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붐에 주택 수요 급증…세입자 주거비 부담 가중
샌프란시스코의 아파트 렌트가 다시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1베드룸 아파트의 월 중간 렌트가 약 3,920달러까지 오르면서 불과 1년 만에 26%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전체 임대시장이 대체로 안정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인공지능(AI) 산업을 중심으로 한 고소득 일자리 증가와 만성적인 주택 공급 부족이 맞물리며 가파른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리스트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1베드룸 아파트의 중간 렌트는 9월 기준 약 3,920달러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약 3,110달러에서 800달러 이상 뛰었다. 현재 아파트리스트가 집계한 수치는 1베드룸 3,915달러, 2베드룸 4,640달러이며 전체 주택 유형을 합친 중간 렌트는 3,878달러다. 1년간 전체 렌트 상승률은 25.7%에 달했다.
세입자 입장에서 보면 1베드룸 한 채를 임대하는 데 1년 전보다 매달 약 800달러, 연간으로는 약 9,600달러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세금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계산하더라도 월 렌트 3,920달러를 감당하려면 연간 4만7천 달러가 넘는 금액이 주거비로 지출된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승세는 전국적인 흐름과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파트리스트 자료에서 미국 전체 1베드룸 중간 렌트는 약 1,220달러로 샌프란시스코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 1년 동안 전국 렌트가 0.4% 하락하고 캘리포니아 전체는 약 2.5% 상승하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샌프란시스코의 25%대 상승률은 이례적이다.
올해 들어 상승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샌프란시스코의 렌트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23.4%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 11.5%의 두 배가 넘는다. 9월 한 달 동안에만 1.1% 상승했으며, 8월에는 한 달 만에 3.2%가 뛰었다.
샌프란시스코는 현재 아파트리스트가 집계하는 미국 100대 도시 가운데 전체 중간 렌트가 가장 비싼 도시다. 렌트 상승률 역시 올해 대부분 기간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가장 큰 폭의 임대료 하락을 경험했던 도시가 불과 몇 년 만에 다시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임대시장 가운데 하나로 돌아선 셈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AI 산업의 급성장이 꼽힌다. 과거 베이 지역의 기술산업 성장이 애플과 구글, 메타 등 실리콘밸리와 페닌슐라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최근 AI 붐은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집중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오픈AI와 앤트로픽, 커서 등 주요 AI 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자리 잡으면서 고임금 기술인력이 도시로 유입되고 있다.
이들 기업과 스타트업으로 유입되는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한정된 매물을 놓고 기존 주민들과 경쟁하게 된다. 아파트리스트는 현재의 상황을 높은 주택 수요와 제한된 공급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임대료를 빠르게 밀어 올리는 구조로 분석했다.
특히 과거 기술산업 호황기와 달리 직장과 거주지가 같은 도시 안에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리콘밸리로 출퇴근하던 시기에는 샌프란시스코와 페닌슐라, 사우스베이 등으로 주택 수요가 분산됐지만 AI 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모이면서 직장 가까이에 거주하려는 수요가 도시 안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신규 주택 공급은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리스트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의 아파트 공실률은 2024년 5.1%에서 올해 중반 2.4%까지 떨어졌다. 빈 아파트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최근 자료에서도 공실률은 2%대에 머물고 있다.
시장에 나온 주택이 임대되는 속도도 빨라졌다. 전국적으로 빈 아파트가 임차인을 찾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30일 정도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8일에 불과했다. 아파트리스트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9년 이후 8월 기준 가장 빠른 수준이다.
렌트 상승은 코로나19 기간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소마와 다운타운 등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팬데믹 당시 재택근무와 인구 유출로 렌트가 크게 떨어졌던 지역에 AI 기업과 근로자들이 다시 몰리면서 임대시장이 빠르게 반전됐다.
다만 현재의 렌트가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역사적 최고 수준을 완전히 넘어선 것은 아니다. 2018년 당시 렌트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베드룸 기준 약 4,300달러에 해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명목가격으로는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실질적인 구매력을 기준으로 보면 과거 기술산업 호황기의 최고점보다는 아직 낮다는 의미다.
샌프란시스코의 렌트 상승은 인근 도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파트리스트의 8월 분석에서는 오클랜드 렌트가 전년 대비 15.1%, 마운틴뷰는 약 11%, 산호세는 6.5% 올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주거지를 구하기 어려워진 세입자들이 이스트베이와 페닌슐라, 사우스베이로 이동하면서 수요가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오클랜드의 상승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밀려난 세입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스트베이를 찾는 움직임과 맞물리고 있다. 이에 따라 샌프란시스코의 임대료 상승이 도시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베이 지역 전체의 주거비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급격한 렌트 상승은 기존 세입자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퇴거 통보가 지난 1년 동안 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장기간 낮은 임대료를 내고 있는 렌트컨트롤 주택의 세입자를 상대로 퇴거 협상을 하는 사례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오래 거주한 세입자와 새로 계약하는 세입자의 렌트 차이가 커지면서 집주인이 기존 세입자에게 현금을 지급하고 이사를 요청하는 이른바 ‘바이아웃’의 경제적 유인이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바이아웃 협상 건수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늘었고, 일부 사례에서는 세입자에게 1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이 지급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렌트컨트롤을 적용받는 주택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모든 기존 세입자의 렌트가 시장가격처럼 26%씩 오르는 것은 아니다. 이번 통계는 현재 시장에서 새롭게 체결되는 임대계약의 가격 움직임을 반영하는 지표에 가깝다. 따라서 같은 건물에서도 오래 거주한 세입자와 새로 입주하는 세입자 사이에 월 임대료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아파트리스트 역시 센서스 자료와 임대 매물 자료를 이용해 새로운 임대계약에서 형성되는 중간 임대료를 추정한다.
문제는 기존 세입자가 직장이나 가족 문제로 이사를 해야 할 경우다. 렌트컨트롤 주택에서 장기간 비교적 낮은 임대료를 내던 주민이 같은 샌프란시스코 안에서 새 집을 구하려면 현재의 시장가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도시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한인 세입자들에게도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샌프란시스코 내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거나 생활권으로 이용해 온 리치먼드와 선셋 등에서도 기존 렌트컨트롤 주택과 신규 임대가격의 격차가 커질 경우 장기 거주자들이 이사를 결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직장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로 새롭게 진입하려는 청년과 유학생, 신규 이민자들에게는 월 4천 달러에 육박하는 1베드룸 렌트 자체가 상당한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다니엘 루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이달 렌트 급등과 퇴거 증가를 이유로 도시가 ‘렌트 비상상황’에 놓였다고 선언하고 세입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퇴거 방지를 위한 법률지원 확대와 갑작스러운 대규모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는 방안 등이 포함됐으며 관련 대책에 3천만 달러 이상을 투입한다는 계획도 제시됐다.
시 정부와 수퍼바이저들은 집주인이 과거 사용하지 않은 렌트 인상분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적용하는 이른바 ‘뱅크드 렌트 인상’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은 렌트컨트롤 주택에 대해 누적 인상분과 일부 건물개선 비용을 합친 연간 인상폭을 2029년까지 10%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세입자 보호만으로 장기적인 렌트 상승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건설이 오랫동안 인구와 일자리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AI 산업이 만들어내는 신규 주택 수요에 비해 시장에 추가되는 주택이 지나치게 적기 때문이다.
아파트리스트 역시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공급 부족을 이번 렌트 급등의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했다. 미국의 다른 주요 도시들이 최근 수년간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해 렌트 상승을 억제한 것과 달리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건설은 오히려 둔화하면서 새로 유입되는 수요를 흡수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샌프란시스코 경제가 AI 산업을 중심으로 다시 성장하고 다운타운의 회복세가 이어지는 것은 도시 경제에는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그 회복의 비용이 렌트 상승으로 기존 주민에게 전가될 경우 중산층과 저소득층, 서비스업 종사자 등이 도시 밖으로 밀려나는 문제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샌프란시스코의 주거 문제는 단순히 ‘미국에서 렌트가 가장 비싼 도시’라는 수준을 넘어 AI 산업 성장으로 생겨나는 경제적 혜택과 주거비 부담을 도시가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의 문제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신규 주택 공급이 단기간에 크게 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세입자 보호와 주택 건설 확대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느냐가 향후 샌프란시스코 임대시장의 방향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