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숙 작가의 살아가는 이야기] 미안해요 미안해

집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공원이 있습니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큰 길에서는 잘 안 보이는, 그러니까 동네사람들만 아는, 나무 몇 그루와 정자 한 채가 고작인 아주 작은 공원입니다. 나는 매일 아침 저녁, 이 공원을 가로질러 동네길을 산책 나갑니다. 우리 강아지들은 집을 나서자마자 변을 보는 버릇이 있어요. 그 변을 들고서 산책을 할 수 없으니까 공원에 있는 휴지통에 버리고 가는 거지요. 어느날 아침. 그날도 공원을 가로 질러가는데 겨우 예닐곱 대 차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에 차 두 대가 있는 걸 보게 되었어요. 흰색의 트럭과 회색 세단. 생전 안 보이던 차였습니다. 십년을 하루같이 매일같이 지나기에 뭐 새로운 게 있으면 금방 눈에 뜨입니다. 지나면서 무심코 세단 안을 들여다보니 엄마야! 남녀가 키스에 열중입니다. 얼른 그 옆을 지나왔습니다.

다음날엔 그 차들이 없더니 며칠 후에 보니 예의 그 트럭이 또 있습니다. 몸집이 아주 육중한 백인남자가 트럭에 기대어 서 있어요. 오십대 후반, 아니면 육십대 초반의. 며칠 전 아침일이 떠올랐습니다. 틴에이저들도 아니면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남자곁을 지나며 얼굴을 쳐다봤지요. 아무런 표정이 없던 남자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돕니다. 큰 함박웃음이 어립니다. 오, 며칠 전에 봤던 회색 세단이 빠르게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 보입니다. 차에서 내리는 여자.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데 이른 아침에 하이힐에다 구불구불 세팅한 머리에다 샬랼라 원피스에다 갖은 치장을 했어요. 여자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둘은 뜨거운 포옹을 합니다. 남자가 여자 얼굴에 마구 자기 얼굴을 비벼대요. 이른 아침, 인적이 없는 공원에서 뭐하는 짓? 나는 깨달았습니다. 둘은 ‘불륜’중이라는 것을!

가만 보니 둘은 날짜와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는 것 같습니다. 일 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 아침 일곱시. 남자는 은퇴를 했는지 출근할 필요가 없는 사람같고 여자는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는 걸봐서 직장에 다닙니다. 둘은 배우자의 눈을 피해 멀리 떨어진 데 와서 밀회를 하는 것 같습니다. 위에도 말했지만 그 공원은 동네 사람만 아는 아주 한적한 곳이니까. 둘은 차 안에서 키스를 하기도 하고 트럭에 기대어 포옹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나란히 발 맞추어 공원내를 잠깐 걷기도 하는데 걸을 때는 남자의 손이 여자 허리를 감고 있어요. 여자의 몸은 남자한테 찰싹 붙어 있고. 잠시도 떨어지기 싫다는 듯 말이지요. 강아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둘을 봅니다.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여자가 서둘러 떠납니다. 여자가 올 때 반색했던 남자의 얼굴이 남인 나도 알아보게 침울하게 변해있습니다. 떠나는 여자 차를 지켜보며 하염없이 손을 흔드는 남자. 참 눈물겹습니다.

‘훔친 사과는 맛있다’는 영화 제목처럼 금지된 사랑 중이니 얼마나 감질나겠어요. 시간을 잡아매고 싶을 만큼 애틋하겠지요. 정해진 시간 안에 만남을 끝내야하는 교도소 재소자와의 면회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둘이 막상 결혼해 살아도 같은 마음일까요. 짜글짜글한 얼굴 주름에 어울리지 않게 덕지덕지 두껍게 바른 여자의 화장이 여전히 사랑스러울까요. 50인치에 육박해 보이는 육중한 허리와 O자로 벌어진 다리로 어그적대며 걷는 남자가 여전히 멋있을까요.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서도 나는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약혼자의 눈을 피해 금방 사랑이란 감정에 빠진 남녀, 눈에 불꽃이 튀지 않는 게 이상하지요. 목숨을 내줘도 아깝지 않았던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게 진정한 사랑이었을까요? 단 몇 시간만에 생긴 미칠 듯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현혹’이 아니었을지?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숭고한 사랑의 결정판으로 각인될 수 있었던 것은 두 남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다면 어떠했을까요. 과연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였을까요? 우리처럼 결혼하고 아이낳고 생활에 치이면서 살면 다 똑같아요. 울고 불고 싸우고 지지고 볶고 서로 지겨워하고. ‘같이 있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결혼했는데 같이 있으니까 미칠 것 같아서 이혼한다’는 말처럼 사랑이란 감정은 금방 변하기 마련입니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엔 미움과 후회와 동지애와 정과 측은지심이 들어섭니다. 그 감정으로 그냥저냥 삽니다.

결혼 전에는 내 가슴에 불을 지피게 했던 남편의 크나큰 장점들이 결혼 후에는 사사건건 불만으로 다가 오는 건 아마 모든 여자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들일 겁니다. 요즘 내가 딱 그렇습니다. 입싸고 말 많고 번잡스럽고 가볍고 경망스러운 성격의 나는 사려 깊고 과묵하고 점잖고 신중한 남편의 성격에 반했더랬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성격. 그런데요. 막상 같이 살아보면 속터져 죽습니다. 두드리다가 세월 다 가니까요. 나 같은 경우는 돌다리를 건너다가 삐긋해서 물에 첨벙 빠질 땐 빠지더라도 일단은 확 건너고 보거든요.

가면 갈수록 남편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남편도 은퇴, 나도 은퇴. 나야 뭐 소문난 집귀신이고 남편도 금 캐러 산에 가는 일 외엔 외출을 안 하는 사람이라 늘 집에만 있습니다. 둘이 보고 부딪치는 시간이 많아서 그럴까요.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눈에 거슬립니다. 남편이 가장 짜증스럽게 느껴질 때의 1위가 ‘내 눈에 뜨일 때’라는 글을 보고 웃은 적이 있습니다만 요즘 나한테 그게 해당됩니다. 밥 먹고 돌아서자 말자 뭐 또 먹을 게 없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하는 꼴도 눈쌀이 찌푸려지고 하루종일 텔레비젼 앞에만 앉아 있는 모습도 한심하고 큰 소리로 전화통화하는 소리도 귀를 막고 싶을 정도입니다. 밥 먹는 모습이 ‘처먹는’걸로 보이고 자는 모습이 ‘자빠져 자는’걸로 보이면 심각한 단계라는 말이 있던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하여튼 예전에는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던 일들이 다 짜증으로 다가옵니다. 오죽하면 한국에 가든지 해서 서너달 떨어져있어 볼까 하는 생각을 다 했겠어요. 그런데요. 일부러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아도 ‘떨어질’ 날이 옵니다. 남편과 어쩔 수 없이 떨어져야 할 날.

안면을 익히는 중인 여성들과 점심을 같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래 알아 친한 사이야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관계’이니 별 문제가 없습니다만 입다물고 서로 눈치만 보는 그 긴장된 시간을 나는 못참습니다. 무슨 말이든 주저리주저리 해야 해요. 내가 물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뻤던 시간은 언제였어요? 저는 지금 사는 집을 샀을 때. 그리고 미국직장에 취직했을 때였는데…”

어색했던 것은 상대방들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첫 아들을 낳았을 때, 승진했을 때 등등 앞다투어 대답을 하더군요. 내가 다시 물었지요. 그러면 가장 슬펐을 때는요? 세 여성들이 입을 모았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때.였었다고. 그러고보니 셋 다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입니다. 그녀들은 말했습니다. 10년, 20년이 흘렀지만 남편의 사망통보를 받던 날, 그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비통과 충격의 심정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 여성은 일을 하던 중 남편의 사망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사인은 심장마비. 어떻게 운전해 갔는지도 모르게 남편의 병실로 들어가면서 부르짖은 첫 마디가 ‘미안해요’였다고 합니다.

오랜 투병끝에 남편을 먼저 보냈다는 다른 두 여성도 그러더군요. 남편의 주검을 앞에 놓고 제일 먼저 한 말이 미안해요. 미안해. 그동안 짜증내서 미안하고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말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못난 여자랑 살아줘서 미안하다고. 그렇습니다. 남편을 일찍 보낸 여성들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미안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미안한 마음뿐이랍니다. 남편이 먼저 가게 되면 나 역시 그런 참회를 하면서 가슴을 칠지도 모릅니다. 바닥을 뒹굴면서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라고 울부짖을지도 모릅니다.

이계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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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계숙 선생님 ^^
    강말희 지면으로 인사드립니다
    늘 잔잔한 감동을 디테일한 서술로 전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열팬이지만 너무도 먼 육지가 가로 막혀있어 직접 만나 뵙지는 못하고
    정기적으로 나누시는 주변 이야기를 통해 반갑게 자주 만나고 있네요
    건강하시고 마음에는 평화 가득 담으시고
    알콩달콩한 일상을 이웃과 많이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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