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한국에는 안 씻어서 문제, 여기는 너무 씻어대서 문제

지난 가을 한국 방문했을 때. 큰동생의 권유로 ‘영양주사’를 맞으러 간 적 있습니다. 동생집과 아주 가까운 이비인후과. 오픈시간에 맞추어 갔는데도 내 앞으로 벌써 예닐곱명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30여분을 기다려 의사와 잠깐 면담을 마치고 간호사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나는 아연실색해야 했습니다. 정식 병실도 아니고 약품상자랑 약병이랑 병소독제랑 화장지같은 병원물품이 가득 벽 하나를 메우고 있는 창고같은 곳인데요. 거기 놓여있는 침대 위의 이불을 보고 놀란 것이지요. 하얀 시트가 아닙니다. 난장에서 몇 천원에 팔 것 같은 싸구려 나일론 이불이었어요. 이불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더러운 그 물체가 침대 구석에 꾸깃꾸깃 뭉쳐진 상태로 있었습니다. 몇 년은 안 빨았았는지 때와 얼룩에 절은 얼룩덜룩한 꽃무늬가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지경입니다. 바닥에 깔려 있는 파란색 체크 무늬의 요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누웠던 형태대로 누런 자국이 나 있습니다. 또한 수백명은 누웠을 것같은 베개는 머리 닿는 부분이 시커먼 때로 반질반질합니다.

간호사는 내가 경악하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입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것같은, 꼬리꼬리하고 쿰쿰한 냄새가 날 것같은 침구를 가르키며 누우랍니다. 당연히 안 누웠지요. 앉아서 주사를 맞겠다고 했습니다. 간호원이 그럼 그러라면서 주사기를 주섬주섬 챙기는데 엄마야,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입니다. 그러고보니 맨처음의 의사도 접수원도 간호사도 아무도 장갑을 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장갑은 끼지 않는 것은 물론 손도 씻지 않습니다. 의사랑 면담을 했던 곳도, 대기실에도 그 어디에도 손 씻을 만한 씽크가 갖추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도 아픈 몸 때문입니다. 지난해 8월, 내 부주의로 몸에 들어온 냉기가 좀처럼 나가지를 않아요. 염소탕을 비롯, 홍삼, 녹용, 흑마늘, 생강가루, 쑥가루, 경옥고, 강황 등 몸을 데워준다는 온갖 식품과 약재를 장복해도 얼음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듯한 증상이 조금도 가시지를 않은 것입니다. 그 와중의 4월 중순, 갑자기 기온이 며칠 치솟았는데 그 잠깐을 못참고 남편이 에어컨디션을 왕왕 틀어댔습니다. 찬 에어컨디션 바람이 몸에 닿자 정말이지 고통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한국행을 계획한 것입니다. 여름이 오기 전에 이 냉증을 고쳐야만 할 것 같아서요.

고향에 도착하는 바로 그길로 한의원에 갔습니다. 막내동생이 추천해 준 한의원입니다. 동생이 불면증과 전립선 문제로 고생했는데 그곳 한의사가 애써준 덕에 완쾌되었답니다. 막내동생이 미리 언질을 주어서인지 접수대에서부터 반갑게 나를 맞아줍니다. 그런데 대기실은 완전히 도떼기시장입니다. 뜨거운 햇볕과 강한 바람에 노출되어 새카맣게 탄 할매와 할배들이 열명 넘게 잡담을 하며 기다리고 있어요.

내 차례가 되려면 한 시간은 넘어 걸릴 것 같았습니다. 따분하고 지루해서 고개를 빼고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천정에 도르래로 된 커튼만으로 대충 칸을 갈라 놓은 병실도 방도 아닌 곳이 아무런 가림막도 없이 앞에 펼쳐져있었어요. 완전히 야전병원 같습니다. 어림잡아 보기에도 열 서너명의 환자들이 누워있습니다. 젊은 남자 한의사 한 명과 두 명의 도우미가 뛰다시피 돌아다니며 바쁘게 환자들을 봅니다. 프라이버시고 나발이고 없어보입니다. 한의사와 환자가 나누는 대화가 대기실까지 선명하게 들립니다. “

할배요. 오늘 아침에는 화장실에 갔능교?”
“못갔제. 선상님이 준 약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카이. 그래서 내가 약보다는 침을 더 놓아달라고 안 했능교?오늘은 침을 좀 놓아 주소”
“어데 보이시더. 똥덩거리가 어느만큼 내려왔는지 좀 보이시더…”

한의사가 할배의 배를 꾹꾹 누르고 훑는 게 보입니다. 맨손입니다. 한의사도, 도우미도 그 누구도 장갑을 끼지 않았어요. 한의사는 할배에게 침을 놓은 후 다른 환자에게 곧바로 옮겨갔습니다. 한 번도 손을 씻지 않습니다. 1번 환자한테 침 놓던 손 그냥 그대로 2번 환자한테 가서 부항을 (부항 뜨면 피도 묻을 텐데)뜨고요. 2번 환자 다리며 어깨를 만지던 손이 3번 환자한테 무방비로 옮겨 갑니다.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한의사는 나를 진찰합니다. 어떤 병균을 보유한 환자를 만졌는지 어떤 환자의 타액과 피가 묻었는지 그 누구도 모르는 손으로 내 맥을 짚고 내 배를 꾹꾹 눌러보고 눈알을 뒤집어 보고 귓속을 살펴보고 종아리를 짚어 봅니다. 그리고는 도우미로부터 맨손으로 건네받은 침구로 내 하체 쪽에다 대여섯 개의 침을 놓습니다.

나중에 그곳 말고도 다른 한의원 두 군데를 더 갔는데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람들은 손을 씻는다는 자체를, 장갑을 껴야한다는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 같습니다. 장갑이 비치되어 있지 않고 손 씻은 싱크 자체가 없습니다. 노인들을 대상으로하는 한의원이니까 뭐 그렇다 칩시다. 피부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다가다 ‘점뺀다’는 플래카드를 내건 피부과가 있어서 가봤습니다. 큰 점 하나에 1만원, 작은 점은 5천원 씩, 도합 11만원에 깨순이처럼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점을 빼기로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린이 날이 끼인 주말이라서 그런지 손님이 넘쳐납니다. 거의 다 십대의 아이들입니다. 휴일을 이용해 외모를 업그레이드하려는 학생들인 것같습니다.

한 시간을 기다려 의사를 보는데 간호사가 열어주는 방으로 들어가니 바로 전 환자가 옷을 추스리기도 전입니다. 내가 민망해서 문을 얼른 닫으려고 하니 뒤따라온 간호사가 괜찮다며 내 등을 들이밉니다. 전 환자의 뜨뜻한 체온이 남아있는 침대에 누우니 금방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인사 한 마디 없이 바로 시술을 하기 시작합니다. 뭐 물어보고 의견을 들을(점 빼고 난 뒤의 주의사항이 적인 종이 한 장을 나중에 줍디다만)새도 없습니다.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5분이 지났을까? 다 되었습니다, 하는 간호사의 말에 벌써요? 하고 물으려는데 출입문이 벌컥 열립니다. 간호사가 다음 환자를 인도하고 들어온 것입니다. 나는 의사 얼굴도 똑똑히 못 봤습니다. 헝클어진 매무새를 가다듬는 나를 앞에 두고 의사는 바로 다음 환자 시술을 시작하더군요. 물론 내 얼굴을 만지던 맨손으로 장갑도 없이 씻지도 않고.

압권은 뜸뜨러 가서입니다. 뜸의 대가, 김남수 옹으로 사사했다는 사람이 원장인 곳입니다. 올케가 그래요. 하도 유명해서 서울에서 대전에서 환자들이 몰린다고요. 그렇게 환자가 몰리는데 일 주일에 한 번밖에 문을 안 연다는 곳입니다. 나는 올케가 미리 예약을 해둔 덕에 기다리지 않고 뜸을 뜨고 왔습니다. 조금 차도가 있는 것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음같아서는 매일 가고 싶었지만 일 주일에 한 번밖에 문을 열지 않으니 어째요. 일주일을 기다려 또 갔습니다. 원래 문은 10시에 여는데 마음이 급해서 30분 일찍 갔지요. 벌써 세 명의 여자가 기다리고 있어요.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원장이 화장실로 들어가는 게 보였습니다. 여자, 남자로 구분된 화장실이 대기실 바로 옆에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화장실로 귀가 모아졌는데 수돗물 트는 소리가 들리는지 궁금해서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0여분 후 변기물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립니다. 그 원장이란 작자는 손도 안 씻고 나온 것입니다.

온갖 종류의 약을 먹어도, 침을 맞아도 꿈쩍도 않던 몸이 뜸에 약간 반응을 보이는 것같아서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던지요. 그런데 변을 보고 손도 안 씻고 나오는 원장이란 남자를 보고 만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시간 내어 거기까지 갔는데 진료는 받고 와야지.

시간이 되어서 기다리던 여자들과 함께 나는 침대에 죽 눕고 엎드렸습니다. 곧 원장이 와서 내 배며 허벅지를 만지며 혈자리를 찾는데 온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입니다. 저 더러운 손에 얼마나 많은 병균이 묻어있을까하는 생각에.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유쾌하게 농담도 해가며 나비처럼 이 침대 저 침대를 날 듯이 옮겨다니면서 뜸을 뜨고 침을 놓습니다.

뜸을 다 뜨고 화장실에 갔습니다. 소변을 본 후 손을 씻으려다가 엄마야,하고 나는 속으로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어요. 세면대에 놓여진 말라 비틀어진 비누. 낙엽처럼 얇게 닳아빠진 비누. 쩍쩍 갈라진 틈으로 새카만 때가 묻은 비누. 일 주일 전에 내가 썼던 그 비누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워낙 바짝 마르고 얇아서 거품이 제대로 나지 않았던 그 비누가 일 주일 전, 내가 쓰고 놓아 뒀던 그 모습 그 모양대로. 원장 말고도 보조하는 여자가 셋이 있었어요, 그곳에는. 원장이 놓은 침을 빼고 뜸기구를 교정해주는 등 원장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하는 허드렛 일을 하는. 그 여자들 셋은 지난 일주일 동안 화장실을 한 번도 안 썼답니까. 아니면 볼일을 보고 그 누구도 손을 씻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뜸기구랑 쑥을 싸갖고 돌아와서 집에서 뜸을 떠봤는데 내 솜씨가 신통찮아서인지 영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견디다 못해 내 패밀리 닥터한테 면담신청을 했습니다. 한방으로 안 되니까 양방으로도 시도해봐야 할 것 같아서. 인도계인 내 의사는 들어오자마자 비누를 퍽퍽 펌프질하더니 손을 뽀독뽀독 소리가 나게 씻습니다. 그리고 곧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내 인적사항과 내 병력을 확인하고는 몇가지 질문을 합니다. 이어 라텍스 장갑을 끼더니 내 입속이랑 눈이랑 귀를 들여다보고 청진기를 가슴과 등에 갖다대면서 이것저것 질문을 합니다. 문진이 끝났습니다. 의사는 장갑을 벗고 다시 컴퓨터에 앉더니 신경계 의사한테 나를 인도하는 편지를 씁니다. 편지를 다 쓰고 방을 나가면서 다시 한번 손을 씻는 의사. 20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대체 손을 몇 번이나 씻는 것인지. 그 엄청난 물 소비와 몇 백년이 가도 썩지 않는 라텍스 장갑이 환경오염을 얼마나 가중시킬지. 한국에는 안 씻어서 문제, 여기는 너무 씻어대서 문제입니다.

이계숙 작가

Related Posts

의견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