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구글·메타 등 지역사회 대응 강화
인공지능(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미국 곳곳에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들어서고 있지만,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막대한 전기와 물을 사용하면서 주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이 늘어나고 환경에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러한 반대 움직임이 확산하면서 실리콘밸리의 주요 AI 기업들도 데이터센터 건설 전략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특히 지난 11월 3일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을 제한하거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관련 주민투표가 실시된 여러 지역에서 규제 강화 조치가 통과됐으며, 데이터센터 건설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한 정치인들도 선거에서 승리했다. 데이터센터 문제가 단순한 지역 개발 논란을 넘어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AP통신이 인용한 선거 분석에 따르면 개표가 완료된 데이터센터 관련 주민투표 45건 가운데 44건에서 규제 강화 조치가 승인됐다. 또한 시장정보업체 클린뷰는 미국에서 건설이 계획된 데이터센터 용량의 약 40%가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 중단이나 일시 정지를 공약한 주지사 당선인들이 있는 주에 집중돼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들 사업이 모두 중단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주민들이 데이터센터 건설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기요금 상승에 대한 걱정이다. AI 서비스를 운영하려면 수많은 고성능 컴퓨터와 서버를 하루 24시간 가동해야 한다. 일반적인 사무실이나 공장보다 훨씬 많은 전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발전시설과 송전망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일반 가정과 소규모 사업자의 전기요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 사용도 중요한 문제다. 데이터센터에서는 수많은 컴퓨터가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대규모 냉각시설을 사용한다. 냉각 방식에 따라 상당한 양의 물이 필요하기도 하다. 가뭄이 반복되는 캘리포니아에서는 데이터센터가 물을 많이 사용할 경우 지역 주민과 농업, 다른 산업의 용수 확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환경오염과 소음 문제도 주민들의 반발을 키우고 있다. 정전 등에 대비해 설치하는 대형 비상 발전기에서 배기가스가 발생할 수 있고, 냉각시설에서는 지속적인 소음이 발생할 수 있다. 대형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주변 도로와 주거환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경제에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도 논란이다.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완공 후 시설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상시 직원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주민들은 대기업이 세금 감면과 각종 지원을 받으면서 지역사회에는 충분한 일자리나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주민들의 반대로 데이터센터 사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데이터센터 감시단체인 데이터센터워치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미국에서 약 45개 프로젝트, 총 68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사업이 주민 반대로 지연되거나 중단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갈등은 실리콘밸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인 산타클라라에는 약 60개의 데이터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산타클라라는 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전력회사인 실리콘밸리 파워를 통해 비교적 저렴한 전기를 공급하면서 많은 데이터센터를 유치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데이터센터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산타클라라 시의회는 지난 10월 신규 데이터센터에 적용할 물 사용과 대기오염 관련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시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그동안 데이터센터 유치에 적극적이었던 지방정부도 환경과 주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중요하게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산호세에서도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맷 마한 산호세 시장은 데이터센터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세수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산호세 시 당국은 데이터센터 한 곳이 연간 약 300만~600만 달러의 세수를 가져올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반면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데이터센터 건설을 승인하기 전에 전력과 물 사용량, 환경오염 가능성을 더욱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로 발생하는 비용을 주민들이 부담하지 않도록 명확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반대 여론이 확산하자 실리콘밸리의 주요 AI 기업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오픈AI는 중간선거 직후인 11월 5일 새로운 데이터센터 개발 원칙을 발표했다. 앞으로 회사가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전력 사용과 관련 시설 확충 비용을 회사가 부담하고, 지역 주민들이 건설 계획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또한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전기와 물의 양을 공개하고, 소음 문제를 사전에 조사하며, 물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냉각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일자리와 직업훈련 기회를 확대하고 지역사회 사업에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러한 원칙은 오픈AI가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향후 데이터센터를 대상으로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데이터센터 건설 때문에 일반 주민들의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도록 관련 비용을 부담하고, 물 사용을 줄이며, 지역사회에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메타와 구글도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른 전력과 물 사용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사회와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반대 움직임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11월 6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환경운동가 100명 이상이 마이크로소프트의 AI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에 들어가 반대 시위를 벌였다. 환경단체들은 데이터센터가 지나치게 많은 전기와 물을 소비해 기후변화 대응에도 부담을 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 AI 산업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AI 기업들은 더 뛰어난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확보해야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가 거세지면 부지를 확보하거나 건설 허가를 받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전력과 물 사용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 건설 및 운영 비용도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AI 기업들은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지역을 선정할 때 전력 공급과 부지 가격뿐 아니라 주민들의 반응과 환경 규제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고효율 컴퓨터를 개발하고, 물 소비를 줄이는 냉각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싼 반대 여론이 AI 산업의 투자 중단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AI와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은 데이터센터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방정부 역시 세수 확대와 경제 발전을 위해 데이터센터 유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결국 이번 논쟁의 핵심은 AI 산업을 얼마나 빠르게 성장시킬 것인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센터 건설로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지역 주민들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산호세와 산타클라라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지역에서는 앞으로 데이터센터 건설 허가와 전력요금 부담, 물 사용 규제 등이 주요 정책 현안이 될 전망이다. 세계 AI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실리콘밸리가 기술 발전과 지역 주민들의 생활환경 보호라는 두 가지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