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SF위안부 기림비 건립 6주년’…우리는 아픈 역사를 마주할 준비가 됐는가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
8년전 오늘 2015년 9월 22일, 샌프란시스코 시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건립 결의안’이 11명 시의원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에릭 마 시의원이 발의해 통과된 이 결의안은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성노예’인 위안부를 강제동원 했다는 역사를 기록한 ‘기림비’를 샌프란시스코에 세운다는 내용이 골자다. 샌프란시스코 통합교육구에 속한 모든 공립학교에서 위안부를 가르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시의회에 상정돼 통과될 수 있었던 데에는 몇가지 원인들이 있다. 그중 가장 큰 요인은 일본 정부의 역사 부정과 왜곡이다. 2012년 일본 수상에 오른 극우 정치인 아베 신조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덮는 ‘역사수정주의’를 들고 나왔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들을 부정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등 역사를 날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당연히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사실도 부정했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폭로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증언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김학순 할머니의 폭로로 일본 정부가 나서 조사한 뒤 위안부 강제동원을 사실상 인정한 ‘고노담화’도 뒤집어 버렸다. 일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위안부 피해자를 돈을 벌기 위한 ‘매춘부’로 매도하기까지 했다.

이런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은 한국과 중국 등 피해국들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아시아계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일본의 후안무치한 역사왜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중국 커뮤니티다. 중국계 주민들은 일제 침략기 20만명이 처참하게 살해됐던 ‘난징 대학살’과 함께 일제의 대표적 인권 말살 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한국과 필리핀 등 아시아계 주민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위안부 기림비’ 건립도 추진했다.

중국계 주민들은 기금을 모아 도심 공원에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세우려고 했지만, 공원에 기림비를 세우는 것은 시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여러 문제들이 있어 시의회 결의안을 통해 기림비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결의안 발의는 중국계 시의원인 에릭 마 의원이 맡았다. 11명의 시의원 중 7명의 동의도 받았다. 한인 제인 김 시의원도 서명했다. 중국계 커뮤니티는 한국과 필리핀 등 위안부 피해 커뮤니티에 동참을 호소했고 한인들은 물론 인권운동을 하는 일부 일본인들을 포함해 13개 커뮤니티가 함께 뜻을 모았다.

결의안 통과를 위한 표결에 앞서 개최된 공청회에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직접 참석해 피해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 증언으로 결의안 통과에 미온적이던 런던 브리드 당시 시의회 의장(현 SF시장)도 결국 찬성표를 던졌고 만장일치로 통과될 수 있었다.

중국계 커뮤니티가 결의안 통과를 주도했다면, 위안부 기림비 건립은 한인 커뮤니티가 주도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2016년 대대적인 기림비 건립 기금 모금 캠페인을 펼쳤다. 김진덕・정경식 재단이 앞장섰다. 호응은 뜨거웠다. 캠페인을 시작한지 10일만에 10만 달러가 모였다. 캠페인이 끝난 뒤에도 성금은 계속 답지했다. 한국학교 학생들부터 노인회 어르신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성금을 계속 보내왔다. 그렇게 모아진 기금으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지 꼭 2년만인 2017년 9월 22일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가 제막됐다.

일제 강점기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이민 선조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들고 어려운 이민 생활 속에서도 독립자금을 모았다면, 2016년의 한인들은 아픈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또다시 하나가 되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사라진 채 세인트 메리스 스퀘어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는 아무도 찾는 이 없이 쓸쓸하게 6주년을 맞았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한미일 공조가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일본의 과거사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고, 홍범도 장군이 빨치산이 되어 흉상이 철거되는 현실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 행여 ‘공산 전체주의세력’으로 비춰질까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

최근 시애틀 타임즈에는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회담이 ‘허상(Illusion)’ 이라는 전문가의 기고가 실렸다. 콜비 대학교 월터 해치 명예교수가 기고한 것으로 해치 교수는 이 글에서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독일은 철저한 과거사 반성으로 피해국들과 협력관계를 만들었지만 아시아에서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며, 미국이 한국 등 아시아 지역 국가들과 동맹을 공고히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독일이 그랬던 것 처럼 일본이 이웃 국가들과 유대관계를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다시 말해, 한미일 공조가 진정한 의미에서 동맹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진정한 과거사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원문 https://www.seattletimes.com/opinion/the-illusion-of-detente-between-south-korea-and-japan/)

한국이 이웃 나라인 일본과 언제까지 반목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두 나라의 과거사를 내버려 둔 채 외면할 수도 없다. 해치 교수의 충고처럼 결국 올바른 역사인식에 기반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래야 서로 진정으로 협력하는 미래를 그려갈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 건립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불가역적’ 이라며 맺은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들은 물론 국민들의 공감을 전혀 얻어내지 못했던 것 처럼 역사를 올바로 직시하지 않고 외면한 숱한 정치적 구호들은 ‘허상’으로만 남을 뿐이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아픈 역사를 마주하며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베이뉴스랩 편집인 최정현 / choi@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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