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현대·LG 공장서 구금됐던 한국인 300여 명, 미국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

이민단속 1년 만에 법적 대응 본격화
불법 구금·인권침해 주장…피해 배상 요구
미 연방기관 9곳 대상…정부 책임 규명 촉구
ICE가 공개한 조지아 현대차·LG 배터리 공장 대규모 단속 모습. 사진=ICE 공개 영상 캡처.

지난해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이민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노동자 300여 명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절차에 착수했다. 노동자들은 당시 이민단속 과정에서 부당하게 체포되고 열악한 환경에 구금되는 등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미국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CNN과 로이터통신,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 등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인 노동자들을 대리하는 변호인단은 지난 9월 15일부터 미 국토안보부와 이민세관단속국, 세관국경보호국, 연방수사국, 법무부, 노동부 등 9개 연방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행정 청구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변호인단은 올해 말까지 피해 노동자 전원의 청구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법적 대응은 지난해 9월 4일 조지아주 사바나 인근 엘라벨에 위치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이민단속에서 비롯됐다. 당시 연방 및 주정부 소속 법 집행 인력 400여 명이 현장에 투입돼 총 475명의 노동자를 체포·구금했다. 이 가운데 한국 국적자는 317명이었다.

미 국토안보부는 당시 작전을 국토안보수사국 역사상 단일 사업장 최대 규모의 단속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불법 고용과 이민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지만, 무장 요원들이 공장 건설 현장에 진입해 노동자들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한국과 미국에서 논란이 일었다.

구금된 한국인들은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외교적 협의를 거쳐 체포 8일 만에 대부분 석방됐다. 한국인 317명 가운데 316명이 전세기를 이용해 귀국했으며, 나머지 1명은 미국에 남았다.

노동자들은 당시 자신들이 범죄 혐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음에도 강제로 연행됐으며, 일부는 충분한 통역이나 법률적 설명 없이 서류에 서명하도록 요구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개인 휴대전화가 압수돼 한국의 가족에게 연락하지 못했고, 구금 과정에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노동자들은 이번 청구를 통해 부당한 체포와 구금에 따른 정신적 피해, 소득 손실, 개인 소지품 관련 피해 등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인 개인별 청구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구금됐던 한 한국인 엔지니어는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평생 전문 기술자로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지만 조지아에서 범죄자처럼 취급받으며 깊은 모욕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가족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해당 엔지니어는 한국으로 귀국한 뒤 기존 여권과 비자를 이용해 다시 미국에 입국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며 당시 구금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다만 재입국이 허용됐다는 사실만으로 이전 체포의 위법성이 법적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 노동자들을 대리하는 한 한국계 변호사는 이번 법적 대응의 목적이 단순한 금전적 보상을 넘어 미국 정부의 책임을 규명하고 노동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이들이 미국 경제에 기여하던 기술 인력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절차는 연방불법행위배상청구법에 따른 행정상 손해배상 청구다. 미국 연방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려면 원칙적으로 관련 연방기관에 먼저 행정 청구를 제출해야 한다. 해당 기관이 청구를 거부하거나 6개월 안에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정식 연방 민사소송에 앞선 필수적인 절차로, 법원이 미국 정부의 위법행위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단계는 아니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노동자들의 법적 대응과 거리를 두고 있다. 현대차는 당시 구금된 노동자 중 자사 직접 고용 직원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인 구금자 가운데 47명은 LG에너지솔루션 소속이었고 나머지는 하청업체 소속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언론 보도를 통해 손해배상 청구 사실을 알게 됐으며, 노동자 개인의 결정인 만큼 회사가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단속과 관련해 현대차나 주요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형사기소가 이뤄졌다는 사실도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인 노동자들과 별개로 당시 구금됐던 콜롬비아 국적 노동자도 미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 청구에 나섰다. 그는 이민단속 요원들에게 폭행과 인종차별적 발언을 당했으며, 구금 초기 11일 동안 가족과 연락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아시아계 미국인 권익단체와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지난 9월 4일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사건에 대한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한국 기업들의 현지 사업 운영과 전문 기술인력 파견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미국 정부가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면서도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기술인력에 대한 이민단속을 강화할 경우 투자 정책과 이민정책 사이의 충돌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피해 노동자들의 배상 청구가 실제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당시 단속과 체포 과정의 적법성, 구금시설에서의 처우, 연방기관들의 법적 책임 등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청구에 어떻게 대응할지와 법원이 이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스티브 권 기자 / steve.kwon@baynews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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