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나는 한국이 정말 걱정 된다

지난 해 가을, 한국에 갔을 때 올케가 말했습니다. 3주 예정으로 미국 방문 계획을 세웠다고요. 초등학교 교사인 올케와 일본에서 공부하는 동생과 영국에서 공부하는 조카가 모두 방학이라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생선하고 손님은 사흘이면 냄새 난다’는 우리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어 어딜 가도 오래 머물지 않는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아이고, 3주간이나? 너무 길지 않니? 동생 가족이 오는 것은 반갑지만 3주간 동안이나 내 일상이 흐트러지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으니까. 내 반응에 올케가 막 웃더군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녀가 말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거의 나가 있을 테니까. 올케에 의하면 미국에 와봤자 나가 다니는 것 싫어하는 내가 자기들을 데리고 구경시켜줄 리는 없고 자기들끼리 미국전역을 여행하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고 합니다. 그래서 체류기간은 3주지만 정작 우리집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거랍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참 다행이지만.

올케의 말대로 그들이 우리집에 머문 시간은 일 주일 가량. 나머지는 차를 렌트해서 자기들끼리 여행을 했습니다. 라스베가스를 시작으로 그랜드캐년, 샌프란시스코, 후버댐, 할리우드, 요세미티 등등. 애플 본사까지 가봤대요. 애플 본사에만 구할 수 있는 기념품을 선물로 사왔습니다. 영어가 가능한 조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 나는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미국을 돌아본 느낌이 어떠하더냐고. 한국 관광지랑 비교해서 어떤 점이 다르더냐고. 동생이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광활하고 웅장하고 방대하고 경이롭고 아름답고 멋지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되는 곳이 바로 미국땅인 것 같았습니다. 신이 축복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나라가 바로 미국땅이었습니다. 다음은 이어서 동생이 한 말입니다.

“자본주의의 끝판인 미국이란 나라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미국이라서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점들이 엄청 많았어요. 어디에서나 항상 질서정연하고 사람이 있을 만한 장소에는 어디서나, 이를테면 높은 산꼭대기에도 어김없이 쓰레기통이 설치돼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사람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곳에도 한국처럼 오물과 쓰레기가 산처럼 쌓이지 않고 청결한 것을 보며 선진국은 역시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지요. 또한 공공장소에서는 그 누구도 고성방가를 하지 않는 시민의식과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교차로에서도 무조건 우선 멈춤하는 준법정신은 우리도 본 받아야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만큼 부러웠던 것은 유명 관광지, 명승지, 고적지에 현대적인 건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같으면 조금만 경관이 빼어나다 싶으면 앞다투어 카페, 식당, 모텔 등 서구식 건물이 들어서잖아요. 조금 가파르다 싶은 곳에는 어김없이 설치된 시멘트 계단, 철제 계단은 두말 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미국엔 인공적인 시설물 일체 없이 자연 그대로, 태초부터 생긴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내가 한국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동생도 같은 생각이었네요. 고이 지켜 대대손손 물려주어야할 자연에 왜 시멘트로 범벅을 해놓을까 하는 안타까움. 아울러 아무곳에나 무조건 건축허가를 내주는 당국에 대한 분노.

고향친구들이 기장 바닷가에서 모임을 했습니다. 한 친구의 차를 타고 미리 예약해 둔 기장 모 펜션에 도착했는데 룸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입을 떡 벌려야했습니다. 망망대해가 바로 코 앞. 바다와 방 사이가 몇 미터도 안 돼 무서울 지경입니다. 방밑으로 파도가 마구 철썩 거려요. 기암괴석 바로 위에다가 지은 펜션이었어요. 바다 쪽으로 난 통창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오는 세찬 바닷바람. 그리고 코로 들어오는 바다내음. 경치 끝내주는 데 방을 잡았다며 총무친구를 모두 치켜세웠고 총무는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나는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소금기 머금은 바람에 건물들이 금방 부식되고 말텐데 폭풍우가 몰아칠 때 안전할까하는 우려말입니다.

곧 부산친구 부부가 나를 데리러 와서 우리는 호텔로 향했습니다. 친구남편이 바다구경을 시켜 준다며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해안을 한 바퀴 돌았는데요. 바닷가 절벽을 따라 병풍처럼 쭉 들어서 있는 카페와 모텔과 식당들. 휘황찬란한 전등과 네온사인으로 벽과 지붕 전체를 장식한 그 건물에 들어가려는 차량 행렬이 끝이 없습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주말에는 어느 곳이든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고. 저 많은 건물들에서 나온 폐수와 오수는 다 어디로 갈까하는 생각에 나는 또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노로 바이러스때문에 한국산 굴이 미국에 수입금지 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어요. 노로 바이러스는 인분에서 생성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굴 양식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이 바다에다 함부로 용변을 보기 때문이랍니다. 또한 바닷가에 지어진 영업장들이 그 주범이라고 했습니다. 당국의 눈을 피해 샴푸와 비누거품이 부글부글 끓는 더럽고 독한 오수 폐수를 그대로 바다로 방류한답니다. 자체 정화시설을 가동하려면 돈이 드니까요. 그들한테는 바다가 오염되든지 말든지 돈이 우선이니까요. 먹고 마시고 노는 데 혈안이 된 시민들도 일체 그런 쪽으로는 관심들이 없고요.

자연경관은 그냥 눈으로 보고 즐기면 됩니다. 왜 마구 파헤치고 베어내고 엎고 뚫고 시멘트 깔고 건물을 지어 그곳에서 잠을 자야 하고 먹어야 하고 놀아야 할까요. 자연을 왜 가만히 두지 못할까요.

절경이 있는 곳에 들어서 있는 이질적인 시멘트 건물도 한심하지만 전 국토를 뒤덮고 있는 아파트건물은 또 어떻고요. 우리 독자님들도 느낀 거겠지만 비행기가 한국 상공에 들어서면 끝간데 없이 솟아 오르고 늘어선 아파트 빌딩 숲에 숨이 턱턱 막힙니다. 인구가 줄면서 신축 아파트의 입주율 또한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는데 기존의 아파트를 증축 개축해서 쓸 생각들은 안 하고 무조건 최고, 최대, 최신식 아파트를 지어댑니다. 그래서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는 비어져서 방치되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 인근에 지어져 지난 1월 말 입주를 시작한 한 아파트 단지는 넉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절반이 채 입주가 안 되고 있다고 합니다. 입주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사유로는 기존주택 매각이 지연되고 있는 점이 45.5%(전국 기준)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수도권이 그러한 판이니 인구 소멸 직전인 지방 소도시 산골짜기에 우후죽순 지어놓은 아파트들은 어떠하겠어요.

아닌게 아니라 고향의 내 친구가 최근 새 아파트로 이사갔습니다. 기차역 광장 앞에 세워진 유명 브랜드 아파트입니다. 기차에서 내려 역사를 나서면 탁 트인 들판과 멀리 보이는 산들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었는데 몇 년전에 그 앞을 가로막은 높고 거대한 아파트가 생겼습니다. 그 아파트로 친구가 이사를 갔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집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으리으리하고 현대적이고 편리한 아파트입니다. 아직도 스크루우지처럼 쩔렁거리는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다녀야하는 미국과는 달리 스마트폰 하나로 방문자 확인, 출입문 개폐, 엘레베이터 호출 등 최첨단 시설이 탑재된,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그동안 살던 아파트는 어찌했냐고 친구에게 물으니까 그냥 비워놓았답니다. 헌 아파트를 팔고 이사를 오려고 1년 넘게 기다렸는데도 매매가 안 되어 할 수 없이 그냥 버려두고 새 아파트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교회나 성당 등 건축물들은 예술적인 가치가 있어 세월이 오래 흐를수록 더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장 미국만 보더라도 1백년 넘은 집이 숱할 뿐 아니라 나무로 지어졌기에 헌집을 헐더라도 뜯어 고쳐서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아파트나 빌딩이나 교회는 그저 크고 웅장하기만 할 뿐, 건물로서의 용도와 의미가 퇴색하고 난 뒤에는 폐기물이나 흉물로 남을 거라는 글을 본 적 있습니다. 다시 재활용할 수도 없는 시멘트 덩어리라서요.

시내나 농촌이나 산이나 강이나 바다나 방방곡곡 모두가 시멘트 건물로만 뒤덮인 것같은 대한민국. 우리 후손들이 정말 걱정됩니다.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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