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문명의 종교·권력·물의 역사 한눈에
캄보디아 앙코르 문명의 찬란한 역사를 보여주는 약 1,000년 전 거대한 청동 조각상이 샌프란시스코를 찾는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은 오는 10월 23일부터 2027년 1월 25일까지 특별전 ‘비슈누의 우주적 바다(Vishnu’s Cosmic Ocean)’를 개최하고, 동남아시아에서 발견된 고대 청동상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웨스트 메본의 누워 있는 비슈누상’을 공개한다.
이번 전시는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이 소장한 국보급 문화유산을 미국에서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최근 복원 작업을 마친 비슈누상은 국제 순회전의 마지막 일정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전시된다. 아시아미술관 측은 이 유물이 향후 다시 해외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비슈누상은 11세기 크메르 왕국의 수도였던 앙코르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완전한 형태였을 때 길이가 약 20피트에 달했던 이 청동상은 힌두교의 주요 신인 비슈누가 우주의 뱀 위에 누워 태초의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힌두교 신화에서 비슈누는 우주가 소멸하고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사이 우주의 질서를 보존하는 신으로 여겨진다.
이 조각상은 캄보디아 앙코르 지역의 거대한 인공 저수지인 웨스트 바라이 한가운데 섬에 세워진 웨스트 메본 사원에 안치돼 있었다. 저수지는 길이가 약 5마일, 폭이 1마일 이상에 달하며, 당시 크메르 왕국의 뛰어난 토목 기술과 수자원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설이다.
당시 앙코르의 통치자들은 비슈누 신앙과 물의 상징성을 왕권 강화에 활용했다. 저수지와 운하, 해자, 제방으로 연결된 복잡한 수로 체계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물의 흐름을 조절하고 농업 생산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기반시설은 앙코르가 중세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거대한 비슈누상은 오랜 세월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수백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조각상은 1936년 다시 발견됐다. 당시 한 주민이 사원 아래 묻혀 있는 형상에 관한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번 전시에서도 이와 관련된 발견 과정이 소개된다.
최근 진행된 보존·복원 작업과 과학적 조사를 통해 비슈누상의 제작 방식에 관한 새로운 사실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조각상 표면에 원래 금박이 입혀져 있었던 흔적을 발견했으며, 제작 당시 엄청난 양의 녹인 청동이 사용됐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번 특별전은 단순히 고대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앙코르 문명의 종교와 정치, 환경, 기술이 어떻게 연결돼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시장에는 비슈누상과 함께 지도, 영상, 해설 자료 등이 마련돼 크메르 왕국의 역사와 힌두교 신화, 물을 중심으로 발전한 고대 도시 문명을 소개한다.
특히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세계문화유산인 앙코르 유적이 오늘날 캄보디아 국민에게 갖는 문화적 의미와 정체성도 조명한다. 전시 시기가 캄보디아의 전통적인 물 축제 기간과 맞물리는 만큼 고대의 문화적 전통을 현대 사회와 연결하는 지역사회 협력 프로그램도 추진될 예정이다.
이소영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관장 겸 최고경영자는 이번 전시에 대해 “이처럼 거대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예술 작품은 많지 않다”며 “이 특별한 조각상은 예술과 종교, 공학, 자연환경이 어떻게 결합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명 가운데 하나를 형성했는지 생각하게 한다”고 밝혔다.
이 관장은 이어 “물은 오늘날에도 인류에게 가장 강력하고 소중한 자원 가운데 하나”라며 “이번 전시는 아시아의 이야기가 곧 세계의 이야기라는 미술관의 철학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나타샤 라이클 아시아미술관 동남아시아 미술 담당 부큐레이터는 “관람객들은 고대 조각의 걸작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겠지만, 실제로는 물과 권력의 관계, 앙코르 기술자들의 놀라운 창의성, 그리고 예술을 통해 창조와 왕권, 자연을 표현했던 사회의 역사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특별전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과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이 프랑스 기메 국립아시아미술관과 협력해 기획했다. 캄보디아 정부의 승인 아래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이 주요 작품을 대여했으며, 캄보디아 문화유산의 보존과 국제적 교류를 확대하는 의미도 갖는다.
비슈누상 복원에는 국제문화유산보호연맹의 재정 지원과 프랑스 극동학원, 프랑스 박물관 연구·복원센터, 기메 국립아시아미술관 등의 과학적 협력이 이뤄졌다. 전시에는 리나 람 크메르 불교재단이 주요 후원기관으로 참여했으며, 버나드 오셔 재단과 아시아미술협회 등도 지원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은 아시아 및 아시아계 미국인 예술 작품 2만 점 이상을 소장한 대표적인 문화기관이다. 이번 특별전은 미술관이 캄보디아 미술만을 주제로 선보이는 첫 특별전으로, 고대 동남아시아 문명의 예술적 성취와 역사적 가치를 베이 지역 관람객들에게 소개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전시는 샌프란시스코 시빅센터 인근 아시아미술관(200 Larkin Street) 오셔 재단 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 기간은 10월 23일부터 내년 1월 25일까지다. 자세한 정보는 아시아미술관 공식 홈페이지(asianart.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