시작해서 CT, MRI도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해서 그 자리에서 찍고 결과도 금방 나옵니다. 채혈, 채뇨에 대한 결과도 몇 십분 걸리지 않습니다. 모든 결과를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업데이트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코비드 때문에 보호자 입회 허용이 안 되어 집에서 내 검사결과를 확인해 보던 남편이 깜짝 놀라요. 피 한 대롱을 가지고 그렇게 수십가지 검사를 하는 줄 몰랐다고.

의사와 간호원들, 병원 종사자들은 모두 내 피붙이같이 다정하고 친절합니다. 어지러워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위해 간호원이 휠체어를 밀어 화장실 안에까지 데려다 줍니다. 용변을 마치고 안에 있는 벨을 누르자 지체없이 간호원이 다시 들어와서 휠체어에 앉는 걸 도와 줍니다. 퇴원할 때도 휠체어를 태워서 차에까지 데려다 주고 내가 남편 차에 무사하고 안전하게 잘 타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집에 돌아온 며칠동안은 의사의 메세지가 줄줄이 도착합니다. 모두 나의 안위를 묻는 메세지입니다. 정말이지 황송할 지경입니다.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의료 후진국 미국이라고. 미국의 의료기술과 진행법과 가격과 혜택이 한국보다 많이 뒤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예, 그런 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의사 한 번 보려면 세월아네월아 속터져 죽습니다. 오다가다가 간판만 보고 들어가서 앉은 자리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한국의 접근성과 비교하면 정말로 퇴보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단순하고 빠르다고, 예약없이 쉽고 편하게 의사를 볼 수 있다고 한국이 미국보다 더 낫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른 것도 아니고 내 건강과 목숨이 걸린 일인데 어떻게 가게 가서 빵 하나 사듯 쉬울 수 있나요. 절차라는 게 있는 데 말입니다. 한국은 ‘빨리’와 ‘쉽게’만 강조되고 안전에 관한 절차가 무시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성형수술 잘못해서 무당이 된 내 친구 이야기는 내 칼럼을 애독하는 독자님들이라면 다 알 것입니다. 그 친구의 수술은 절차가 무시되고 빨리와 쉽게만으로 진행된 가장 좋은 예입니다.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어떻게 코를 높이고 눈을 찢는 수술을 제대로 된 상담도 없이(피노키오같이 코만 높여놓으면 전체적인 얼굴 균형이 안 맞을 거라는 조언만 의사가 제대로 해주었더라도 친구는 다시 생각을 해봤을거라고 해요. 수술한 후 기대를 걸고 붕대를 풀었는데 코만 디립다 태산같이 높으니 너무너무 괴상한 얼굴이 되어버렸답니다. 친구가 실망하자 의사가 그러더래요. 눈을 크게 하면 좀 괜찮을 거라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눈을 했답니다) 검사도 없이, 아무런 법적 보호도 없이, 안전수칙도 없이 사탕 하나 까먹는 것처럼 후다닥 해치우냐는 겁니다. 친구는 말했어요. 버스정류장에 서 있다가 ‘성형외과’라는 병원 간판만 보고 올라가서 그날로 그 자리에서 크레디트 카드로 수술비를 지불하고는 바로 수술을 했다고. 단 몇 시간만에.

작년 가을, 여기 한 지인이 동네 성형외과에서 눈밑의 지방을 빼고 엉덩이 지방을 볼에 집어넣는 시술을 했습니다. 수술이 아니고 시술입니다만 지인은 이 시술을 위해 병원에를 자그마치 네 번이나 방문해야 했다고 합니다. 상담은 기본이요, 알레르기 검사에다 쇠붙이 반응에 대한 검사 등을 받느라. 그리고 수십 페이지의 서류에다 사인을 했다고 해요. 시술하기까지 한 달이나 걸렸고요. 시술을 마치고도 두 번이나 더 병원에 갔었답니다. 이상반응이 없는지 확인을 위해서요. 그리고 1 년 후 파이널 방문을 해야 한답니다. 끝까지 책임 지는 자세를 보이는 미국병원입니다.

일회용 주사기나 기타 다른 의료용품을 재사용한 탓에 환자가 2차 감염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는 데는 한국입니다. 의사가 아닌 제 3자가, 그러니까 마취나 수술에 대한 전문지식과 면허가 없는 사람이 대리수술을 하다가 적발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는 데도 한국입니다. 대형 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는데도 수술 가능한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가 결국 사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나는 데도 한국입니다.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성형수술을 받은 환자의 눈이 제대로 감기지 않고 피부 괴사가 일어나는 등 부작용으로 고생하지만 집도한 의사는 나 몰라라 하는 데도 한국입니다. 의사는 그냥 처음에 얼굴만 한 번 비추어줄 뿐 나머지 상담은 모두 실장과 해야 하는 데도 한국입니다. 미국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변칙에 의한 의료사고가 번번하게 일어나지만 시정과 개선이 잘 안 되고 있는 데도 한국입니다. 의사 한 사람이 하루에 봐야 하는 환자가 백 명이 넘기에 한 환자에게 할당된 시간이 5분 내외라는 기사가 나오는 데도 한국입니다.

미국은 적어도 의사들이 시간에 구애받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성의를 다해 면담을 해주거든요. 시간에 쫒기지 않고 의사가 주의 기울여 환자 말을 경청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단 마음이 편해지는 미국병원입니다. 의료후진국 소리를 들을 지언정 반드시 정해진 절차와 수칙과 규칙에 의해 운영되는 미국병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변칙이 통용되지 않는 미국병원입니다. 그래서 나는 미국 의료 시스템을 믿습니다. 미국을 믿습니다.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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