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한국은 쓰레기때문에 망하겠다

그동안 가는 데 하루, 오는 데 하루, 머무르는데 닷새, 딱 일 주일의 번개같은 한국방문 일정을 지난 번에는 보름 예정으로 넉넉하게 잡았습니다. 은퇴도 했겠다, 남는 것은 시간뿐이었으니까요. 보름으로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말을 들은 친구 미연이가 말했습니다.
“보름이면 시간이 많네. 내가 비행기표랑 숙소 예약할 테니까 제주도 가자. 너 제주도 안 가봤지. 나는 한 번 갔었는데 또 가봐도 좋을 만큼 멋진 곳이야…”
그래서 미연이랑 제주도를 갔었냐고요. 아니요. 여행이라면 질색하는 내가 갈리가 있나요. 한국이야 친구, 동생, 친척들 얼굴본다는 명분이나 있지 그 외에는 꼼짝 안 하고 싶습니다. 움직이는 게 귀찮아요. 아무리 제주도가 경치 좋고 풍물이 멋지다 해도 시간 들이고 돈 들이고 에너지 써서 보러갈 만한 열정이 내게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제주도에 안 가길 잘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직원들이 백록담 일대에서 대대적인 환경정비작업을 실시해서 5리터 쓰레기종량제 비닐봉지 400여개, 마대 3개 등을 가득 채운 5톤 정도의 쓰레기를 수거했다는 뉴스를 보았거든요. 세상에. 한라산 전체도 아닌, 며칠에 걸친 작업도 아닌, 단 하루동안 백록담 일대에서만 수거한 쓰레기가 5톤이라니! 5톤에 달하는 쓰레기의 대부분은 한라산 탐방에 나선 관광객들이 먹고 마시고 요리한 후 아무렇게 버린 쓰레기 아니겠어요. 내가 만약 제주도에 갔다면 저 쓰레기 양산에 일조를 한 관광객의 한 사람이 되었겠지요. 제주도에 관광객들이 대거 몰리면서 섬 전체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를 예전부터 보긴 했지만 저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습니다. 천혜의 자연을 가진 그 아름다운 섬이 쓰레기로 뒤덮여지다니. 개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그런데요. 쓰레기문제는 단지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은 나라 전체가 쓰레기 천지인 것 같습니다. 고향에 열흘 넘게 머물면서 나는 대부분을 걸어다녔습니다. 이모네에도, 목욕탕에도, 옛 부모집에도, 친구들을 만날 때도요. 뭐 차를 탈 만큼 그리 급한 것도 없고 걸으면서 고향의 정취를 감상하고 싶어서였어요. 걸으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쓰레기 때문에 망하겠구나, 하는 것. 후미진 골목길, 전봇대밑, 남의 담장 옆 등 조금 외지다 싶은 곳, 사람들이 바삐 드나들지 않은 곳에는 예외없이 쓰레기들이 널부러져있습니다. 대부분이 생활쓰레기들이고 못쓰는 가구, 가전제품, 옷가지들을 담은 터질 듯한 비닐봉투들입니다. 한심한 것은 그 쓰레기더미들이 쌓인 데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쓰레기 무단 투기 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어요. 그 경고문을 버젓이 비웃듯 쌓여있는 쓰레기들.

어느날은 슈퍼마켓에 뭘 사러가면서 쓰레기 쌓여있는 곳들마다 사진을 찍어봤어요. 동생집에서 슈퍼마켓까지는 반 마일도 안 됩니다. 그 반 마일동안 걸어가면서 사진을 찍은 쓰레기 더미만도 여덟군데. 하루종일 걸어다니면 수십장도 더 찍을 수 있을만큼 주민들이 무분별하게 투척한 쓰레기 문제는 심각합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올케가 말합니다. 종량제 봉투에 담아 지정한 장소에 갖다두면 시에서 깨끗하게 쳐간답니다. 그런데 한 장에 몇 백원하는 종량제 봉투를 아끼느라 아무데나 쓰레기를 투기한다고요. 정말로 양심을 쓰레기랑 함께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쓰레기는 양호한 편입니다. 보기에만 더럽지 크게 냄새가 나거나 위생상의 문제는 없는 것 같으니까요. 문제는 음식물쓰레기입니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나는 아침잠이 없습니다. 고향에 도착한 첫날, 이른 아침 시내를 가로질러 강가로 산책할 생각이었던 나는 아연실색해야 했습니다. 밤샘 영업을 한 식당에서 갖다버린 음식쓰레기가 잔뜩 담겨진 비닐봉투들이 전봇대 밑마다 산을 이루고 있었거든요. 동네 길고양이가 뜯었는지 쥐가 뜯었는지 몇몇 봉투는 여기저기 뜯겨 있고 그 틈으로 시뻘건 국물이 줄줄 흘러내려요. 도로가 온통 시뻘겋습니다. 그 위를 붕붕 날아다니는 파리떼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 지독한 냄새. 쓰레기는 그렇다치고 토사물은 또 어쩌고요. 식당이나 술집들이 포진해 있는 곳은 동네 전체가 토사물로 덮혀있는 것 같습니다. 전봇대 밑마다 얼룩덜룩한 토사물자국들. 몸에 안받는 술을 억지로 먹은 흔적들입니다. 그리고 함부로 길바닥에 뱉은 침, 가래, 그리고 담배꽁초들.

시내만이 아닙니다. 시내에 투척된 쓰레기는 나중에라도 시에서 치우기라도 하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치워지지 않는 시골의 쓰레기는 더욱 심각해요. 내 어릴 때 살던 동네는 차로 한참을 들어가야할 만큼 시골입니다. 거기도 마을 입구부터 보이는 쓰레기 더미.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인가 주인이 타계해서인가 농사를 짓지않고 놀리는 논과 밭들이 많았는데 모두 쓰레기천지입니다. 생활쓰레기들과 폐비닐들, 그리고 못쓰는 차바퀴, 경운기 바퀴들. 내가 갔던 때가 5월 초. 날씨가 별로 덥지 않았음에도 쓰레기 부폐하는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 쓰레기들은 재작년에 내가 갔을 때도 거기 있었어요. 올해는 더 많아진 것 같았지만 아무도 치우지를 않는 것 같아요.

삼천리 금수강산을 쓰레기더미로 뒤덮는 데는 얼마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차박’이라는 것도 크게 한 몫하는 것 같습니다. 경치좋고 풍치좋은 데 차를 대놓고 숙식하는 것을 ‘차박’이라고 한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워낙 광활해서 한 번 횡단하려면 며칠 씩이나 걸리니까 모빌차가 필요하다 치지만 기껏해야 서너시간이면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한국에서 차박이 웬일이랍니까. 차박을 하려면 자기가 놀다간 흔적들은 지우고 치워야하지 않겠어요. 강이고 산이고 들이고 개울이고 경치가 좀 좋다 싶으면 차박하다가 간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눈쌀을 치푸리게 하고 있어요. 차박하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쓰레기는 대부분 음식물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경치를 즐기러 왔으면 경치만 즐기지 무슨 놈의 요리들은 그렇게 해대는지.

친구 희주가 사는 곳은 표충사라는 큰 절이 있는 산세가 좋기로 유명한 곳인데요. 희주 집 바로 앞에는 표충사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작은 강을 이루는 곳이 있습니다. 물이 차고 맑기로 유명한 그곳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내가 갔을 때에도 차박하러온 사람들이 여러팀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벅적찌근하게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휴대용버너에다 삼겹살을 구워먹는 사람도 있고 해물탕을 끓이는 사람도 있고 스테이크를 굽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들이 차박하는 한 옆으로는 빈 휴대용 가스 캔이니 음식물 포장지니 채소 찌꺼기들, 그리고 과자봉지 음료수병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무데나 용변을 봐서 강가 여기저기서 악취가 풍기더군요. 늘 조용하고 한적한 강가였습니다. 그래서 희주랑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몇 년만에 완전히 돗대기 시장으로, 쓰레기장으로 변해 있었어요,

희주가 말했습니다. 차박하러 오는 사람들은 지역 경제에 일절 도움이 안 된다고요 식재료 일체와 주류를 차에 싣고 오기때문이랍니다. 그러니까 과자 한 봉지 팔아주지 않으면서 쓰레기와 오물들만 남기고 떠난다고요.

한국은 공공장소에 대한 시민들의 소양과 의식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와 문화는 세계손색없이 발전하고 발달했지만 공중도덕은 예전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아니, 더 퇴보한 것 같아요. 아름다운 우리의 국토가 모두 쓰레기로, 오물로 더 더럽혀지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할 것입니다. 자율로 아니되면 강제적으로라도요. 쓰레기 무단 투척자에게 무거운 벌을 내려서라도요.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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